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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종말의 시대

입력
2017.11.20 17: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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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다르다. 최근 ‘노동의 종말’이라는 표현이 다시 뉴스에 올랐다. 원래 이 말은 미국의 행동주의 철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1995년 출간한 ‘노동의 종말(The End of Work)’에서 유래했다. 책의 골자는 정보화사회의 진전에 따라 인류의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농경시대에 트랙터가 도입돼 말의 역할이 크게 감소한 것처럼, 앞으론 정교한 컴퓨터가 도입돼 인간(노동)의 역할이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 22년 전 이 책이 나올 때는 아직 인터넷조차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당시 보통사람들에게 ‘노동의 종말’이란 그저 공상과학 속의 타임머신 얘기처럼 아득히 느껴졌다. 하지만 최근 ‘노동의 종말’이라는 말이 나온 건 학계가 아니라, 국내의 한 증권사다. 말이 당장 가격 변수가 되는, 가장 숨가쁜 현실인 증시의 한 복판에서 한투증권의 백찬규 연구원이 새삼 ‘노동의 종말’을 거론한 배경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불과 22년 전의 ‘상상’이 이미 확실한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 백 연구원이 ‘2018 글로벌 증시전망’의 서두에서 언급한 ‘노동의 종말’에 새로운 것은 없다. 그는 “인간에 의한 노동의 중요성이 크게 감소함에 따라 남은 생산요소인 자본의 가치와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 조차도 당연한 얘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보고서가 흥미로운 건 어쨌든 ‘노동의 종말’이라는 과거의 상상이 내년 증시의 엄연한 변수로 등장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실 이미 국내에도 등장한 무인편의점만 해도 조만간 수만,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뒤흔들 가능성이 크다.

▦ 그러고 보면 노동뿐만 아니다. 근년 들어 ‘종말’이라는 말이 들어간 표현이 부쩍 자주 눈에 띈다. ‘소유의 종말’ ‘은행의 종말’ ‘학교의 종말’ 등 기사나 책의 제목에 심심하면 붙는 게 ‘종말’이다. 물론 여기서 종말이란 말의 의미는 ‘끝’이거나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관련 양식이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한다’는 의미로 쓰였다고 보면 된다. 모두 정보통신기술(ICT)의 급진전에 따른 미래의 시작을 다급하게 알리고 있는 셈인데, 정작 인류는 ‘이미 시작된 미래’로 문제없이 진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건지 여전히 의문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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