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최연소 총리 취임, 5월 유럽의회 선거 41.5% 대승
지방선거 지지율 25%, 지방의회 과반 의석 확보에는 실패
정치가 경제 발목 잡는 이탈리아, 증시 등 대내외 경제요인 청신호
분열된 야당·더 강해진 야당 사이 총리의 조율 능력 시험대 오를 것
지난달 31일 이탈리아에서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전체 20개 주 중 7개 주에서 치러진 2015년 지방선거는 2014년부터 강력한 개혁정치를 추진해 온 중도좌파 민주당 ‘렌치 정부’의 중간평가로서 의미가 컸던 선거였다. 이미 5월에 렌치정부가 신임투표를 통과해 개혁정책에 힘을 더한 상태여서 대부분 민주당의 압승을 예측했으나 선거 결과는 5대 2. 민주당이 전체 선거구에서 5개의 의석을 차지하며 승리를 차지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민주당 정당지지율은 지난해 유럽 의회선거 당시의 지지율인 41%에 훨씬 밑도는 25%의 지지율을 획득하는데 그쳐 개혁 동력을 상실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지방선거를 실시할 때 주지사와 더불어 지방 의회를 구성하는 주의원선거가 동시에 이뤄진다. 주의원은 주지사 선거 시 별도로 이뤄지는 정당선거에서 득표율에 따라 주의회 의석수가 할당이 되고, 비례대표로 의석이 나뉘기 때문에 지방정부 정책 수행에 있어서는 주지사뿐 아니라 주의회의 의석수 확보도 중요하다. 각 언론에서는 주지사 후보자들의 득표율과 더불어 정당 득표율의 출구조사를 실시간으로 중계했으나 최종적으로는 25%의 낮은 지지율로 선거를 마감했다.
선거 결과에 대한 분석은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7개 주에서 5명의 주지사 선출에 성공했기에 민주당의 승리라고 보는 관점과 전통적 좌파지지 지역에서의 승리에 그치고 경제적, 정책적으로 중요한 북부의 베네토와 리구리아 지역을 중도우파, 특히 현직 주지사가 있던 리구리아 지역을 전 총리인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전진 이탈리아당에게 내준 것은 전략적 미스라는 평가도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수장인 마테오 렌치 총리에게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 저하가 향후 개혁정책 추진에 장애요인이 될 전망이다.
취임 초기 60%에 달했던 렌치에 대한 지지도는 현재 38%까지 떨어졌으며, 46%까지 치솟았던 현 정부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27.5%까지 급락했다. 그 여파로 민주당에게 끌려가던 야당이 연대해 여당을 견제하는 목소리를 점점 더 높이고 있고, 당내 소수파들도 향후 독자적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선거로 한참 진행 중인 개혁정책 추진의 동력을 잃을 우려를 낳으며, 껍데기뿐인 승리라는 염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렌치정부의 개혁정책, 어디까지 왔나
렌치 총리는 2013년에 민주당의 총수로 선출된 이후 엔리코 레타의 중도연합 정부의 미흡한 개혁정책을 비판해 오다 마침내 2014년 2월, 이탈리아 역대 최연소 총리라는 기록을 세우며 새로운 총리로 취임했다. 이 후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며, 노동 경제 정치 교육 등 전 분야의 구조개혁을 앞세우고 세제개편을 통한 경기 부양을 약속했다. 렌치 정부의 개혁정책은 노동시장 개혁, 세제완화를 통한 경기부양, 행정개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신규 노동법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화를 도모했다. 올해 1월부터 시행을 시작으로 7월에 전면 시행될 ‘노동법’은 정규직 고용 첫 3년간 고용주에게 세제 혜택을 주며 근무연차가 길어질수록 고용주의 부담을 덜어주도록 해 2014년 기준 12.9%에 달했던 실업률은 2015년 4월 기준 12.4%까지 떨어지며 고용증가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고용형태에 있어서도 평생 정규직이 전체 노동시장의 22.7%를 차지하며 전년 동기대비 7% 증가하는 등 고용의 질도 향상시켰다.
또 안정화법을 통해 2014년 5월부터 소득구간별로 급여소득세를 감면해 실질적 수령 급여 액수의 증대를 꾀했으며, 퇴직금 조기수령을 허용해 가계소비 촉진을 도모했다. 그리고 2014년 소득분부터 기업의 생산활동 지방세를 10% 감면하고 기업에서 생산설비에 투자할 경우 투자금의 50%를 상환해 줌으로 기업의 투자심리를 높이는 동시에 국제경쟁력 강화에 힘썼다. 이로써 2014년까지 마이너스 3.3%였던 기업의 총고정자본형성(GFCF)이 2015년 1분기에는 GDP 대비 0.3%까지 높아졌다.
