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특파원ㆍ한일의원연맹 부회장 등 지내
“아키히토 일왕 방한 제안” 일 언론도 촉각
얼어붙은 한ㆍ일 관계가 좀처럼 해빙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낙연 국무총리가 한일 외교관계의 난맥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헌법상 외교ㆍ안보 영역에서의 총리 역할이 제한되긴 하지만, 기존 틀에 과도하게 얽매이지 않는다면 정치권을 대표하는 ‘지일(知日)파’ 총리라는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사이다 총리’, ‘막걸리 총리’로 소통에 강점을 보이고 있는 이 총리 스스로도 대일 접촉 면적을 넓히며 소원해진 한ㆍ일 관계를 다시 잇는 가교 역할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모양새다.
이 총리는 지난 9월 서울에 주재하는 일본 언론사 특파원들을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초청해 비공개 오찬 간담회를 열었다. 북한 핵ㆍ미사일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한ㆍ미ㆍ일 공조와 관련해 불협화음이 나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던 시기다. 이 총리는 이 자리에서 한ㆍ미와 별개로 한ㆍ일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비핵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된 전술핵 무장론에 대한 일본의 우려를 누그러뜨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 총리가 나선 데는 한ㆍ일관계의 특수성에 대한 고민이 적잖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박근혜 정부가 2015년 일본 정부와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최종적ㆍ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하는 한ㆍ일 합의한 이후 한ㆍ일관계가 진퇴양란의 경색 국면에 빠졌다고 판단할 측면이 적지않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인정과 그에 기초한 사과와 배상이 빠진만큼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국내의 요구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의 이렇다 할 외교적 조치가 없었던 탓에 한ㆍ일 양국의 감정의 골만 깊어졌다. 결국 최근 북 핵ㆍ미사일 위기가 고조되면서 한ㆍ일 공조에서의 불협화음만 부각되고 상황이다. 한ㆍ일간 벌어진 틈을 타 북한 김정은 정권만 득을 보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총리가 정치권을 대표하는 ‘지일파’라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총리는 신문기자이던 1989년 도쿄 특파원으로 3년간 일본에서 생활했다. 4선 국회의원을 지내는 동안 한ㆍ일 의원연맹 부회장과 한국 의원단 간사장을 역임했다. 전남지사이던 2016년에는 일본 고이치(高知)현과 자매결연을 맺으면 교류를 이어갔다. 1965년 한ㆍ일 국교정상화 이후 51년만의 첫 지방자치단체간 교류 협약이었다. 총리 취임 이후 첫 외빈 접겹으로 일본 아베총리 특사로 방한한 니카이 토시히로(二階俊博) 자유민주당 간사장을 맞이한 것도 주목을 끌었다. 지난 8월에는 바쁜 일정을 쪼개 한ㆍ일 의원연맹 모임 만찬에도 참석하는 등 이 총리도 애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 총리는 지일파이면서도 한ㆍ일 양국 현안과 관련해서는 대일 강경파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기도 하다. 이 총리는 지난 7월 24일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빈소를 찾아 “(한일 위안부 합의는) 잘 된 협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당사자가 수용하지 않는 협상이 무슨 소용 있느냐”고 지적했다. 8월에는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 빈소를 찾아 조문하는 등 위안부 문제 있어서 만큼은 양보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대일 강경파로서의 면모가 한ㆍ일 관계를 복원을 위한 이 총리의 행보를 가볍게 하는 요소로 꼽힌다.
일본 언론들의 전망도 다르지 않다. 이 총리 지명 당시 “지일파 인사가 총리 후보가 됐다”며 주요 일간지 1면에 소식을 전하는 등 이 총리가 경색된 한일 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지금도 이 총리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고 있기도 하다.
이 총리는 최근 일본 아사히(朝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키히토(明仁) 일본 천황의 한국 방문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총리는 “(일왕이) 퇴위하기 전에 한국에 와서 그간 양국이 풀지 못했던 문제에 대해 물꼬를 터 준다면 양국 관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당시 일본 총리가 ‘21세기 새로운 한ㆍ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인만큼 명분이 없지 않다고 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그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중심으로 한 일본 내 강경우파를 견제하는 등 한일관계 정상화의 한 축으로 역할을 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총리의 일왕 초청 구상이 실현된다면 한반도 문제에 획기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수도 있다”고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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