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나의 이력서] 이주일(84)외국 여행지에서 생긴 일(下)
알림

[나의 이력서] 이주일(84)외국 여행지에서 생긴 일(下)

입력
2002.07.11 00:00
0 0

1985년 미주순회공연 당시 시카고에서 있었던 일이다. 공연을 마치고 숙소인 호텔로 돌아가 잠자리에 누웠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당시 우리를 동행 취재하던 일간스포츠 신대남(申大男ㆍ현재 일간스포츠 상무이사) 기자의 죽어가는 목소리였다. “내 방에 급히 올라오세요. 빨리요.”

올라가보니 방문 앞에 한국인 건달 2명이 버티고 있었다. ‘뭔가 일이 터졌구나’ 싶었다.

눈을 부라리고 방문을 열었다. 신 기자는 완전히 얼굴이 백지장이 돼 있었고 옆에는 권총을 든 건달 한 명이 서 있었다.

침대에는 쓰다만 각서가 놓여있었다. ‘연예인들을 모두 데리고 새벽2시까지 당신 업소로 가겠다’.

알고 보니 권총을 든 건달은 공연 스폰서 중의 한 명이었던 나이트클럽 사장이었다.

스폰서를 하는 대신 공연 후 한국 연예인들을 상대로 술을 팔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강하게 나갔다.

“못 가겠다. 쏴 봐라, 이 자식아. 그런 얘기는 들은 적도 없고 지금까지 그런 적도 없다. 그리고 이 사람은 우리를 안내하는 사람이지 책임자도 아니다. 이 개자식아.”

그리고는 치고 박고 싸웠다. 밖에 있던 놈들까지 합세해 1대3으로 싸워 완전히 쥐어 터졌다. 그 사이 신 기자는 경찰에 연락, 큰 사고 없이 사건은 마무리됐다.

그렇지만 이 일은 한국인이 동포를 상대로 어떻게 하든 돈을 벌어보려고 했던 일 같아 지금도 씁쓸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해 미국 경찰에게 큰 망신을 당한 적도 있다. 미국 동부의 한 바닷가에서 있었던 일이다.

낮 공연이 없는 날, 우리 연예인 대부분은 쇼핑을 하거나 호텔에서 잠을 자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곳 바닷가에 게가 잘 잡힌다는 소문을 들었다.

실제로 오징어를 꼬챙이에 감아 바닷가 돌 틈에 들이밀면 신기하게도 커다란 게가 무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많이 잡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몇 마리만 잡으면 될 것을 양동이 10개가 가득 찰 정도로 잡았다.

우리는 곧바로 현지 경찰에 걸렸고 겨우 사정한 끝에 풀려날 수 있었다. 이후 그곳에서는 법으로 관광객의 게 잡이가 금지됐다고 하니 지금도 얼굴이 붉어지는 사건이다.

82년 나와 조용필(趙容弼)이 LA공항에서 겪은 일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는 공항 밖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그때 점잖은 미국인 노부부가 우리에게 다가와 뭐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던 우리는 그냥 담배만 피워댔다.

5분 정도 지났을까. 노부부가 벼락 같은 소리를 질렀고 이 소리에 사람들 수십 명이 몰려들었다.

마침 한국인 신부 한 명이 지나가다 이 광경을 보고 통역에 나섰다. 노부부는 우선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너희 나라는 어떤 나라이냐? 어떻게 애와 어른이 맞담배를 필 수 있느냐?” 내가 대답했다.

“이 작은 사람은 미성년자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에요. 저는 유명한 코미디언이구요. 실제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부부는 막무가내였다. “당신이 코미디언인 것은 이해가 가는데 저 사람은 아무래도 아니야. 너무 어려. 여권 좀 보여 줘.” 결국 여권을 보여준 끝에 노부부는 “죄송하다”는 말을 여러 번 남기고 사라졌다.

당시에는 불쾌하기만 했던 이 사건이 지금은 오히려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인천공항에서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고 있을 때 이를 말릴 어른이 몇 명이나 될까. 대개 그냥 못 본 체 할 것이다.

그때 그 노부부도 바쁜 사람들이었을 텐데 우리를 붙잡고 끝까지 나이를 확인하는 모습에서 미국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 사건 후 조용필은 우리로부터 놀림을 받아야 했다. “어이, 미성년자. 나가서 피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