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때문에 성적 처진다는 말에 오기… 30대 록티도 정상권
인천AG는 보완해야 할 점 얻은 대회… 아직 은퇴 생각 안해
1년에 한 달 반 빼고 물속에… 하루에 보통 1만5000m 헤엄
3년간의 노력이 4분 안에 물거품… 런던 올림픽 여전히 아프다
자리를 지키는 건 늘 어렵다. 타이틀 방어 보다 도전이 쉽다는 얘기가 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박태환(25ㆍ인천시청)은 방어자였다. 자신의 이름을 딴 수영장에서 아시안게임 3연속 3관왕을 노렸다. 하지만 중국의 쑨양(23), 일본의 하기노 코스케(20)에게 번번이 시상대 맨 윗자리를 내줬다. 원하는 금메달 1개도 목에 걸지 못했다. 은메달 1개, 동메달 5개. 박태환은 한국인 아시안게임 역대 최다 메달(20개)을 보유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은퇴 얘기가 불거졌다. 선수 본인도 “힘에 부친다”는 표현을 자주 했다. 홀로 한국 수영을 이끌어 온지 벌써 10년 이상이다. 어깨 연골은 닳고 닳아 70대 노인 수준이다. 숨기고 있었지만 아시안게임 전 어깨에 담(근육통)이 생겼다.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을 만큼 긴장했고, 예전과 같은 훈련 량을 감당해 낼 신체적 나이도 아니었다.
박태환을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매니지먼트사 팀GMP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시안게임 후 잠시 쉴 틈도 없이 다시 전국체전을 위해 개인 훈련 중인 그다. 자리에 앉기 전 “은퇴에 관련된 얘기는 가급적 안 할래요”라고 수줍게 말하던 박태환은 “정말 은퇴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처음보다 끝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다. 국민이 웃어주고 환호해 주고 큰 박수를 쳐줄 때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인천 아시안게임이 끝난 지 약 2주정도 지났다. 하지만 이전보다 더 자주 언론이 찾는 등 스케줄이 빡빡한 거 같다. 실제 이번 인터뷰 일정잡기도 매우 힘들었다.
“이달 말에 제주도에서 열리는 전국체전 때문에 서울체고에서 훈련하고 있다. 새벽에 훈련하고 그 이후 행사 등 각종 스케줄도 소화하고 있다. 전국체전은 국내에서 열리는 가장 큰 축제다. 컨디션이 100%는 아니지만, 아시안게임보다 한결 마음 편하게 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나름 준비 열심히 해서 개인전 보다는 단체전에서 좋은 성적 올리고 싶다.”
-대회가 끝나면 평상시에는 뭐하고 지내나. 20대 평범한 젊은이들처럼 클럽 같은 곳에도 가지 않나.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클럽에 가본 적은 없다.(웃음) 사람 많은 곳 별로 안 좋아해서 집에만 있는 편이다. 친구들도 집으로 부르거나 집 앞 카페, 음식점, 영화관 등에 주로 간다.”
-전지훈련 중 해외에서 휴식 시간에 뭐 하는지 궁금해 하는 팬들도 많다.
“저녁에 특별히 뭐 할 시간은 없다. 훈련 끝나고 저녁 먹고 치료 받고 침대에 누우면 곧바로 잠에 빠진다. 다음날 새벽 4시 반에 훈련해야 되니깐. 주말에 그나마 일요일 하루 쉬는데 주로 잠만 잔다. 다들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해 하는데 마음 놓고 잠을 잘 수 있는 유일한 날이기 때문에 거의 침대신세를 지고 있다. 아, 그리고 1년에 노는 시간은 시즌 끝나고 한달 내지 한달 반 정도가 전부다. 나머지 시간은 물속에 있다고 보면 된다.”
-아시안게임에서 20개의 메달을 따내 한국인 최다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4년 후 아시안게임도 기대해도 되나.
“시합 뛸 때도 그런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고, 지금도 인터뷰할 때 많이 얘기를 하시는데, 솔직히 확 와 닿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이번 아시안게임 잘못해서 그런가 보다(책상 한 번 내리 치면서). 농담이고 그 동안 아시안게임에 3번 출전해 모든 종목 메달을 따냈다. ‘엄청난 업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저한테 과분한 성적들이다.”
-쑨양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나. 혹시 쑨양 연락처도 갖고 있나.
“사실 만나면 별 다른 얘기 안 한다. 제가 영어가 안 되고 쑨양도 그리 잘하는 것 같지 않다.(웃음) 솔직히 ‘안녕 잘 지냈어?’ 이 정도가 전부다. 제가 중국어를 할 수도 없고 쑨양이 한국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시합 전에는 얘기할 시간이 아예 없다. 이번에도 경기 끝난 뒤에 매니저를 데려와서 아주 짧은 시간 얘기하고 생일 케이크 주며 축하해주고 이게 전부였다. 언제 친분을 쌓았는지 궁금해 하실 텐데 2012년 런던 올림픽 시상대에 같이 서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절친’까지는 아니다. 연락처도 당연히 모른다. 이번에 쑨양이 연락처를 물어보던데 썩 내키지 않아 안 가르쳐 줬다.(웃음) 하지만 매니저들끼리 서로 연락처를 알고 있다. 그것으로 만족한다.”
