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림
객원기자

등록 : 2018.05.26 04:40
수정 : 2018.05.26 09:20

[푸드 스토리] 대충 끼니에서 별의별 미식으로... 편의점 도시락 무한 변신

등록 : 2018.05.26 04:40
수정 : 2018.05.26 09:20

요즘 편의점에서는 무엇이든, 정말로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우리는 모두 편의점에 빚을 지고 있다. 출출할 때 빠르게 삼각김밥 하나, 갈급한 숙취 해소엔 후루룩 컵라면 하나, 축 처진 귀가길 간편한 안주 요리 하나, 그리고 맥주 네 캔. 편의점이 없었다면 이 모든 필요를 어찌 그리 편리하고 빠르게 채울 수 있었을까.

이름 그대로 소비자의 생활 편의를 돌보는 편의점은 한국에서 1989년 세븐일레븐 1호점이 생긴 이래 현재 3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21세기 들어 소비자의 생활 패턴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편의점은 그 행보에 민감하게 발을 맞추며 이제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 들어 있다. “한국에 교회 불빛이 더 많을까, 편의점 간판 불이 더 많을까?” 하는 이야기가 농담이 아닐 정도로 편의점은 골목 코너마다 자리 잡고 도시를 밝힌다.

간편식 시장이 부상한 데엔 젊은 소비자층의 생애주기 과업이 변화한 흐름이 궤를 같이 한다. 20, 30대 1,2인 가구 수가 빠르게 늘며 과거 전업주부의 역할 중 취사 부분을 간편식 시장이 담당하게 된 것. 그리고 그 시장을 가져간 것은 재래시장도, 대형마트나 백화점도 아닌 편의점이었다. 2016년 GS25는 도시락 성장세에서 176.9% 증가를 기록했다. 현재도 꾸준히 30%대 성장률을 유지 중이다. 태생적으로 편의점은 20, 30대 1,2인 가구를 위해 기획된 형태의 유통이다. 간편식을 간편하게 사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니 편의점 간편식의 부상은 필연이다. 아무 데나 있고, 금방 살 수 있으며, 어지간히 필요한 것은 다 갖추고 있다.

특히 간편식의 여러 종류 중 RTE(Ready to eat)와 RTH(Ready to heat)에선 편의점이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앞서 삼각김밥과 컵라면, 전자레인지용 요리가 편의점의 원시시대 간편식이었다면, 중세시대엔 도시락이 등장했다. 연예인을 앞세워 신뢰감을 주고 도시락 자체를 캐릭터화했던 시대의 편의점 도시락이다. 김혜자, 백종원, 강레오, 홍석천, 혜리, 토니안 등 숱한 연예인들이 편의점 도시락의 얼굴이 되었고, 현재도 그러하다. 중세 편의점 도시락의 특징은 동물성 재료, 즉 고기를 주로 구성됐으며 ‘편도(편의점 도시락)’가 가진 서러움의 정서를 자극하지 않는 다양한 찬을 갖춰 ‘그래도 이만하면’이라는 타협적인 만족감을 줬던 것이었다.

원시시대와 중세시대 이후 현대의 도시락은 어떨까. 한 마디로 대단하다. 이전까지의 편의점 도시락은 대충 끼니를 때우는 정도(원시)에서 집밥 또는 가정식 백반의 보완재(중세)였다면, 현재의 편의점 도시락은 시장이 확장되며 외식을 대신할 정도로까지 메뉴가 다양화되었고, 품질 또한 기술의 힘을 얻어 향상되고 있다.

‘고기 반찬’ 피로감 해소할 연어와 홍게, 장어

GS25에서 여성층과 다이어트 수요에 맞춰 출시한 닭가슴살도시락(왼쪽), 연어구이 도시락. GS25 제공

최근 출시되고 있는 신상품도 흥미롭다. GS리테일 MD본부 간편식품부문 FF팀 권오상 과장은 “일단은 점주들의 목소리부터”라고 말한다. 반찬 가짓수가 많은 도시락을 출시하고 있는 것도 점주들이 파악한 소비자 취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육류가 반찬 구획을 넓게 차지하지만 권 과장은 “채소를 섭취할 수 있는 반찬 구색도 신경 쓰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독자적인 ‘유어스’ 브랜드를 출시하고 유명인 마케팅을 줄여나가는 만큼 만족도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는 의미다. 동시에 투트랙 전략으로, 이색 메뉴 개발에도 힘쓴다. 실제 새로운 ‘편도’ 소비층인 여성을 공략한 닭가슴살, 연어 도시락이 좋은 반응을 얻어 시장을 확장해가고 있고, 아울러 장년층에 소구하는 제품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의 조리는 일반 가정의 조리와 다르지만 재료는 거의 동일하고, 기술적으로 가정식 조리의 맛을 거의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이 권 과장의 자신만만한 설명이다.

