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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저임금 시대의 희망 없는 총선

입력
2016.04.05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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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생계 수단이자,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이며,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다. 임금의 결정에는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 가치의 희소성과 생산성, 그리고 노동조합의 유무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영향을 미친다. 역사적으로 임금은 기업의 성장과 생산성 향상 등에 따라 꾸준히 상승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4년 우리나라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소득은 약 430만원으로 10년 전에 비해 35%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임금 상승 이면에는 ‘평균’의 함정이 내재한다.

1980년대 이후의 세계적 경향으로 근로자 평균 임금은 올랐지만 1인당 실질임금은 지체되었다. 노동시장이 다수의 저임금과 소수의 초고임금 계층으로 분리되었고, 고임금 계층이 임금의 명목 평균을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상위 1%에 돌아가는 국민소득의 몫은 1970년대 8~9% 수준에서 2007년 23%를 넘었다. 우리나라도 2014년 소득 상위 10%의 월평균 소득은 1,000만원에 달했지만 하위 10%의 소득은 100만원 미만이었다.

더 큰 문제는 임금이 경기변동에서 이탈해 낮은 수준으로 구조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실업과 임금의 반비례 관계 즉, 실업률이 낮아지면 임금이 상승한다는 필립스의 가설을 오랫동안 지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일본, 미국 및 영국 등의 실업률이 20년 내 최저 수준임에도 근로자들의 임금은 지체되거나 하락했다. 탈 필립스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소득의 소수 집중과 저임금 구조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산업구조의 변화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서비스업 비중은 제조업을 압도한다. 문제는 서비스업의 대부분 일자리가 저임금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이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빅3 유통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6,030~6,400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인 반면, 사업보고서에 나타난 주요 제조업 근로자들의 2015년 일년간 1인당 평균 임금은 1억원에 달했다.

서비스업 일자리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는 점도 저임금을 구조화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유통업 판매종사자 가운데 계약기간 1년 미만인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은 61.3%에 달한다. 전체 임금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이 35% 수준이니 유통업의 경우 평균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용률이 개선되어도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는 구조적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쇠퇴도 임금 문제를 악화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서구의 경험으로 보자면 1960년대와 70년대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이며, 근로자들의 소득과 생활수준이 최고였던 시점이다. 인구사회학적으로 보면 중산층이 제일 두터웠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번영의 시기 이후 노동조합은 쇠퇴를 거듭했고 산업구조 조정에 따른 제조업 소멸로 조직화 기반도 약화되었다. 따라서 임금개선을 위한 노동조합의 역할도 더 이상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미국의 노동 정책학자이자 노동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경제적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고 다수 근로자들의 임금 수준이 구매력을 상실하면 경제위기가 본격화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사회가 어떻게 구조적 저임금과 양극화의 터널을 벗어날지 아무리 생각해도 해법이 많지 않다. 정부의 능력에도 신뢰가 가지 않고 노동조합에게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선거철만 되면 고장난 전축 틀 듯 최저임금 인상을 들고 나서는 정치권에 대한 기대는 이미 버린 지 오래다.

제레미 벤담에 따르면 부자에게 100만원을 걷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면 부자의 행복에는 거의 영향이 없지만 가난한 사람의 행복은 훨씬 증가한다. 이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기반한 공리주의적 자원배분 전략인데 희망 없는 시대에 우리가 되새겨 볼만 한 해법이다. 우울해도 희망은 버리지 말자.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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