-리듬체조 손연재 선수 응원하러 간 것도 화제였다. 또 손연재가 자신의 이상형으로 박태환 선수를 꼽았다. 손연재는 “만약 그렇지 않으면(박태환이) 삐질 것 같다”면서.
“역시 금메달을 따면 사람이 바뀌나 보다. 얘가 그런 말도 하고 이상하네.(웃음) 응원 가기전에 (손)연재에게 미리 말했다. 저는 수영 일정을 모두 마치고 퇴촌했고 리듬체조 경기는 뒤에 있으니깐 ‘준비 잘 돼가냐’고 연락하다가 ‘직접 가서 응원할 테니 부담감 갖지 말고 즐겼으면 좋겠다’고 해줬다. 아 그리고 제 옆에 앉아 계시던 분은 (손)연재 심리 담당 하시는 조수경 박사이다. 다들 누나라고 하는데 누나는 아니고 로마 세계선수권 때 저도 잠시 박사님께 상담 받은 적이 있다.”
-유일하게 노골드로 아시안게임을 마쳤다. 돌이켜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
“경기 끝나고 나서 10번 중에 8번은 아쉽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그 때 왜 그랬을까’ 생각도 들고…. 그래도 어떤 게 부족하고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보완점을 얻은 대회라서 앞으로 선수 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수영선수로서 완벽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든다. 너무너무 아쉽지만 반면에 배울 점도 있어서 기쁨과 슬픔을 다 얻은 아시안게임이다.”
-보완점, 완벽한 선수를 이야기 했는데, 선수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의미인 것 같다. 은퇴 여부에 대해 궁금해하는 팬들이 많다.
“은퇴 생각은 아직 안하고 있다. 세계선수권도 있고, 2016 리우 올림픽도 있고. 인천에서 많은 걸 느꼈으니깐 훈련에서 부족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완할 계획이다. 집을 지을 때도 중심을 잘 잡아야 태풍 따위에 무너지지 않는 거 아니 냐. 앞으론 훈련 포커스를 약점을 집중 보완하는데 맞춰, 태풍이 와도 무너지지 않게 할 계획이다. 그래야 선수 생활을 마감할 때도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수영 선수로는 내리막길인 이십대 중반이고.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도 있고, 이래저래 참 힘든 상황인 것 같다.
“제가 좋아하는 미국의 라이언 록티(30)는 나이도 많은 데 여전히 정상권에 있다. 또 20대 후반의 몇몇 선수들도 저보다 월등한 기량을 갖고 있다. 그렇게 보면 제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이 때문에 성적이 처진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오히려 오기가 생긴다. ‘저 선수들도 다 하는데 나라고 못할 것 있느냐’는 생각이다. 나이를 먹어도 기록 유지가 되고 오히려 더 나아지는 부분이 있어서 결코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될 것 같다. 저는 여전히 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고 건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체력 문제는 훈련으로 충분히 보강할 수 있다.”
-왠지 한국 수영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프로야구 이승엽 같은 선수들도 후배들을 위해, 팬들을 위해, 아직 할 게 남았다고 말하고 있다.
“좋게 보면 제가 한국 스포츠계에도 그렇고, 수영계에 있어서 아직까지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건재할 수 있는 부분이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 수영계만 따져도 ‘만약 내가 이 시합에 없었으면 한국 수영계가 어땠을까’ 시합 후에 복기하기도 한다. 때문에 은퇴할 때는 한국 수영을 세계에 널리 알렸고, 저로 인해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훈련은 얼마나 힘든가. 훈련도중 구토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리더라. 마라톤 황영조 선수는 너무 힘들어 차에 뛰어들고 싶었다는데. 물 속에서 힘들때는 무슨 생각을 하나.
“구토는 하체만 쓰는 훈련을 할 때 나왔다. 하루에 보통 1만5,000m를 헤엄치는데 힘든 정도는 말로 표현이 안 된다. 그냥 ‘죽음’이다. 호흡도 잘 안되고.(웃음) 황영조 선배님은 저한테도 직접 그런 얘기를 하신 적이 있다. ‘너는 수영장 바닥만 보고 하니깐 나보다 네가 더 힘들겠다’고 하시더라. 그런데 어떻게 2시간 넘게 달리나? 저는 절대 못한다.(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나 아쉬운 장면을 꼽아본다면.
“기억에 남는 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다. 사실 모든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걸 꿈으로 생각한다. 저는 그게 베이징이었고 반대로 런던 올림픽 때가 가장 아쉬웠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전담팀과 동고동락하고 그 시합 하나만을 보고 고생했는데…. 경기 시간은 통틀어 채 4분도 안된다. 4분 안에 결판 나는 건데…. 이 4분을 위해 그 동안 했던 노력들이 무산된 게 정말 가슴 아팠다.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아쉬움이 남는다.”
-베이징 올림픽 때 경기장 물맛은 기억나나.
