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직후 버림받고 복지시설行
폐렴 등 앓아 치료 시급한 상황
법률공단, 친권상실 가처분 요청
시설장이 친권 대행자로 지정돼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친모(親母)에게 버림받은 난치병 영아를 대리해 친권상실 가처분을 이끌어냈다. 친권자 동의가 없어 치료를 못 받던 아기는 법원의 신속한 결정으로 위기를 넘겼다.
희망이(가명ㆍ2)는 지난해 5월 칠삭둥이로 태어났다. 폐쇄성 폐질환과 폐동맥 고혈압으로 산소마스크에 의존해 겨우 숨을 쉬었고, 출산 직후 바깥 세상도 보지 못한 채 두 달 넘게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러던 중 친모조차 천륜(天倫)을 저버리면서 희망이는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미혼모였던 친모가 퇴원과 동시에 핏덩이나 다름없는 희망이를 상자에 담아 동네 교회 앞에 두고 달아난 것이다. 다행히 한 아동복지시설에서 희망이를 돌보게 됐지만 치료가 멈춘 사이 뇌에 산소공급이 부족해져 희망이는 신생아 망막증을 앓게 됐다.
시설에서도 희망이는 많이 아팠다. 폐렴과 모세기관지염 등을 앓았고 심한 경우 폐 이식 수술까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희망이 친모가 사라져 친권자 동의를 필요로 하는 과거 진료기록 발급이나 수술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법적 문제에 직면한 시설 측은 법률구조공단을 찾았다.
공단은 법원에 희망이 친모에 대해 친권상실 가처분을 요청하기로 했다. 희망이가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친모의 친권을 말소해 법원이 지정한 후견인이 치료에 동의해야 하는데, 법원의 정식 심판을 기다리면 건강상태가 나빠질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딱한 사정을 꼼꼼히 파악한 대전지법 권세진 판사는 “희망이의 친권상실 선고가 내려질 때까지 (친모의) 친권행사를 정지한다”고 사전처분 결정을 하고 친권 대행자로 시설장을 지정했다. 돌을 넘긴 희망이는 아직 스스로 앉지 못 하지만, 적시에 치료를 받으며 건강을 회복해가고 있다. 친권상실 심판 선고와 후견인 지정은 다음달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을 수행한 공단 소속 황철환 변호사는 “법원에 희망이의 건강상태와 치료의 위급성을 적극적으로 호소한 끝에 이틀 만에 가처분 결정을 받았다”면서 “신속한 사전처분이 없었다면 희망이의 진료기록 발급이나 치료에 어려움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전국에서 접수된 친권상실 사건은 2015년 219건, 지난해 245건으로, 해마다 적지 않은 아이들이 보호자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법원의 도움을 받고 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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