BGF리테일 간편식품팀 황지선 MD는 ”집밥을 콘셉트로 동해홍게딱지장, 꼬막, 불고등어 등 제철과 지역성을 살린 도시락을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는데 포화상태에 이른 ‘고기 반찬’의 피로감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고기보다 구미 당기는 메인 메뉴를 채택하는 전략으로 보인다. 실제로 1만원대 장어 도시락도 가격대에 구애 받지 않고 가성비를 충족하는 도시락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간장새우장이나 가쓰오올린계란말이 같은 반찬류 제품도 고루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플루언서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황 MD는 “식당이나 레스토랑에서 먹던 다양한 메뉴들이 앞으로 편의점 도시락으로 개발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유미 세븐일레븐 푸드팀 CMD는 “외식 비용이 인상됨에 따라 직화소불고기덮밥이나 가츠동처럼 전문점에서나 먹을 수 있었던 메뉴를 도입한 트렌디한 편의점 도시락이 가성비 제품으로 주목 받고 있다.”며 “최근엔 반찬 수를 늘리기보다는 메인 메뉴의 품질과 맛을 올린 도시락이 각광받는 추세”라고 했다.

CU에서 매출 1위를 기록 중인 백종원 매콤불고기정식도시락. CU 제공.

미니스톱 FF2 미반팀 부재화 MD는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혼자서는 즐길 수 없었던 메뉴들을 편의점이 1인용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4,5년 전까지만 해도 메뉴화되지 못했던 생선 등 식재료도 편의점 도시락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며 “편의점 산업이 발달한 일본의 편의점을 벤치마킹해 유명 식당, 프랜차이즈 등과 협업한 도시락 등 신선한 콘셉트의 도시락 개발에 힘쓰고 있다”고도 했다. 미니스톱에선 4월 일본의 규동 전문 프랜차이즈인 ‘마츠야’와 협업한 스페셜규동을 출시했고, 3월엔 커리&9겹돈가스도시락을, 4월엔 함바그덮밥을 출시했다. 편의점을 자주 찾는 소비층이 늘어감에 따라 별미 도시락에 대한 수요가 늘어간다는 것. 미니스톱 부재화 MD는 “편의점 도시락이 이제 못할 메뉴는 없다”고도 말했다. “식품 안전에 문제가 없는 한 아무런 한계도 없다”는 이야기다.

“편의점 도시락이 못할 메뉴는 없다”

인플루언서들에게 일명 ‘갓띵작’(신이 만든 명작이라는 뜻)으로 평가 받는 세븐일레븐 밥도둑연어장. 세븐일레븐 제공

편의점 도시락에 더 이상 한계가 없다는 데엔 이마트24 FF팀 손주현 MD도 같은 의견을 보내왔다. 수요가 증가하고, 기술이 발달하며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편의점 업계는 스스로 한계를 깨나가는 중이다. 가장 늦게 출발한 이마트24는 더욱 더 세상에 없던 것을 탐구한다. 조립해 먹는 초밥을 두 종류 출시해 이어가고 있으며, 고전적 백반형 도시락에서도 푸짐한제육&불고기도시락, 바싹고추장불고기도시락 정도가 평범할 뿐이다. 안동찜닭도시락, 중화깐풍기도시락, 뉴정통함박스테이크도시락 등 이색적인 메인 메뉴가 판매치 상위권에 있다. 도시락 판매량 1위와 4위에 있는 것은 백반형이 아닌 덮밥형인 것도 차별점이다. 더커진참치마요덮밥, 에그&참치김치덮밥이 각각 1위와 4위다.

싱싱한 고수가 들어있는 쌀국수, 외식 단골 메뉴로 면이 거의 불어있지 않아 만족스러운 파스타, 푸드트럭의 인기 메뉴인 큐브 스테이크, 진득한 육수와 생생한 고명을 그대로 재현한 일본식 라멘, 아삭거리는 채소, 샐러드와 촉촉하게 구워진 연어가 들어있는 다이어트 도시락, 그리고 심지어 새우, 문어 등 싱싱한 재료가 들어 있는 초밥까지도 모두 편의점에 있다. 심지어 냉장유통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저가 식당의 퀄리티까지 바싹 따라잡았다. 이제 편의점만 있으면 못 먹을 음식이 없다. 분명 편의점은 우리의 식생활을 구원하고 있다.

이마트의 덮밥 도시락 중 더커진참치마요덮밥 도시락. 이마트24 제공

동시에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도 작용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가격대의 소비재이기에 가능한 만인의 오락이다. 편의점 도시락 신상품이 나오면 유튜버들은 앞다투어 리뷰 먹방을 제작하고, ‘편의점 전문’ 블로거들과 인플루언서들은 별점을 매기기 바쁘다. 물론 그 콘텐츠들과 포스팅들엔 득달 같은 ‘따봉’이 줄줄이 달린다. 2017년 GS25에서 출시한 속초붉은대게딱지장이 대표적이다. 출시 후 1개월 만에 48만개가 판매됐고 11개월 만에 300만개 판매 기록을 세웠다. 디저트 상품군 역시 편의점 간편식에서 거센 바람인데, GS25의 모찌롤은 8개월 만에 400만개를 팔아 치웠다. 로얄티라미수 역시 베스트셀러다. 이러한 큰 반향을 얻어낸 제품의 질은? 집중적으로 많은 제품을 시식해 봤는데 예상보다 훨씬 훌륭하다.

