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로 명명된 약 320만년 전 여성인류 화석 당사자의 사망 원인이 추락사로 분석됐다고 한다. 1973년 에티오피아 아와시 강가에서 발견된 루시는 현생 인류 이전에 존재했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는 일종의 원인(猿人)이다. 키 약 107㎝, 몸무게 28㎏, 나이 25세로 추정된 루시가 인류의 가장 오랜 직접 조상으로 꼽히는 이유는 직립보행 때문이다. 화석으로 남은 무릎뼈의 양태와 지금의 인류처럼 활 모양으로 굽은 척추가 그 흔적이다.
▦ 루시는 인체의 46%에 해당하는 뼈들을 화석으로 남겼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 존 카펠만 교수팀은 2008년 이래 그것들을 3차원(3D) 스캐너 등으로 분석해왔다. 그 결과 어깨 다리 발목 골반 갈비뼈 등의 골절을 발견했고, 침팬지의 추락사고 등과 비교연구를 통해 추락사로 추정했다. 특히 연구팀이 루시의 어깨뼈 골절형태를 근거로 그녀가 12m 이상의 높이에서 시속 60㎞의 속도로 떨어졌다고 추정한 부분은 루시가 주로 나무에서 생활했다는 기존 연구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적잖은 상념을 자극한다.
▦ 명저 <인간의 역사>를 쓴 옛 소련의 계몽과학자 미하일 일린(1895~1953)에 따르면 인류가 원숭이와 다른 진화의 길로 나아간 계기는 기후변화다. 수백만 년 전 인류의 조상들은 당당한 떡갈나무조차 왜소해 보일 정도로 높이 치솟은 수목이 그득한 열대림에서 원숭이나 침팬지 등과 함께 숲의 최상층부에서 살았다. 그런데 빙하기가 오면서 점차 열대림의 경계는 저 아래 남쪽으로 이동했고 원래의 은성한 숲은 훨씬 풀이 죽고 쓸쓸해졌다. 나무들은 성기고 키는 낮아졌으며, 볕이 들게 된 공지엔 사슴과 무소가 풀을 뜯는 모습이 나타났다.
▦ 원숭이들은 열대림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다. 반면 인류는 남아, 그 옛날 아름드리 수목의 꼭대기에서 꼭대기로 느긋하게 이동하며 무화과 열매나 따 먹던 안락을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나무 사이는 점차 벌어졌다. 결국 오랜 공중이동의 습성을 버리고 땅 위로 내려와 맹수와 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법을 깨우쳐 나가야 했다. 루시가 살았던 때가 바로 그 과도기다. 320만년 전, 루시는 맹수에 쫓겨 나무에 올랐다가 문득 건너편 나뭇가지에 핀 빨간 열매에 홀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더는 불가능해진 공중이동을 하겠다고 섣불리 몸을 날렸던 건 아닐까.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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