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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테러 속에서도 웹툰계 젠더 감수성은 진화 중”

입력
2016.08.2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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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작가 해츨링이 지난 7월 19일 트위터에 올린 글(위)과 이후 낮아진 별점. 트위터, 네이버웹툰 캡쳐
네이버 웹툰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작가 해츨링이 지난 7월 19일 트위터에 올린 글(위)과 이후 낮아진 별점. 트위터, 네이버웹툰 캡쳐

2013년 네이버를 통해 첫 번째 시즌이 나가고 올해 두 번째 시즌이 연재중인 웹툰 ‘동네변호사 조들호’(조들호)의 최근 독자 별점은 10점 만점에서 5, 6점대를 오르 내린다. 주인공인 변호사 조들호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이 작품은 지난 시즌에 9점대 별점을 받았고 지난 3월 동명의 지상파 드라마로도 제작돼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별점이 폭락했을까. 최근 급격한 별점 폭락은 지난 7월 작가 해츨링이 게임업체 넥슨코리아의 김자연 성우 계약 해지건과 관련해 트위터에 의견을 남기면서 비롯됐다. 넥슨코리아는 김씨에 대해 호불호가 엇갈리는 여성 커뮤니티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는 이유로 게임 속 목소리 녹음 계약을 해지했다.

그는 ‘티셔츠 입었다고 사람 짜르는 회사 게임은 하기 싫다’며 김씨 지지와 함께 넥슨 보이콧 의사를 밝혔다. 이후 ‘조들호’가 업데이트 될 때마다 일부 독자들이 별점 1점을 줘 평균을 깎는 ‘별점 테러’를 감행했다. 덩달아 작품의 댓글란은 작가를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의견들로 시끄럽다.

해츨링 뿐만 아니라 많은 웹툰 작가들이 같은 이유로 별점 테러를 당했다. 이용자들이 직접 내용을 편집하는 나무위키 사이트의 경우 이번 사건에서 김씨를 지지한 웹툰 작가들을 포함한 각계 인사들의 명단이 떠있다. 소위 ‘나무위키 살생부’에 이름이 오른 웹툰 작가들은 작품마다 별점 테러와 작가 비방 댓글 등 공격을 당했다.

웹툰계 여성혐오 이슈를 본격화한 네이버웹툰 '뷰티풀군바리'의 한 장면(왼쪽)과 연재중단 청원 페이지(오른쪽). 해당 사이트 캡쳐
웹툰계 여성혐오 이슈를 본격화한 네이버웹툰 '뷰티풀군바리'의 한 장면(왼쪽)과 연재중단 청원 페이지(오른쪽). 해당 사이트 캡쳐

최근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여성 차별을 없애기 위한 페미니즘 이슈가 한창이다. 그동안 콘텐츠 안에서 무수히 이뤄진 여성 캐릭터의 성적 대상화, 폭력의 희화화, 성 차별이 집중 공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웹툰 쪽에서 페미니즘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논쟁의 주무대는 주로 네이버 웹툰과 사회관계형서비스(SNS)다.

2014년 기준 하루 이용자가 620만명으로 국내에서 가장 큰 웹툰 서비스인 네이버 웹툰은 10, 20대 젊은층이 많이 이용한다. 이 곳의 특징은 댓글과 별점으로 독자들이 빠르게 작품에 반응하기 때문에 독자와 작가간 쌍방향 소통이 활발하다.

여기에 많은 작가들이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를 적극 활용하면서 이들의 발언이 작품 못지 않게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메갈리아 등장 이후 여성혐오 논쟁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웹툰계에서 여성혐오 논쟁이 본격화한 것은 지난해 네이버 웹툰 ‘뷰티풀 군바리’논란이다. 여성도 군대를 간다는 설정의 이 웹툰은 지난해 10월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가학적 욕망 혹은 쾌감을 군대라는 공간을 이용해 시각화하고 정당화’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네티즌들의 연재 중단 청원까지 이어졌다. 이 사건 이후 웹툰계의 젠더 감수성 문제가 정면으로 떠오르자 작가 지망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청강대 만화창작과에서는 젠더 감수성 강좌를 개설하기까지 했다. 젠더 감수성이란 성 평등을 위해 기존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 나가는 것을 말한다.

웹툰 '덴마'속 여성 캐릭터가 외모 품평에 대해 핀잔을 주는 장면(왼쪽)은 독자들을 놀라게 했다. '메갈리아와 낙인찍기' 글을 공유하며 동료 작가를 지지한 양영순 작가의 페이스북(오른쪽). 네이버 웹툰 캡쳐, 트위터 캡쳐
웹툰 '덴마'속 여성 캐릭터가 외모 품평에 대해 핀잔을 주는 장면(왼쪽)은 독자들을 놀라게 했다. '메갈리아와 낙인찍기' 글을 공유하며 동료 작가를 지지한 양영순 작가의 페이스북(오른쪽). 네이버 웹툰 캡쳐, 트위터 캡쳐

최근 여성혐오 논쟁은 한 발 더 나아가 웹툰계 안팎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많은 웹툰 작가들이 독자들과 여성 작가들의 비판에 귀를 기울여 작품 속에 젠더 감수성을 높이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다.