“당연히 기억난다. 지금 일본의 하기노 선수를 떠오르는 샛별이라고 하는 데 제가 그 때 그런 평가를 들었다. 무서울 게 없었고 포부가 강했다. 아무래도 멋 모르고 할 때니깐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없었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가 뭔지 아나? 이제는 내가 뭔가를 짊어지고 있으니까 여러 가지 부분을 생각하게 된다. 꼭 이겨야 한다, 잘해야 한다 같은 부담감이다. 어쨌든 그 때는 나이도 어려 힘들지도 않았고 ‘세계적인 스타들과 또 언제 레이스를 함께 할까’하는 생각으로 거침없이 물살을 갈랐다.”
-일본만 해도 자유형은 서양에 안되겠다 싶어서 배영이나 접영에 집중했는데, 박태환 선수는 예상을 깨고 자유형을 택했다.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만큼 위대한 업적인데. 자유형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참 어려운 질문이다. 어릴 때 개인 혼영을 하다가 어느 순간 중심적으로 한 종목을 택해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 자유형을 제일 잘하니깐 고민 없이 자유형을 택했다. 돌이켜보면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던 아테네 올림픽에서 부족한 점을 찾았고 점차 보완해 가면서 기록 그래프가 쭉 올라갔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체구가 작아 ‘과연 될까’라는 생각이 숱하게 들었지만 지구력, 부력, 스피드, 킥 등 장점을 내세우면서 겁 없이 헤엄쳤던 것 같다. 도하 아시안게임, 멜버른 세계선수권, 런던 올림픽 등 그때는 진짜 어렸는데, 한마디로 무서울 게 없었다.”
-어깨 상태는 어떤가. 연골이 닳아 거의 없다고 알고 있다.
“완전히 딱!딱! 소리가 나는 건 아닌데 결리는 게 있다. 부상 안 당하려고 재활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열심히 하되 부상 안 당하는 게 훈련의 목적이다. 사실 초등학교 시절에 왼 팔꿈치 수술을 잘못 해서 조금 불편하다. (팔을 펴면서) 이렇게 왼 팔꿈치가 조금 튀어 나왔는데,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 하려고 한다. 수술이 잘못 됐기 때문에 수영을 잘하게 된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양 쪽 팔의 미세한 차이를 없애기 위해 훈련을 더 많이 했다.”
-후원사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해외 전지훈련 나갈 때 비용은 얼마나 드나.
“회사에서 돈 관리를 하기 때문에 정확한 건 모르겠는데 그래도 뭐 수억원대는 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영은 비용이 많이 안 들 줄 알았는데 후원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 사실 기업에서 후원해주면 마음 편히 훈련하고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을 텐데…. 밥을 먹을 때도 그렇고 운동할 때도 그렇고 투자가 없어서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업계에 따르면 수영 전지훈련 한 달 비용은 최소 3,000만~4,000만원이다. 박태환은 1년 중 10개월 정도를 해외에서 훈련한다)
-그 동안 벌어들인 수입은 얼마인가, 포상금만 15억원 정도라는 말이 있다.
“얼마를 벌었는지 솔직히 잘 모른다. 그런데 포상금 15억원은 처음 듣는 얘기다.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베이징 금메달 포상금이 1억원인가 그랬다. 15억원까지는 아닐 거다. 계속 우승해야 그 정도 수치가 아닐까.(웃음) 포상금 대부분은 코칭스태프와 나눠가졌다. 다 같이 고생하셨으니까 당연히 나눠 가져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제 몫은 얼마 안 된다.(웃음)”
-잘생겼지, 스타지, 분명히 여자친구가 있을 것 같다. 오히려 없다면 더 이상할 것 같은데.
“정말 없다.(웃음) 아시안게임 끝났으니 연애 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웃음) 예전에는 방송국에서 ‘이상형이 누구냐’라고 물어보면 아무 생각 없이 말했는데 나중에 제 이미지가 이상해 지더라. 그 때 그 때 떠오르는 연예인을 즉각적으로 말한 걸 ‘또 이상형 바뀌었네’라고 하더라. 오늘은 이상형 묻지 말아달라.(웃음)
-선수생활을 지속하면서 롤모델은 누구로 삼았나.
“이안 소프(32ㆍ호주)다. 수영 진짜 잘한다. 부드럽고 편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헤엄치지?’ 하는 생각을 비디오 보면서 많이 했다. 단순히 세계기록을 많이 깨서가 아니라 그렇게 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법(泳法)을 많이 따라 했다. 제 영법이 좋다고들 하시는데 아마도 소프를 분석하고 흉내내면서 좋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수영을 안 했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수영이 개인종목이고 기록종목이라서 참 힘들다. 다른 단체종목은 힘들 때 교체도 되고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벤치에서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수영은 그게 안 된다. 잘하면 혼자 모든 기쁨과 명예를 누리지만 반대로 못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만약에 수영을 안 했다면, 그냥 평범한 학생으로 다녔을 거 같다. 공부는 금메달은 아니어도 ‘기본’은 했을 거 같다.(웃음)”
함태수기자 hts7@hk.co.kr
김지섭기자 onion@hk.co.kr
이현주기자 memor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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