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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표에 그리스 국운 달렸다"… 투표소 열기전부터 장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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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표에 그리스 국운 달렸다"… 투표소 열기전부터 장사진

입력
2015.07.05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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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세대 생각해서 반대표"

"유럽연합에 잔류 위해 찬성"

전국선 찬반 시위대 곳곳 대치도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국민투표 날인 5일 아테네의 한 투표소를 찾아 취재진들이 보는 앞에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아테네=로이터 연합뉴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국민투표 날인 5일 아테네의 한 투표소를 찾아 취재진들이 보는 앞에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아테네=로이터 연합뉴스

그리스 국민투표가 실시된 5일(현지시간) 아침부터 투표소마다 줄이 길게 이어졌다. 이날 투표소를 찾은 시민들의 얼굴에서는 긴장감이 뚜렷하게 보였다. 자신의 손에 들린 한 표에 그리스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이들은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국제채권단 개혁안의 수용 여부를 묻는 이번 투표에서 여론은 계층과 세대에 따라 뚜렷하게 양분된 상황이다. 정부가 투표 전날인 4일부터 모든 정치적 집회를 금지했지만 시내 카페와 술집에 모인 시민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고, 선거전 마지막 날인 3일에는 전국에서 그리스어 ‘오히’(Oxi, 아니오)와 ‘네’(Nai, 예)라고 써진 팻말을 각각 든 시위대가 대치한 채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그리스 시민들, 국민투표 위해 투표소로 향해

AFP 등 외신에 따르면 그리스의 구제금융 투표는 이날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한국시간으로는 오후 1시부터 6일 새벽 1시까지) 12시간 동안 전국 각지에 마련된 투표소 1만9,159개에서 일제히 진행됐다.

시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초중고교나 대학 건물에 마련된 투표소에 나와 긴 줄을 서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고, 수십 명의 시민들이 투표소가 문을 열기 전부터 길거리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수도인 아테네 중부 스코파 거리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제일 먼저 투표한 미켈리스(80)는 AFP에 “나는 ‘반대’를 찍었다”면서 “투표 결과로 반대가 많을 때 국제채권단이 우리를 더욱 진지하게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반대표를 던진 건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손주와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 개혁안을 받아들이면 은퇴연령 상한과 연금 삭감 등의 조치가 이어져 당장 나이 든 세대가 힘들겠지만, 과도한 긴축재정은 나라의 성장동력을 약화시켜 결국은 젊은 세대의 미래도 어두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언론인으로 일했다가 지금은 은퇴한 테오도라(61)는 “나는 그리스가 유럽연합에 잔류해야 한다고 생각해 ‘찬성’에 투표했다”고 말했다.

그리스의 국운을 가를 국민투표에 참석하기 위해 해외에 있는 그리스인들은 귀국길을 선택하기도 했다. 이번 투표는 재외국민 투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키프로스에 거주하는 그리스 국민인 코스타스 코키노스(60)는 “투표를 하러 귀국했다”면서 “찬성을 찍고서 하루 이틀 뒤 키프로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민투표 방침이 겨우 9일 전에 발표됨에 따라 100만명 가까이 되는 국외 거주자들의 투표 참여율은 저조할 것으로 보인다.

투표 전날까지 그리스 여론은 양분돼 팽팽

정부가 투표 전날인 4일은 정치적 집회를 금지하면서 아테네 도심은 평화로운 듯 보였다. 하지만 카페나 술집에 모인 시민들은 투표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했고, 가족끼리도 의견이 달라 논쟁을 벌였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보석상을 하는 디미트리스 니콜라스(48)는 투표 전날까지도 가족끼리 의견을 일치하지 못해 각자 따로 투표를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니콜라스는 “그리스가 유로존과 유럽연합(EU)을 떠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법학도인 니콜라스(23)도 “유럽과의 협상 자체가 없어지면 그리스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아버지와 뜻을 같이 한다. 그러나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그의 딸인 알렉산드라(20)는 “나는 나의 미래가 걱정스럽고 도로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면서 “유로존에 머문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반대에 투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3일 점심 아테네의 한 술집에서는 생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근처 테이블에 앉아 투표 얘기를 나누다가 논쟁이 붙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시작은 옷 가게를 하다 경제위기로 곤란을 겪고 있는 판지오티스 스마일리스가 찬성 세력에 분에 차 목소리를 높이면서였다. 그는 점심으로 와인을 마시다 “그리스 정부는 국제채권단과 협상하는 걸 그만둬야 한다”며 “만약 내가 오늘 죽는다면 투표 날 반대표를 던지기 위해 무덤에서라도 기어나올 것”이라며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에 근처 테이블에서 이를 듣고 있던 공무원인 스피로스 판지오토포울스가 “우리가 반대를 하면 유럽을 떠나야 한다”고 반박하면서 주점이 토론의 장이 됐다. 뉴욕타임스는 아테네 카페와 상점에 들어가면 이러한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국민투표 선거전 집회가 허용된 마지막 날인 3일 아테네 도심은 찬반 집회로 한껏 달아오르기도 했다. 아테네의 국회의사당 앞 신타그마 광장에서는 집권당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가 주최한 ‘오히 집회’가 열렸다. 또한 바로 근처인 1896년 제1회 올림픽이 개최됐던 파나티나이코 경기장 앞에서는 ‘그리스에 찬성, 유로에 찬성’ 등의 구호가 적힌 팻말들이 나부끼며 ‘네 집회’가 진행됐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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