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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감정의 실체 규명..."갑과 을 모두 미생임을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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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감정의 실체 규명..."갑과 을 모두 미생임을 알아야"

입력
2014.12.2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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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저자 김찬호 교수

김찬호 교수는 “원고를 여러 차례 퇴짜 맞았지만 훌륭한 편집자와 신뢰를 쌓으며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거웠다”면서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가지고 쓴 책으로 상을 받게 돼 기쁘고 영광스러운 한편 씁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김찬호 교수는 “원고를 여러 차례 퇴짜 맞았지만 훌륭한 편집자와 신뢰를 쌓으며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거웠다”면서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가지고 쓴 책으로 상을 받게 돼 기쁘고 영광스러운 한편 씁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모멸감. 2014년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아마도 이 단어가 남지 않을까 싶다. 최근 굴지의 항공사 부사장이 이륙 준비를 하던 비행기의 사무장에게 모멸감을 주고 내리도록 해 공분을 사고 있다. 유명 교향악단 대표는 사무국 직원들에게 폭언과 욕설, 성희롱을 구사하며 모멸감을 줬다고 한다. 얼마 전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경비원은 주민의 폭언과 비인간적 대우에 모멸감을 느껴 자살을 시도한 끝에 숨을 거뒀다. 한국 사회는 지금 모멸감을 주고받느라 만신창이가 돼가고 있다.

김찬호(52)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는 일찌감치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감정들 가운데 모멸감에 주목했다. “죄책감, 두려움, 질투심 등 사람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감정들 중 모멸감은 특히나 은폐되기 쉽고 매우 중요한 동인이 된다”고 판단해서다. 그는 “정서적으로 예민한 편이라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사회 시스템을 실제로 움직이는 게 뭘까 궁금해 하다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됐고 그 감정 가운데 유난히 한국인에게 응어리가 많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억눌린 감정이 타인에게 가해라는 행동을 유발케 하고 또 피해를 입은 누군가가 또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악순환의 근원에 모멸감이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김 교수가 올해 초 출간한 ‘모멸감’(문학과지성사)은 한국인의 일상에 만연한 모멸감의 실체를 인문학적으로 규명한 사실상 첫 번째 책이다. 마음이 병든 한국 사회에 대한 그만의 진단서이자 처방전이다. 이 책에서 그는 사회적 감정으로서 모멸감의 속성은 무엇이고 사회의 정서적 지형도에서 모멸감의 영역이 확장하는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지, 모멸감을 뛰어넘어 인간을 존엄하게 하는 삶을 가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핀다. 김 교수의 말처럼 “인문서와 에세이의 사이”에 있어서 사회학자에게도 일반 독자에게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던져준다.

모멸감이 한국 사회에 독버섯처럼 자라는 배경에는 과거의 신분의식이 청산되지 않은 채 급격하게 도입된 자본주의와 만나 일으킨 화학작용이 있다. 지금 한국 경제의 저성장 구조는 서민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며 모멸감의 유통을 증가시킨다. 김 교수는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성찰의 언어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모멸감의 얼굴을 응시한다.

그는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미생’을 끌어들여 설명을 이어갔다. “완생이란 뭘까요. 미생이 ‘갑질’을 하면 완생일까요. 괴롭히는 사람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이나 모두 미생입니다. 출세하는 것이 완생이라면 미생이 대량생산될 수밖에 없어요. 누가 피해자인가로만 미생을 규정하면 그 틀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김 교수는 모멸감을 뛰어넘어 인간을 존엄하게 하는 삶을 위해 구조적ㆍ문화적ㆍ개인적 차원의 대안을 제시한다. 절대빈곤, 실업 등 최소한의 품위를 갖출 수 없게 만드는 사회 구조적 요소를 제거해야 하고, 부와 권력의 차이를 절대화하며 멸시하는 문화 풍토를 바꿔야 하며, 존중과 자존의 문화를 만드는 출발과 귀결이 결국 각자의 내면에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책에 ‘어쩔 수 없으니 마음 단단히 먹어’라고 말하는 듯한 뉘앙스가 있긴 하죠. 날아오는 미세먼지를 막을 수 없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인을 찾아내 어떻게든 줄이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그 속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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