2010년부터 네이버에 작품을 연재중인 양영순 작가는 SF물 ‘덴마’에서 종전과 다른 여성 캐릭터들을 선보였다. 웹툰 비평 사이트 유어마나의 선우훈 편집장은 “기존 덴마의 여성 캐릭터는 남성의 전리품이거나 피해자로 나오는 등 주체적 인격체로 그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작품 속에서는 최강자 중 하나로 나오기도 하고 합당한 욕망을 가진 주체적 존재로 묘사된다”며 “작품 내 여성관의 지각변동 수준”이라고 말했다.

양 작가도 이번 ‘메갈리아’ 논란의 피해자 중 하나다. 그는 지난 7월 SNS에서 메갈리아 지지 입장을 밝힌 ‘덴마’의 채색 담당 홍승희 작가를 응원하며 페이스북에 ‘메갈리아와 낙인찍기’라는 글을 공유했다. 이후 덴마의 평점은 5점대까지 떨어졌다.

게임 속 여성 캐릭터의 복장이 수정된 모습을 그린 장면(왼쪽)과 이에 대한 난다 작가의 설명(오른쪽) 다음 웹툰 캡쳐
게임 속 여성 캐릭터의 복장이 수정된 모습을 그린 장면(왼쪽)과 이에 대한 난다 작가의 설명(오른쪽) 다음 웹툰 캡쳐

독자들의 문제제기를 작가가 발전적으로 수용한 경우도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되는 생활툰 ‘어쿠스틱 라이프’의 최근작은 1인 게임 개발자인 작가의 남편 이야기를 다뤘다. 그런데 댓글란에 남편이 만든 게임 속 여성 캐릭터 복장이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독자들의 지적이 잇따랐다. 당시 넥슨코리아의 온라인게임 ‘서든어택2’의 여성 캐릭터 복장에 대한 선정성이 도마에 오르던 시기여서 비판의 목소리가 컸고 이들을 ‘프로불편러’라고 부르며 역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에 대해 작가 난다는 다음 회차에서 ‘댓글로 지적해 줘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며 ‘게임 캐릭터의 노출이 게임 플레이와 연관성이 없는 성차별적 코스튬이었다는 것에 남편과 저의 의견이 같다’며 노출의상을 삭제하고 캐릭터 성격에 맞는 의상으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페미니즘은 저와 남편에게 중요 이슈이고 여성혐오는 여성인 저조차도 30년 넘게 깨닫지 못했다’며 앞으로 작품 내에서 종종 있었던 여성 및 약자혐오적 표현들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페미니즘 도서 판매량이 급증하고 양성평등적 콘텐츠 수요가 커지면서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한다’는 인식이 웹툰계에서도 퍼지고 있다. 한 웹툰 작가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써 기획의 필요성 때문에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를 하다가 그동안 얼마나 여성혐오적이었는지 깨달았다”며 “주변 동료 작가들도 무슨 책을 읽으면서 공부해야 하는지 물어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레바툰'의 작가 레바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과 사진. 트위터 캡쳐
'레바툰'의 작가 레바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과 사진. 트위터 캡쳐

최근에는 여성혐오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던 작가의 변화도 눈에 띄었다. 유료서비스인 레진코믹스에 연재되는 일상개그만화 ‘레바툰’은 데이트 폭력을 희화화하는 등 여성혐오적이라는 비판을 꾸준히 받았다. 그런데 지난 18일 작가 레바는 트위터를 통해 페미니즘 도서인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고 있다며 사진을 올렸다. ‘나쁜 페미니스트’는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페미니즘 도서로, 정치적 올바름 등을 강조하는 근본주의적 페미니즘이 아닌 다양한 페미니즘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하는 도서다. 트위터에서 레바 작가의 트윗이 화제가 되자 그는 다시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 성차별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니 최소한 주변 사람에게 말실수 하지 않기 위해 공부하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

작품의 젠더감수성 여부를 고려한 웹툰 비평도 시작됐다. 지난 10일 서비스를 시작한 웹툰 비평 사이트 ‘유어마나’에서는 웹툰에 대한 필진들의 100자평을 게시한다. 선우훈 편집장은 “필진은 모두 페미니스트”라며 “작품이 젠더감수성을 얼마나 갖췄는지 여부도 비평의 기준 중 하나”라고 밝혔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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