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빅뱅의 멤버 탑(최승현ㆍ29)이 세계적 경매사 소더비의 가을 홍콩 경매에 큐레이터로 참여한다. 10월 3일 열리는 이브닝 경매 ‘#TTTOP’에 앞서 서울 신라호텔에서 프리뷰 전시도 갖는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연예인의 큐레이터 입문 사례는 찾기 어렵다. 대중문화와 순수예술의 경계가 점차 옅어지는 추세기는 하나 그 간극이 여전한 데다, 큐레이터에게는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과 안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더비가 탑에게 컬래버레이션을 제안한 데는 탑의 컬렉터 경험이 감안됐다. 이미 업계에서 열정적인 컬렉터로 소문난 탑은 20대 초반 디자인 가구를 모으기 시작해 그 관심을 점차 현대미술 전반으로 확대해갔다. 과거 인터뷰 등에서 수입의 대부분을 작품 구입에 사용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중성이 높은데다 “아시아의 젊은 컬렉터들을 기념”한다는 이번 소더비의 기획 의도에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국내에서 연예인 컬렉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이후로, 미술시장의 성장과 맥을 같이 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1989년 해외 여행이 전면 자유화되며 해외 작가ㆍ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고 구입도 수월해졌다”며 “아트페어가 국내에서 자리잡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시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타 컬렉터가 미술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미술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그들을 선도자로 여기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일반인의 구매나 작품 가격 상승과도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미술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경매를 띄우기 위해 스타의 대중적 인지도를 빌리는 ‘이벤트’에 불과하고 이후 이런 마케팅이 유지ㆍ확대될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전망한다. 이런 기획에 적합한 스타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어려졌다, 컬렉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고급 취미로 여겨졌던 미술품 수집에 젊은 층들이 대거 유입되는 등 국내 미술시장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마음만 먹으면 작품 하나쯤 살 수 있는 통로가 계속 생겨나고, 여기에 경제적 이유로 기존 미술시장에서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었던 20, 30대가 적극 부응하고 있다. 소더비의 에블린 린 아시아 현대미술 디렉터는 “젊은층의 컬렉팅 문화 확산은 한국만이 아닌 국제적인 현상”이라며 “이들은 문화와 장르의 경계를 넘어 다양하고 폭넓게 작품을 수집한다”고 말했다.
국내 수십 개 아트페어 중에서도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워 초보 컬렉터를 겨냥한 페어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누구나 쉽게 미술품을 구입할 수 있는 문화’를 위해 지난해 처음 국내 도입된 ‘어포더블 아트페어(Affordable Art Fair)’ 관계자에 따르면, 구매자 중 30%가 태어나 처음 작품을 구매했고 방문자 중 열에 아홉은 재방문 의사를 밝혔다. 연령별로는 20대가 29%, 30대가 23% 등 40대 미만 구매자가 60%를 차지했다.
온라인 경매도 진입장벽을 낮추는 요인이다. 가격대가 높은 작품을 주로 다루는 현장 경매와 달리 온라인 경매는 판화나 소품 등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의 작품을 선보인다. 아트토이, 명품 자전거, 디자인 가구 등도 젊은 소비자의 구미를 당긴다. 서울옥션 손지성 홍보수석은 “최근 신규 고객이 늘고 그 연령대가 상당히 낮아졌다”며 그 원인을 “피규어 등으로 경매에 참여한 고객들이 자연스레 관심을 미술품 전반으로 확장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유명 화가의 에디션 작품 등을 주로 선보이는 갤러리 또한 젊은 고객들이 작품 구매를 위해 자주 찾는 장소 중 하나다. 구입을 위해 일부러 방문하는 고객도 있지만, 우연히 들렀다 결제까지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삼청동ㆍ한남동에 매장을 둔 프린트 베이커리(빵을 사듯 작품을 산다는 뜻) 관계자는 “최근에는 한류스타 A씨가 박서보의 ‘묘법’ 판화를 178만원에 구매했다”고 말했다.
“취향 따라” “차별화 위해”
신진 작가의 미술품 구입은 향후 그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시장이 해당 작가를 알아봐줄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거의 투자 목적이 아니다. 젊은 컬렉터를 시장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바로 “취향”이다.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기호를 분명히 파악한 뒤 이에 부합하는 작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단순히 공간을 돋보이게 하는 소위 ‘벽지 그림’ 찾기와도 구분된다. 한국미술경영연구소 김윤섭 소장은 “10여 년 전 아트 재테크 강의를 시작할 땐 투자 목적으로 수강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10명 중 7명이 자신의 취향을 우선 순위에 두고 작품에 접근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따라 구성한 컬렉션은 다른 이들과 차별화하기 위한 좋은 전략이 된다. 특히 대중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로 먹고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닌 연예인들에겐 더할 나위 없다. 순수예술에 대한 관심 자체로 다른 연예인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데다, 컬렉션을 통해 자신의 안목과 소양을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컬렉터라는 개인적 취미가 연예인으로서의 가치까지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홍경한)는 것이다.
미술품 구매층 확대는 젊은 세대가 문화소비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문화 소비에 익숙한 이들은 산업사회에서 중시했던 생산성에 얽매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삶의 질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져 문화 향유 자체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그것이 미술품 컬렉팅이라는 새로운 소비 행태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매출만 놓고 보면 젊은 컬렉터들의 영향력은 아직 크지 않다. 그러나 값비싼 소수의 작품만으로 미술시장 전체를 설명하는 것은 이제 불완전해졌다는 지적은 설득력 있다. 김윤섭 소장은 “재테크 차원과 취향ㆍ아트 라이프를 위한 수집으로 미술시장이 양분화되는 현상이 앞으로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블린 린 디렉터도 “아시아 고객 중 20% 이상이 40세 미만”이라며 “옛 세대와 새로운 세대 모두 열정적으로 각자의 컬렉션을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