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의 산증인’ ‘과학수사의 대부’ 등 수많은 별명을 지닌 서중석(59)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30일을 끝으로 25년 법의학자 생활을 마무리한다. 서 원장은 이날 4년 임기의 국과수 원장직에서 퇴임할 예정이다.
서원장은 29일 본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많은 분에게 약속했던 과제들이 아직 미완으로 남아있지만 이제 새로운 수장에게 공을 넘길 차례”라며 아쉬움 섞인 퇴임 소감을 전했다.
서 원장은 수십년 동안 망자(亡者)들의 억울한 죽음을 대변해 온 법의학도다. 중앙대 의대를 졸업하고 1991년 법의관으로 국과수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2005년 법의학부장을 거쳐 2012년 7월부터 제2대 원장을 맡았다.
국과수 주요 보직을 거쳤지만 그는 누구보다 현장을 중시한 과학자였다. 지금까지 직접 부검한 시신이 4,000구에 이를 정도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99년 씨랜드 수련원 화재,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의 중심에는 항상 서 원장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서 원장은 2014년 7월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변사 사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치밀한 감식을 통해 드러난 과학수사 결과에도 의문을 품는 억측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직접 취재진 앞에 나서서 변사체가 유 전 회장임을 확인했으나, 불분명한 사인 탓에 여론의 지탄을 받아야 했다. 서 원장은 “새로운 감정 기법으로 대퇴골과 치아에서 3주 만에 유전자정보(DNA)를 추출해 개인적으로는 자부심을 느끼는 사건”이라면서도 “법의학 관점에서 결코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는데 일부 여론이 과학수사의 결과물을 의심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서 원장은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에서도 국과수가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학적 증거는 세월호를 둘러싼 수많은 의혹을 불식시킬 최후 보루”라며 “세월호 인양 과정에서 드러날 여러 가능성에 대한 해답을 국과수가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수사에 대한 정부 차원의 투자와 지원을 당부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세계 수준에 근접한 한국 과학수사 기술에 비해 아직 체계적인 투자나 육성은 미흡하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는 “법의관이 현장 검안을 담당하는 제도가 확대돼야 하고 사건의 속살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표준화한 실험실과 장비도 갖춰져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비록 몸은 국과수를 떠나지만 서 원장은 앞으로 후학을 양성하며 과학수사의 저변을 넓히는데 힘쓸 계획이다. “법의관이 늘 국민의 요구를 100% 충족시켰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황적준 고려대 의대 교수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혀냈듯, 선배들의 기개를 이어받으면 언젠가 국민에게 인정을 받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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