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반상회 보듯 정겹게 토론
공정한 진행…결과엔 깨끗이 승복
“다른 어느 후보를 선택하더라도 그 뜻을 존중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공화당이 백악관을 되찾으려면 트럼프는 안됩니다.” 1일 저녁 7시30분 공화당 당원대회가 열리고 있는 미국 아이오와 주 어반데일시 어반데일 고등학교 강당. 토론자들은 한 목소리로 전날까지 여론조사 선두였던 도널드 트럼프를 반대했다.
‘어반데일 2구역’ 공화당 코커스에 참가한 250여명 당원들은 기명 투표에 앞서 각자 지지 후보연설을 하고 있었다. 테드 크루즈(텍사스),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 지지자들의 발언이 끝난 뒤 진행자가 “도널드 트럼프 지지 발언 나와주세요!”라고 재촉했지만 10여 초간 침묵이 흐르며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마지못해 한 명이 나와 “허약해진 미국을 강하게 하려면 트럼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순간, 은발의 중년 남성이 “트럼프로는 이번 대선 못 이깁니다”라고 반박하자 토론 현장은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변했다.
이어 시작된 기명투표에서 트럼프를 적은 용지 뭉치는 크루즈 의원은 물론이고 루비오 의원보다도 얇았다. 귀에는 솔깃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지도력을 떨어뜨릴 트럼프의 질주가 풀뿌리 민주주의에 의해 걸러질 가능성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한국의 반상회 혹은 잔칫집 분위기였다. 같은 동네에서 같은 정당을 지지하는 이웃끼리 모처럼 모여 정겹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얼굴 붉혀가며 상대 진영을 이기려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날 남한보다 1.5배 넒은 미 중부 아이오와 주 전역에서는 민주ㆍ공화당을 합쳐 총 2,000여개(1,681개 기초선거구) 장소에서 ‘어반데일 2구역’과 같은 코커스가 치러졌다.
어반데일 고교 강당 맞은편 도서관에서 열린 민주당 코커스(254명 참석)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5명의 대의원을 버니 샌더스 후보는 4명을 차지했다. 도서관 왼쪽에 모인 클린턴 후보 몇몇 지지자들이 대오를 이탈해 정확한 인원 수를 세는 게 어려웠지만, 샌더스 편에 선 시민들은 다시 세어보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스스로는 샌더스의 열렬한 지지자인 존 삭스 코커스 진행관도 시종일관 유쾌하고 공정하게 행사를 진행한 뒤, 50분만에 클린턴 승리를 선언했다. 공화당 코커스에서도 투표 용지가 부족해지자, 진행자들의 공책 용지를 찢어 즉석에서 투표용지를 만드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절차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어반데일(아이오와)=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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