‘갓띵작’ 연어장 등 편의점 식생활 직접 해보니

편의점만으로 풍요로운 식생활이 가능할까? 답은 “그렇다”이다. 며칠간 GS25, CU,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이마트24의 편도에 식생활을 전부 다 의탁해 봤더니, 맛없는 식당에 가서 실패하는 것보다 편의점에서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먹는 것이 만족스럽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데 식당을 찾아가거나 일행을 섭외할 여유가 되지 않을 때도 편의점은 빠르고 편리하게 어느 정도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다. 맛과 질에 있어 다소 아쉬운 부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 편의점을 단지 싸고 질 낮은 정크푸드나 파는 필요악으로 볼 시대는 훌쩍 지나갔다.

GS25의 백반형 도시락 코너를 돌아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볶음밥의 존재다. 퓨전, 양식 메뉴가 늘어감에 따라 밥도 반찬에 맞춰 볶음밥 스타일을 넣고 있다. 요리 하나가 더 주어지는 셈이다. 도시락의 기본은 밥인데, 완전미 비율이 95% 이상인 쌀을 몇 군데 종합미곡처리장과 계약해 매일 도정, 공급 받고 있다는 것이 GS리테일 MD본부 간편식품부문 FF팀 권오상 과장의 설명이다. 맨밥도 꽤 좋은 식감을 내는 이유다.

틈새 수요를 공략한 미니스톱의 크로와상샌드&브런치박스. 미니스톱 제공.

CU에서는 백종원 도시락이 ‘집밥 백선생’ 시절부터 쭉 CU 도시락의 얼굴이 되고 있다. 실제 판매치 상위권엔 다 백종원 도시락이 포진하고 있다. 작게 나눠진 칸 안에 두 가지 반찬이 있는 등 의도적으로 다양한 반찬을 넣은 것이 특징. 쌀알이 크고 밥을 했을 때 보관성이 좋은 신동진 쌀을 썼다. 도시락 못지 않게 CU는 쿠키&생크림케이크, 쇼콜라생크림케이크 등 디저트에서도 수작을 만들어내며 강세를 보인다. 장안의 화제인 CU 모찌롤은 전량 매진 상태라 결국 맛도 보지 못했다.

세븐일레븐에선 우수한 품종으로 정평 난 삼광 쌀을 사용한다. 11찬도시락 등 고전적인 가정식 스타일의 도시락이나 돈가스를 메인 반찬으로 한 도시락들이 상위권에 있지만 토니안직화소고기덮밥, 토니안가츠동처럼 일품 도시락도 빠르게 계단을 오르고 있다. 모차렐라비프도리아 같은 양식 메뉴도 10위권 안이다. 뭐니뭐니 해도 세븐일레븐 하면 ‘밥통령’ 시리즈인데 그 중 밥통령연어장은 ‘갓띵작’(‘명작’을 일컫는 인터넷 은어에 최고라는 의미의 ‘갓(god)’을 붙인 것)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전설의 아이템이다. 새우장, 꼬막장 등 같은 시리즈 아이템도 좋은 반응을 얻는다. 편의점 디저트의 대세인 모찌롤은 세븐일레븐에서도 출시해 모찌롤케익(우유)이 디저트 분야 매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니스톱은 상대적으로 적은 가짓수의 도시락을 갖추고 있지만 내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스테디셀러인 한상차림도시락, 뉴순창고추장불고기도시락 등이 안방을 지키고, 스페셜규동이나 모차렐라치즈스파게티, 크로아상샌드&브런치박스, 뉴정통탕수육, 찹스테이크 등 특색 있는 메뉴들이 만족도를 채운다. SNS의 노출 빈도와 주 소비층이 있는 대학가, 오피스 지역의 매출을 분석해 수요 조사를 하는 만큼, 20~30대 남성 핵심 소비층의 입맛을 확실히 공략하는 맛이다.

다른 곳에 없는 메뉴가 많은 이마트24는 앞서 말했듯 메뉴도 차별화 돼있지만, 맛도 차별화 돼있다. 타사 제품에 비해 확연히 덜 자극적이다. 단지 ‘단짠+감칠맛’ 등식만으로 이뤄지지 않고 조금 더 섬세한 맛의 프로파일을 추구한 듯 하다. 이는 입맛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테지만 적어도 ‘편의점 음식은 정크푸드’라는 구세대의 선입견을 깨는 데는 충분하다. 정상미 90% 이상 쌀을 사용하고 보관 시 최적온도를 지키는 등 밥에 대한 노력도 다른 편의점들과 마찬가지로 만반을 기울인다. 편의점의 주요 타깃 층인 20,30대 남성으로만 구성된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의 요리사들과 여러 편의점 제품을 놓고 시식했을 때 ‘이만하면 즉석밥만큼 맛있다’는 몰표를 받기도 했다.

이해림 객원기자(herimthefoodwri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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