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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유행어사전] 슈퍼 전파자

입력
2015.06.1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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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전파자란 감염 환자 중에서도 보통 사람보다도 더 많이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키는 사람을 말한다. 메르스의 치사율은 처음에 40%로 알려졌다. 그런데 영어 위키피디아 메르스 항목의 수치를 놓고 계산해 보면 전세계적으로 치사율이 37.6%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면 18.1%, 중동 및 아프리카를 제외하면 12.4%, 한국까지 제외하면 33.3%다.

사우디는 빈부 차가 심하다. 허드레 일을 하는 다른 나라에서 온 막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늘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야 병원을 찾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우디의 통계는 의미가 없다. 메르스에 걸렸지만 병원을 찾지 않고도 저절로 나은, 가난하지만 면역력이 높은 사람들의 숫자가 여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한편 한국까지도 제외한 나머지 통계의 나라들은 대개 1~4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0~3명의 환자가 죽었다. 이런 나라들의 경우도 통계 수치로서는 거의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건전한 상식으로 말하자면 메르스의 치사율은 높게 봐줘야 12~18% 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무튼 초기에 이런 점을 제대로 밝혀주지 않은 의학 전문가 및 언론계 종사자야말로 사회, 문화적인 의미에서 메르스의 슈퍼 전파자 2번이다. 특히 의학 전문가들은 해서는 안될 말을 해서 사람들의 공포를 키웠고 해야 할 말을 안 한다거나 거짓말을 함으로써 병을 키웠다.

특히 14번 환자를 놓치고 나서도 온갖 변명과 거짓말로 국민과 언론을 속인 서울삼성병원은 책임이 매우 엄중하다. 게다가 삼성병원은 확진 환자가 밝혀진 뒤에도 바로 격리 등의 필요한 조치를 제때 취하지 않았다고 언론에 보도되었다. 물론 너그러운 나는 사정을 이해한다. 삼성그룹 전체로 봐서는 메르스보다는 엘리엇이 더 무서울 테니까.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반대하고 나선 미국계 사모펀드의 이름이다.

한편 대통령과 주무 장관은 처음부터 엉뚱한 사안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고, 메르스 문제에 대해 청와대는 스스로 “우리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정부와 주무 당국의 또 다른 과오는 정보를 제때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이은 선거에서 계속해서 여당 후보를 뽑아준 강남지역에서조차 “삼성 살리자고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었던 거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정부의 무능, 불통, 거짓말이야말로 이번 메르스의 슈퍼 전파자 1번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범유행병 경보 단계는 여섯 단계인데 제6단계는 서로 다른 지역들 사이의 국가들에서 전염병이 유행하는 경우다. 중동과 동아시아는 서로 다른 지역이니, 메르스는 6단계가 되어야 하는 게 정의상 맞다. 하지만 WHO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결국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메르스는 일종의 풍토병인 셈이다. 외국에서는 한국인의 유전자가 메르스에 취약한 게 아니냐란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결국 우리의 정치, 사회, 문화 시스템이 문제인 것이다.

슈퍼 전파자라고 분류된 환자들이 언론의 관심사가 되고 있지만 그들은 결국 피해자다. 그 분들의 발열, 기침 등은 몸 안의 면역체계가 바이러스와 싸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불과하다. 의심된 사람들 일부가 여러 곳을 돌아다닌 것은 정부의 격리 조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였다. 또 극히 일부 환자들이 병원을 전전하면서 병력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것도 치료 거부가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분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서는 결코 안 된다. 냉정히 따져보면 지금 한국의 메르스는 병원들의 응급실, 중환자실, 환자실 등이 전파하고 있는 중이다.

휴교한 아이들을 위해 영어 단어 공부를 해보자. 유행병(epidemic)과 풍토병(endemic)에는 공통 어근이 있는데 그 어원은 민중 내지는 국민(demos)이다. 접두사 ‘epi’는 여러 가지 뜻을 갖지만 여기서는 “among, upon”의 뜻이고 풍토병의 접두사 ‘en’은 “in”의 뜻이다. 민주주의란 말의 영어 어원까지를 놓고 생각해 본다면, 이번 한국의 유행병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결여에서 생겼다는 얘기에 고개를 끄떡이지 않을 수 없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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