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타워 탐구생활
시미즈 히로유키 지음
유어마인드 발행ㆍ280쪽ㆍ1만4,000원
덕후(‘오타쿠’를 한국식으로 바꿔 부르는 말)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지만 ‘타워 덕후’는 들어본 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홍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일본인 시미즈 히로유키(39)씨는 한국 타워 덕후다. 일본에서 출판사에 근무하다가 2006년 어학연수를 계기로 한국에 발을 붙인 그는 구리시에 있는 구리타워를 보고 한 눈에 반해 지금까지 한국 타워의 열성팬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 타워 탐구생활’은 시미즈씨가 지난 7년간 방문한 타워들 중 베스트타워 15곳을 골라 쓴 감상문이다. 남산 N서울타워를 비롯해 83타워, 완도타워, 송지호 철새관망타워, T-light 공원 달전망대, 용인 아르피아타워, 우주발사전망대, 한빛탑 등 한국인도 처음 들어보는 타워에 대한 정성스런 후기가 담겼다.
왜 하필 타워일까. 어떤 도시에 새로운 타워가 세워진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방문 목록을 갱신한다는 시미즈씨는 타워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갖고 있다. 첫째, 세로로 길고 가는 건축물일 것. 구체적으로 몇 미터 이상이라기보다는 주위 건물보다 높으면 된다. 둘째, 최상층에 일반개방형 전망실이 있을 것. 꼭대기에 레스토랑이 있는 건물은 식사를 해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순수한 의미의 타워라 할 수 없다. 셋째, 중간층이 유용한 공간으로 채워져 있지 않을 것. 아무리 높고 전망대가 있더라도 사무실과 가정집으로 빽빽한 건물은 그냥 고층 빌딩이다. 이런 의미에서 종로타워도 탈락이다.
시미즈씨가 사랑하는 타워는 한마디로 ‘타워를 위한 타워’다. “타워의 아름다움은 쓸데없음, 무의미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최상층에서 경치를 바라볼 수 있을 뿐 다른 용도는 딱히 없는 거대 건축물, 그것이 나에게 있어 이상적인 타워다.”
사소한 데서 진지하게 구는 사람을 구경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용인 아르피아타워를 찾아간 시미즈는 100m가 넘는 건물에 하수처리 시설 굴뚝 외엔 아무 용도가 없다는 것, 밤 9시까지 문을 연다는 사실에 대단히 흡족해한다.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시간까지 문을 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타워의 자존심이란 것이다. N서울타워에서는 사랑의 자물쇠가 점점 늘어나 나중엔 남산 전체를 덮지 않을까 시름에 잠기고, T-light 공원 달전망대에서는 바닥을 유리로 설계한 자가 사디스트가 아닐까(타워 덕후답지 않게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한다) 의심한다.
책에는 ‘장방체’나 ‘유압식’ 같은 고급 단어도 나오다가 “소개해 버렸다” 같은 일본식 표현이 튀어 나오는데, 알고 보니 저자가 직접 한국어로 책을 썼다 한다. 본문 뒤에는 미처 포함시키지 못한 타워 35개를 정리해 수록했다. 타워를 시간 때우기용 관광지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시미즈씨는 역으로 한국 타워들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촉구한다.
“타워의 위치, 만들어진 의도, 비현실적인 외관들을 자세히 보면 정말 친근감 있고 매력적입니다. 한국 분들이 타워를 많이 좋아해 주시고 앞으로 도시마다, 동네마다 타워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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