행정개혁은 이탈리아의 고질직인 행정비효율을 효율화하기 위한 것으로 상원개혁, 선거법 개혁, 공기업 민영화, 사법제도 개혁 등을 포함하고 있다. 지난해 정권의 사활을 걸고 통과시킨 상원개혁안은 기존에 321명이던 상원을 100명으로 줄이고 상원의 입법권한을 정부신임, 개헌투표, 지방자치 관련법, 국제협약 관련법으로 제한했다. 2015년에는 경제성장 및 정책추진에 걸림돌이 되어 왔던 선거법 개정에 착수, 40% 이상을 득표한 정당에 하원 630석 중 과반 이상인 340석을 부여하여 중소 정당의 난립을 방지하고 연정정부가 가지고 있던 정책지속성의 불안정성을 없애고자 했다. 그리고 지난 5월에 총리직을 건 신임투표도 불사하며 ‘이탈리쿰ㆍItalicum’이라는 새 선거법을 법제화하는데 성공, 총리 선거 당시 주력으로 내세웠던 공약 대부분을 실현했다.
개혁의 아이콘으로 등장해 단시간 내에 다양한 분야의 개혁에 성공하며 대내적으로는 이탈리아의 경제지표를 모두 긍정적 지표로 끌어올리고, 대외적으로는 외국인 투자유치와 신뢰지수를 높이면서 표면적으로는 성공한 정부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
그러나 렌치정부의 개혁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다. 이는 렌치정부의 개혁이 취약한 경제구조와 정부 재무구조의 근본적 체질을 개선하기 보다는 경기부양을 위한 단발성 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신규 노동법은 올해 1년간만 시행될 예정이고, 안정화법을 통한 급여소득세 감면은 지난해 말 종료되었으며, 기업의 생산설비 투자액 상환은 이달 말 종료될 예정이다. 이처럼 장기적 로드맵의 부재로 사회적 합의 도출과 공감대 형성이 이뤄지기 전에 무리하게 개혁정책을 펼침으로써 민주당 내에서도 불만이 제기되었고, 선거법 개혁시 투표 거부 등 분열이 가시화됐다. 그리고 현재 추진하고 있는 교육개혁이 상원을 표류하며 현 정권의 발목을 잡아 렌치정부에 부정적이었던 유권자뿐 아니라 주 지지층마저도 이탈하고 있다.
이탈리아 개혁은 지속된다
이탈리아는 복잡한 정당구조, 과반수 여당 부재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성이 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나라이다. 이탈리아 정치는 계파간 또는 연립정당간 타협을 통해 총리가 선출되고 정부가 구성돼 왔다. 여러 이익집단이 ‘정권’이란 목표를 위해 연합은 하지만 각자 지향점이 다른 경우 정책추진은 의회 내 정당간 경쟁이 아닌 특정 계파의 대표나 개별 의원과의 타협을 통해 유지가 되는 독특한 정치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동안 렌치정부가 강력한 개혁정책을 추진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은 것이다. 집권 초기 추진한 의회예산 삭감, 정부지출 삭감정책은 전 국민의 지지를 받기에 충분했고 이어 급여소득세 감면정책으로 지지기반을 굳건히 한 렌치정부는 2014년 5월 유럽의회선거에서 41.5%의 사상 유례없는 대승을 거두어 개혁의 든든한 지원군을 확보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경기부양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데다 상원개혁에서의 갈등심화, 노동법 개정에서 전통적 지지층인 노동계와의 마찰로 지지율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번 지방선거에서 총리 취임 후 거침없는 행보로 개혁을 주도해 왔음에도 지방의회 의석 과반 확보 실패해 향후 개혁정책 추진에 복병을 만난 셈이다.
이탈리아 현지에서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렌치정부의 개혁정책 추진 및 방향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오히려 1분기 경제지표를 바탕으로 집권력 강화를 위해 더 강력하게 정책을 추진해 나갈 수도 있다.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이 부진했음에도 이탈리아 증시나 각종 경제지표는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 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분열된 여당과 지지율이 높아진 야당간의 관계를 어떻게 조율하며 개혁을 이어갈지 렌치총리의 개인적 자질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더 강해진 야당의 견제 속에서 경제성장을 위한 밑바탕인 정치안정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 이탈리아 정치가 원래 ‘불안정 속의 안정’을 특징으로 하더라도 예의주시 할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지지율 하락은 개혁을 더욱 가속화해 경제성장을 실현하라는 강력한 경고로 볼 수 있다. 다행히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 완화 등 외부 경제요인은 이탈리아에 우호적이다. 외국인투자유치도 증가하고 경제실적도 호전되고 있어 내부여건도 좋은 편이다. 총리 취임 후 안정적인 정치여건을 조성해 기업환경을 긍정적으로 바꾸는데 성공한 현 정부가 구조적 체질개선에도 성공해 본격적인 경제성장의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정원준 KOTRA 밀라노무역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