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하자면 개명한 21세기에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주장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구가 명왕성 주변을 돈다’는 수준의 황당한 얘기들입니다. 그런 사이비 역사학은 이제 거둘 때가 됐습니다.”
강원대 역사교육과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기경량(38)씨는 3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구려사 전공인 기씨는 얼마 전 젊은 고대사 연구자들을 모아 ‘젊은 역사학자들의 모임’을 만들었다. 고대사 분야가 더 이상 비전문가들의 마구잡이식 난도질에 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다. 그 뜻에 동의한 20, 30대 젊은 고대사 연구자들 30여명이 의기투합했다. 고대사 전공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국내 대다수 젊은 연구자들이 참여한 셈이다. 이들은 경희대 인문학연구원 부설 한국고대사ㆍ고고학연구소의 지원 아래 정기적으로 학술회의를 열고 있다.
기씨는 “저도 학생 시절에 사이비 역사학 책을 보고 혹한 적이 있었지만, 공부해보니 모든 게 다 터무니 없는 얘기였다”면서 “논문을 열심히 들여다보기만 해도 다 알 수 있는 내용이 왜 이리 왜곡될까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주변 젊은 연구자들 반응도 비슷하다. 기씨는 “중ㆍ고교 시절을 요즘 말로 ‘역사 덕후’로 보낸 이들이 지금의 젊은 역사 연구자들”이라면서 “다들 한때 접해본 경험은 있으나 요즘이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것에 누구나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씨는 ‘이병도=식민사학’ 공식부터 부정했다. 기씨는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다는 점에서는 이병도를 친일이라 비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논문 같은 것을 보면 식민사학이라고는 할 수 없다”면서 “오히려 식민사학에 맞서 뭔가 다른 주장을 내놓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임나일본부설과 위만조선을 들었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이 두 가지를 들어 식민사학자들은 한국이 원래부터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한데 반해, 이병도는 임나일본부설을 부인했고 위만은 중국 연나라 사람이 아니라 조선사람이었다는 반론을 폈다.
또 문제는 이병도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기씨는 “1950~60년에 역사학계가 그저 ‘네, 스승님 설이 옳습니다’라고만 했다는 건 학계 기본 속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면서 “이병도 학설 가운데 많은 부분이 충분히 극복됐다”고 말했다. 결국 이미 지나간 이병도를 ‘국사학계의 거목’으로 계속 되살려내는 것이야말로 다름 아닌 사이비역사학이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대중적인 단행본을 낼 계획도 세웠다. 기씨는 “사이비 역사학이 너무 널리 퍼져 있어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문장의 책을 선보일 예정”이라면서 “연구성과가 축적되는 대로 10여명의 집필진이 공동으로 연말까지 출간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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