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아이돌 쇼인데, 야권은 가요무대네요.”
15년 정치 경력의 베테랑 의원보좌관의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보름쯤 됐을 무렵이었다. “요즘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오늘은 대통령 덕분에 무슨 즐거운 일이 생길까’ 설레기까지 해요.” 그는 쑥스러워했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보수정당에서만 일해온 보좌관이었던 것이다. 그는 “대통령뿐 아니라 영부인, 비서실장, 수석들이 돌아가며 감동과 웃음을 선사하는 게 멤버 10명쯤 되는 아이돌 그룹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야권을 보면 30여년 째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이라는 인사말조차 변함이 없는 가요무대가 떠오르지 않냐는 것이었다. “이래서는 차기는커녕 차차기도 바라보기가 힘들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이 눈이나 돌리겠습니까.”
새 정부 출범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설렘이 유지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다시 그에게 물었더니 반응이 사뭇 다르다. 11일 청와대의 공직자 추가 인선 발표 직후였다. “논란이 잇달고 있으니 이번에는 좀 흠 없는 후보자를 내놨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한마디로 “오만이 걱정된다”는 거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물러설 뜻이 없어 보인다. 청와대는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음주운전 전력,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위장전입 사실을 미리 밝히면서까지 두 사람을 지명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발표 때 써버려 선도를 잃은 ‘사전신고’다. 더구나 음주운전은 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고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5대 공직 배제 기준’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문 대통령은 불과 보름 전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음주운전을 “5대 비리보다 더 큰 흠결 사유”로 지목했다. 인사 기준으로 만들 가치도 없는 ‘기본 배제 사유’란 의미다. “음주운전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라는 사회 인식 때문일 테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짤막한 사실관계만 설명하며 조 후보자를 지명했다. 음주운전 피해자나 그 가족들은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책 ‘남자란 무엇인가’에서 드러낸 왜곡된 성의식도 위험하기 짝이 없다. “젊은 여성의 몸에는 생명의 샘이 솟는다. 그 샘물에 몸을 담아 거듭 탄생하고자 하는 것이 사내의 염원이다”,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최종 목적을 달성하고 싶은 것이 사내의 생리다”. 성매매나 데이트 성폭력 같은 성범죄를 ‘사내들’의 보편적인 생물학적 본능으로 합리화한 것이다. 이런 인식을 가진 인물이 대한민국 법치의 수문장인 법무부 장관이 되는 게 과연 타당한가. 영혼의 살인 행위라고 일컬어지는 성폭력의 피해자들이 과연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청와대는 과거 저서에서 여성의 몸을 그저 남성의 성욕 충족 도구로 전락시킨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도 아직까지 보듬고 있다. 대선 후보 시절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공언이 무색하다.
문 대통령의 ‘5대 기준’은 급조된 공약이 아니다. “부동산투기ㆍ세금탈루ㆍ위장전입ㆍ병역비리ㆍ논문표절에 해당하는 사람은 절대 공직에 기용하지 않겠다. 이러한 사항을 담은 엄격한 공직자 인사검증 매뉴얼을 만들겠다.” 문 대통령이 2012년 10월 기자회견까지 열어 밝힌 내용이다. 5년 전부터 틈만 나면 강조해온 신념에 가까운 원칙인 거다. 그런데 임명하는 인물마다 5대 기준에 안 걸리는 사람이 없고, 음주운전과 언어 성폭력처럼 보다 중대한 결격 요소까지 등장하는 ‘인사 참사’에는 뭔가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하는 게 아닐까.
“청와대가 미리 밝히면 면죄부가 되느냐”는 자유한국당의 항변이 점점 더 반대를 위한 반대만은 아닌 것처럼 들리는 게 다른 이유가 아니다. ‘욕하면서 닮아간다’는 정치권의 웃지 못할 생리 또한 문재인 정부가 청산해야 할 적폐 아니냔 얘기다.
김지은 정치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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