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노래 덕분에 뒤늦게나마 우리 사랑도 이뤄졌습니다."'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났던 하얀 그때 꿈을'로 시작하는 노래 '얼굴'의 가수 윤연선(51)씨가 27년 만에 다시 만난 첫사랑 민성삼(51)씨와 3일 오후 4시 서울 서교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긴긴 세월 어긋나기만 했던 두 사람의 사랑을 다시 이어 준 것은 윤씨가 데뷔 30년 만에 여는 콘서트 소식을 알린 한국일보 기사. (2월25일자 48면)
두 사람은 이미 스물 다섯 살 때 결혼을 약속했던 적이 있다. 당시 고려대 의대생이던 민씨는 우연히 한 동네(서울 혜화동)에 사는 윤씨를 보고 첫 눈에 반해 2년 간 끈질긴 구애 끝에 결혼 승낙을 받았다. 그러나 양가 상견례까지 마친 상태에서 민씨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두 사람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민씨는 부모님이 정해 준 여자와 등 떠밀리듯 결혼해 가정을 꾸렸고 윤씨는 아픈 첫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채 홍익대 앞에서 라이브 카페 '얼굴'을 운영하며 지금까지 독신으로 지내왔다.
"그 후 연선씨가 결혼해서 미국에 갔다는 헛소문을 듣고 정말 그런 줄 알았어요. 문득 모습이 떠오를 때도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하는 마음이었죠. 그런데 어느날 큰 딸(26)이 신문 기사를 오려 왔더군요. '아빠 첫사랑이 아직 혼자 산대요'라며. 딸들한테도 연선씨 얘기를 종종 했거든요."
민씨는 10년 전 이혼하고 인천에서 1남 2녀를 거느리고 있으며 내과의원을 하고 있다. "기사에 실린 '아직 미혼'이라는 부분을 읽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어요. 죄책감에 잠도 오지 않고…."
민씨는 3월 초 용기를 내어 두 딸과 함께 카페 '얼굴'을 찾았다. 하지만 윤씨를 만나지는 못했다. 당시 윤씨는 3월11일 열리는 콘서트 준비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민성삼입니다'라고 적은 메모지를 카페 종업원에게 맡기고 발길을 돌렸다.
콘서트 이후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고작 세 번의 만남 끝에 결혼을 결심했다. "참 이상해요. 옛날에도 아무 매력도 없이 밋밋하기만 한 저 사람한테 이상하게 이끌렸는데 다시 만난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이상하게도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까지 같아서일까요? '결국 우리는 필연적으로 맺어져야 하는 사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어요."
27년 전 '결혼을 하려면 호적에서 이름을 파 가라'고 할 정도로 완강했던 시댁 식구들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윤씨를 만나고는 "아무런 미움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마음을 열었다. "시어머니는 '옛날에는 비쩍 말랐더니 얼굴이 좋아졌다'며 반가워 해 주시더라구요. 덤으로 얻게 될 아들 딸은 벌써부터 '우리 아빠 좀 잘 봐 주세요'라고 부탁하구요."
두 사람은 뒤늦게나마 사랑을 이루게 된 게 다 노래 '얼굴' 덕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75년 발표한 노래 '얼굴'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이뤄줬어요. 작사가인 심봉석(당시 동도중 교사)씨도 진짜 얼굴의 주인공과 결혼했고, '얼굴이라는 노래 덕분에 결혼했다'고 카페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도대체 내 사랑은 언제 이루어 주나 했는데 드디어 저한테도 차례가 왔네요."
얼굴 가득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윤씨 옆에서 민씨는 "지금껏 지은 죄가 많으니 앞으로 왕비처럼 모시겠다"고 수줍게 다짐했다. 두 사람의 얼굴에서는 여느 예비부부처럼 따뜻한 사랑의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글= 최지향기자 misty@hk.co.kr
사진= 최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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