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전 평생 모은 고문서 26만점
경희대에 기증한 김혜정 관장
"독립 박물관 건립 약속 온데간데,
한 해 관리비가 고작 370만원,
사비로 메워왔지만 이제 지쳐"
“민족의 역사를 바로잡겠다며 모든 걸 쏟아 부어 얻은 것들인데….”
7일 경기 용인 경희대 국제캠퍼스 본관 4층 혜정박물관에서 만난 김혜정(69) 관장의 얼굴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김 관장은 지난 2002년 고지도 보존과 연구를 돕겠다는 약속 하나를 믿고 경희대에 평생 모은 고지도와 고문서 26만여 점을 내놓아 화제가 됐던 ‘고지도의 대모’다. 제일교포 3세가 독도, 간도 등이 대한민국 영토로 표기된 국내외 옛 지도 등을 수집하고 이를 고국의 한 사립대학에 기증ㆍ기탁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슈의 중심에 서기 충분했다. 김 관장은“조국의 피를 받은 내가 겨레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결단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13년이 흐른 지금, 고지도 등을 걷네 받은 뒤 달라진 학교측 예우에 김 관장은 참담하기만 하다.
“간곡하게 청할 때는 언제고, 기증했더니 변심하듯 달라졌어요.”김 관장은 지난 2012년 경희대 설립자 조영식 박사가 타계한 뒤로 경희대의 관심이 지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독립 박물관을 지어주겠다는 약속은 온데간데 없어졌고요. 상당수 유물이 종이류여서 습도 조절과 보존처리 등이 중요한데도 대학 측은 올 한해 관리비로 단돈 370만원을 배정했어요.” 2002년 2월 경희대가 작성한 ‘혜정 김희숙 선생 자료기증에 대한 예우’문건에는 독립 박물관을 짓겠다는 서약과 함께 김 관장을 석좌 교수로 초빙, 사료 분류, 정리, 연구 등에 필요한 인적, 물적 지원 등 예우를 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김 관장은“기증한 게 죄라고 당장은 관장을 맡고 있으니 부족한 예산은 사비를 털어 메워왔지만, 이제는 힘에 붙인다”고 했다. 김 관장이 내보인 박물관 예산안을 보면 연간 1,500만원 수준이던 관리비가 지난해 266만원, 올해 370만원으로 줄었고 인쇄ㆍ출판비는 두 해 연속 단 한 푼도 반영돼 있지 않았다. 전시ㆍ행사비도 2013년 1,500만원, 지난해 250만원, 올해 1,400만원으로 들쭉날쭉했다. 결국 기획 전시회 등에 드는 비용 대부분은 김 관장이 직접 정부와 지자체에 손을 벌려 조달하고 있다.
“썩고 찢기고, 너덜너덜해지는 고지도 등을 보며 참다못해 모든 유물을 되가져가겠다 했더니 (학교가) 자기들 물건이라고 모두 놓고 가랍디다. 세상에 이럴 수는 없어요.”
김 관장이 원하는 건 돈도 명예도, 화려한 박물관 건물도 아니다. “강대국의 역사왜곡에 대응할 유일하고도 객관적 자료는 고지도와 고문헌 밖에 없어요. 경희대가 마음을 바꿔 이것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연구해서 국가에 큰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 그것뿐입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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