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 혁신위원장 전격 사퇴
정진석, 국회 떠나 대응책 논의
김형오 “몰염치…공당이 아니다”
4ㆍ13 총선참패 이후 난파선 신세인 새누리당에서 ‘임시정부’ 출범조차 무산되는 일이 벌어졌다. 당 수습과 쇄신을 진두지휘 할 ‘정진석 비상대책위’와 ‘김용태 혁신위’의 구성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비박계 중심의 인선안에 반대한 친박계의 집단 보이콧이 빚어낸 초유의 사태는 계파 이익만 앞세운 여당의 자해정치, 자폭정치로 지적된다.
새누리당은 17일 국회에서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를 잇따라 열어 비대위원장으로 정진석 원내대표를 추인하는 비대위 구성안과,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하는 당헌ㆍ당규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절차상 첫 회의인 상임전국위부터 재적위원(52명) 과반(27명)인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면서 비대위와 혁신위 출범이 무산됐다. 주요 당무를 의결하는 기구인 상임전국위가 의사정족수 미달로 개회 자체가 무산된 건 새누리당 사상 처음이다. 당헌 개정권이 있는 전국위 역시 재적위원 850여명 가운데 과반에 턱없이 부족한 350여명 만이 참석했다.
새누리당은 앞서 총선 당선자 대상 설문조사와 원내지도부ㆍ중진의원들의 연석회의를 통해 차기 전당대회까지 당을 관리할 비대위원장을 정 원내대표가 겸임하도록 결정했다. 이후 정 원내대표는 개혁성향의 김용태 의원을 혁신위원장에 내정하고, 비박계 7명이 포함된 10명의 비대위원을 지명했다. 그러나 친박계가 자신들이 다수인 상임전국위와 전국위의 참석을 보이콧해 이 같은 인선안의 의결 시도 자체를 불발시킨 것이다. 한 당직자는 “당에서 근무한 약 20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라며 “임시지도부라도 있어야 향후 절차를 논의할 텐데 그마저도 불가능해졌다”고 참담해했다.
이날 사태는 비박계 중심의 비대위와 혁신위 구성에 친박계가 집단 반발하면서 빚어졌다. 전날 친박계 당선자 20명은 정 원내대표에게 비대위원 인선 재검토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당내에선 이날 친박계가 수적 우위를 앞세워 반대토론에 나설 것으로 관측됐으나, 친박계는 아예 참석을 거부해 회의를 무산시켰다. 여기에 총선에서 낙선한 일부 비박계 의원들까지 다른 일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혁신위원장에 내정됐던 김용태 의원은 회의 무산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마지막 기회조차 잃었다. 새누리당에서 정당 민주주의는 죽었다”며 사퇴를 선언했다. 정 원내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국회를 떠나 서울 모처에서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당 상임고문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무능ㆍ무책임에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무치(無恥)에 몰염치까지 보이고 있다”며 “이건 공당이 아니다”고 일갈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환자가 유능한 의사를 찾는 게 아니라 그저 시간이 지나면 나을 것이란 어리석은 기대를 하는 꼴”이라며 “새누리당이 야당을 할 준비를 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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