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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조기집행, 부양효과보다 예산낭비 등 부작용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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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조기집행, 부양효과보다 예산낭비 등 부작용 커”

입력
2017.01.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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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경기침체 대응 전략으로

1분기에만 예산 31% 풀기로

14년째 땜질식 처방 반복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

소비ㆍ투자 자극하는 정책 시급”

정부가 경기를 살리겠다며 전체 예산의 60% 안팎을 상반기에 당겨쓰는 재정 조기집행을 ‘전가의 보도’처럼 동원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부작용과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마다‘상반기 재정 조기집행→하반기 재정절벽→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속전속결’기조 속에 예산집행이 부실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가 경제체질의 근본적인 개선 없이 매년 ‘땜질식 처방’에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1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은 ‘재정 조기집행을 통한 경기침체 대응’이다. 정부는 상반기 재정 집행률을 58%로 정하고, 1분기에만 역대 최고인 전체 예산의 31%를 집행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초과 세수에 따른 지방교부세ㆍ교육교부금 정산분(약 3조원)을 예년보다 이른 4월에 지방자치단체에 지급하고, 연간 재정집행률을 지난 5년 평균(95.5%)보다 1%포인트(3조원) 높이는 재정보강 방안도 실시한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4일 ‘긴급집행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400조원의 예산 집행을 장관들이 직접 챙기라”고 독려했다. 조기집행을 현안으로 장관급 회의가 소집된 것은 처음이다.

재정 조기집행은 2002년 이후 14년째 반복되고 있는 ‘단골 메뉴’다. 특히 박근혜 정부 4년간(2013~2016년) 상반기 평균 재정 집행률은 59.5%에 달한다. 조기집행은 상반기 지출 극대화를 통해 경제에 활력을 일찍 불어넣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산수립 시간표상(8,9월 내년 예산안 발표→연말 예산안 확정→세부 집행계획 수립) 세부사업의 실제 지출 시기가 하반기로 쏠리는 구조적인 비대칭성도 완화할 수 있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정치적 혼란과 조류인플루엔자(AI) 이슈 등 연초부터 경기여건이 안 좋은 만큼 조기집행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기집행에 ‘양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상반기 재정을 끌어다 쓴 결과 하반기 재정절벽으로 경기가 가라앉으며 ‘상고하저’의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최근 5년간(2011~2015년) 하반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모두 정부 전망치(한국은행 경제전망 기준)를 밑돌았다. 특히 하반기 재정절벽을 보완하기 위한 추경을 편성하지 않은 2012년과 2014년 하반기 실제 성장률과 전망치 간 차이는 각각 -1.1%포인트와 -0.8%포인트에 달했다. 때문에 ‘상반기 재정 조기집행→하반기 재정절벽→추경 편성’의 악순환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연간 단위로 보면 조기집행에 따른 경기 부양 효과는 크지 않다. 작년 1월 조세재정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4년 당시 재정 조기집행의 당해년도 총수요 유발효과는 GDP의 0.04%에 불과했다.

더 큰 문제는 조기 지출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예산 집행이 부실해 질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경제부처 관계자는 “예산권을 지닌 기재부에서 수시로 각 부처별 예산 집행의 진도율을 점검하며 압박을 가하면 부처 입장에서는 세부 사업의 관리계획이 부실하거나 미흡한 상태에서도 지출을 강행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조기집행에만 신경 쓰면 정부가 사업 속도를 내기 위해 토지보상을 과도하게 해주는 식의 예산낭비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는 재정지출의 효율성을 갉아먹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경제체질 개선 등의 근본적인 노력 없이 연례행사처럼 재정 조기집행 카드를 꺼내 드는 정부의 ‘습관’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체 예산의 60% 가량을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경직성 경비(인건비, 기본경비 등)가 차지하기 때문에 상반기 집행률을 80%까지 끌어올리지 않는 한 조기집행만으로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이제는 저소득층ㆍ청년층에 대한 직접지원 등 재정지출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시점인데 매년 내용 하나 안 바꾸고 조기집행만 고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도 “조기집행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에 불과하다”며 “경제주체의 소비ㆍ투자 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근본적 정책이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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