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나흘째인 25일에도 추모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35년 악연’의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정치인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지면서 김 전 대통령의 빈소는 화합과 통합의 장이 됐다.
김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에는 이날 오후 전 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교적 건강한 모습의 전 전 대통령은 방명록에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라고 적은 뒤 직함 없이 한자로 이름만 썼다. 부인 이순자씨는 동행하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헌화한 뒤 차남 현철씨 등 유가족에게 “연세가 많으면 다 가게 돼 있다”고 위로했다. 현철씨는 전 전 대통령에게 “건강은 괜찮으시냐”고 물었고, 전 전 대통령은 “나이가 있으니 왔다 갔다 한다”고 답했다. 10여분간의 조문을 마친 전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과의 생전 관계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한 채 빈소를 빠져나갔다.
김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의 관계는 악연의 연속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1980년 ‘서울의 봄’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정권을 잡은 뒤 민주화를 요구하던 김 전 대통령을 가택연금했고 김 전 대통령은 2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였다. 95년에는 반대로 김 전 대통령이 5ㆍ18특별법을 제정해 전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했다. 김 전 대통령은 2010년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 오찬에서 전 전 대통령을 향해 “전두환이는 왜 불렀노. 대통령도 아니데이”라며 “죽어도 국립묘지도 못 간다”고 드러내놓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과 함께 구속됐던 노 전 대통령은 건강상의 이유로 장남 재헌씨를 통해 조문했다. 재헌씨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셨고 한 때 아버지와 함께 국정을 운영하셨으니 당연히 와서 정중히 조의를 드리는 게 도리”라며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하시기 때문에 (못 오셨지만) 정중하게 조의를 표하라고 뜻을 전했다”고 애도했다.
독일을 방문 중인 정의화 국회의장도 귀국일정을 하루 앞당겨 빈소를 찾았다. 정 의장은 96년 15대 총선 때 김 전 대통령의 권유로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해 현재 정치권의 거물이 된 ‘YS 키즈’ 가운데 한 명이다. 정 의장은 “김 전 대통령은 산업화를 통해 민주화가 될 수 있도록 만든 이 시대의 영웅”이라며“고인의 서거가 여야의 정국경색이 풀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김 전 대통령의 ‘통합과 화합’의 정신을 정치권에 당부했다.
김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던 인사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의 상도동 자택 이웃이자 ‘꼬마동지’로 알려진 이규희(45)씨는 가족과 함께 빈소를 찾아 눈물을 쏟아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야구선수 박찬호, 영화배우 강신성일 등 재계와 문화계 인사들도 조문 행렬에 동참했다.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하루 앞둔 이날 차남 현철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조문객을 맞았다. 현철씨는 이날 밤 늦게 귀가하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특히 젊은층들이 많이 애도를 해 줘 놀랐고,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지난 나흘간의 소회를 짧게 밝혔다. 상주를 자처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은 물론 ‘상도동계 막내’격인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 김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를 시작한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등은 이날도 주군의 떠나는 길을 지켰다.
전혼잎기자 hoiho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