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소영 기자

등록 : 2016.10.07 16:56
수정 : 2016.10.07 17:28

강제 키스 후…‘오늘부터 1일’이라고?

[사소한소다] <9>2016년의 데이트폭력

등록 : 2016.10.07 16:56
수정 : 2016.10.07 17:28

게티이미지뱅크

‘이별 통보, 여자친구 찾아가 염산 테러’, ‘이별 통보에 여자 태운 차 몰고 바다 뛰어든 남성’.

인터넷에서 ‘이별 통보’로 검색하면 나오는 기사 제목들이다. 지난달 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원룸 화재 사건때 주민들을 구하고 사망한 안치범씨도 한 남성이 여자친구의 이별 통보에 화가 나서 불을 지른 데이트폭력 사건 때문에 피해를 본 억울한 희생자였다.

이처럼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이별 범죄’로 대표되는 데이트폭력 때문에많은 여성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데이트폭력을 피하기 위한 ‘안전 이별’ 이란 말도 널리 퍼졌다.

문제는 데이트폭력이 연애 관계가 끝날 때 갑자기 발생하는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관련 설문조사에서 최초의 데이트폭력은 사귄 후 3개월 미만인 연애 초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데이트폭력 피해자 10명중 7명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열린 ‘데이트폭력 피해 당사자 지원정책, 이대로 좋은가’토론회에서는 올해 진행된 데이트폭력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설문조사는 지난 달 12일부터 21일까지 인터넷을 통해 18세 이상 성인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총 1,082명이 참여했고 응답자의 93.9%는 여성이었으며 18세에서 24세 사이가 76%로 가장 많았다.

5일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서울 중구 환경재단의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데이트폭력 실태조사 토론회에서 이은의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여성응답자의 61.6% ‘데이트폭력 피해 경험있다’

데이트폭력은 크게 ▦통제 ▦언어적ㆍ정서적ㆍ경제적 ▦신체적 ▦성적 경험으로 분류한다. 여성응답자의 61.6%가 최근 데이트에서 한 종류라도 피해를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네 종류의 피해경험이 모두 있다고 답한 응답자도 11.5%나 됐다. 유형별로는 ▦통제 폭력 62.6% ▦언어적ㆍ정서적ㆍ경제적 폭력 45.9% ▦신체적 폭력 18.5% ▦성적 폭력 48.8%였다.

한국여성의전화 데이트폭력 실태조사

“짧은 치마 입지마” 통제, 연애 중 가장 먼저 만나는 폭력

데이트폭력의 유형 중 가장 흔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통제’다. 통제란 데이트 상대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다. 통제 피해 경험이 있는 여성응답자 중 45.1%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 항상 확인’하는 것을 적어도 한 번 이상 경험했다. 거의 매일 확인하는 경우를 당한 응답자도 17.3%였다. 다른 통제 유형으로는 옷차림을 제한(36.9%)하거나 통화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전화(30.2%)하고 데이트상대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강제로 그만 두게하는 경우(29.5%), 일정을 통제하고 간섭한 경우(28.5%) 등이었다.

통제는 연애 기간 중 가장 먼저 시작되는 데이트폭력이자 다른 폭력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지만 피해자들도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드러나지 않는 폭력이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이렇게 짧은 치마 입지 말랬지” “지금 누구랑 있는 거야?”라는 식의 통제는 ‘사귄 후 1개월 미만’일 때 나타나는 경우가 30.5%로 가장 높았다. 욕설을 하거나 물건을 던지고 협박으로 돈을 갈취하는 등 언어적ㆍ정서적ㆍ경제적 폭력과 상대방 의사와 상관없이 몸을 만지거나 음담패설을 하는 등의 성적 폭력의 경우는 사귄 후 1개월~3개월 미만일 때 주로 나타났다. 팔목을 낚아채거나 머리채를 잡는 위압적 행위 등을 포함한 신체적 폭력은 사귄 지 6개월~1년 미만 일 때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통제 이외에 다른 세 유형의 피해를 본 여성들도 70% 이상이 통제를 경험했다고 응답해 통제와 다른 유형의 폭력간에 상호연관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통제를 목적으로 한 상대방의 행동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응답자들은 통제에 대해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38.9%), “아무렇지 않았다”(35.8%), “사랑한다고 느꼈다”(32.1%)고 답했다. 당연히 반응 또한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다”(47.6%), “상대의 기분에 맞춰 주었다”(42.3%)가 대부분이었다.

조재연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장은 “데이트에서 발생하는 통제는 연인 사이에 마땅히 따라야 할 행동규율로 규범화되고 이를 어기면 비난과 처벌을 통해 순응을 이끌어내 규율을 더욱 강화시킨다”며 “여성에 대한 통제는 성별고정관념에 입각한 ‘여성성의 수행’이라는 사회문화적 압력과 연결돼 더욱 드러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데이트폭력 피해여성 95.2% “경찰에 신고한 적 없다”

한국여성의전화 데이트폭력 실태조사

데이트폭력의 피해 경험 여성들 중 누구와 상의하거나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는 경우는 31.5% 뿐이었다. 도움을 요청한 비율도 현저히 낮지만 도움을 요청한 대상도 ‘친구, 동료 또는 선후배’(90.4%)였다. 전문상담기관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11.1%에 그쳤다.

도움을 요청한 뒤 적절한 도움을 받은 경우도 드물다. 데이트폭력을 단순한 ‘사랑 싸움’으로 보거나 피해자를 탓하는 주변인들의 반응이 오히려 2차 피해로 이어지기도 했다.

응답자의 51%는 도움을 요청한 상대로부터 “참고 헤어지지 못하는 너도 문제가 있다”라는 반응을 받았다. “사랑싸움이니 둘이 대화로 잘 해결하라(32.5%)”거나 “너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28.4%)”, “네가 반응을 다르게 하면 폭력이 없어질 것이다(27.9%)”, “폭력은 나쁘지만 상대도 아무 이유 없이 그러진 않을 것(24.9%)”이라는 등 방관자적 반응이 많았다.

이런 상황 인식 때문에 응답 여성의 95.2%는 데이트폭력이 엄연한 범죄인데도 피해 직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신고나 고소를 할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지 않아서(75.8%) ▦개인적으로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아서(38.1%) ▦신고나 고소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21.9%) 등이었다.

조 국장은 “데이트폭력 피해자는 상당기간 폭력이 지속되고 심화돼 개인적으로 해결하기힘들면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피해자들은 대부분 증거가 없어서 신고가 쉽지 않다보니 차라리 심각하게 맞아서 폭행으로 고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하한다”고 설명했다.

토론회에 나온 최지나 연세대 성평등센터 교육전문연구원은 “대학생의 상당수는 10여년간 입시를 준비하며 인간 관계를 형성할 기회가 없다보니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폭력으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준강간, 준강제추행이 술자리에서 많이 벌어지는데 만취한 사람을 (집에 데려다준다며) 한 명이 데려가서 사건이 발생하는 식”이라며 “가해자는 이를 성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늘이 우리의 1일’ 또는 ‘오늘 원나잇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줄이려면 10대 때부터 데이트문화에 대한 교육과 학내 데이트폭력에 대한 교육부의 확실한 지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번 데이트폭력 피해 현실을 통해 ▦데이트폭력에 대한 인식과 데이트문화 변화 요구 ▦사법처리 시 데이트폭력 피해경험의 특성과 맥락 반영 ▦데이트폭력 피해자 지원체계 마련 ▦스토킹범죄 처벌과 피해자 인권 보장 법 제정 등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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