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등 발칸 국가들이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난민의 유럽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발칸 장벽’ 건설에 나섰다. 헝가리는 유럽연합(EU)이 합의한 난민 분산 수용 정책을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독자 행동을 선언했다. 유럽 국가들이 난민 문제에 각자 도생을 선언하며 난민들의 유럽행이 사실상 막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정부는 24일(현지시간) 수도 빈에서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등 발칸 9개국 내ㆍ외무장관과 난민 대책 회의를 갖고 국경 통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회의를 주재한 요한나 미클라이트너 오스트리아 내무장관은 “우리는 언제까지 EU의 대책을 기다릴 수 없다”며 “지금 당장 유입을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발칸 국가들이 사실상 발칸 장벽을 건설키로 함에 따라 난민들의 주요 유럽행 경로인 ‘발칸 루트’가 차단될 전망이다. 발칸 국가는 중동에서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에 도착한 난민들이 독일과 북유럽으로 향하는 길목이나 마찬가지다. AFP통신은 당장 마케도니아가 아프간 난민 제한 조치를 시행하며 그리스 북부에 주저 앉은 난민만 8,000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발칸 국가들이 일부 조건이 충족된 난민은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지만, 현실성 없는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합의안에 따르면 이들 국가들은 여행에 필요한 서류를 소지하지 않거나 위조, 조작된 서류를 소지한 난민들의 입국을 금지했다. 하지만 난민들이 내전과 약탈, 납치 등 목숨을 위협당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피난길에 오르고, 서류를 뗄 수 있는 행정기능도 마비된 상황에서 이 같은 조치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회담에 초청조차 받지 못한 그리스는 즉각 반발했다. 니코스 코치아스 그리스 외무장관은 “일부 국가가 우리가 없는 와중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했다”며 “매우 비우호적 행위”라고 정면 비판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도 현지 방송에서 “이들 국가가 국경에 방벽을 세울 뿐 아니라 한 명의 난민도 받지 않으려 한다”고 분노를 표출했다.
난민 수용에 강경히 반대해온 헝가리까지 ‘마이웨이’를 선언하면서 EU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EU는 지난해 9월 난민 16만명을 유럽 국가들이 국력에 따라 나눠 받는 인도주의적 협약에 합의했다. 하지만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국민의 지지 없이 난민 쿼터제를 도입할 수 없다”며 “국민투표를 통해 수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24일 국영 방송에서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은 “오르반 총리가 난민 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헝가리 총선에서 극우 민족주의 정당인 요비크가 난민문제에 강경 대응을 주문하며 제2당으로 급부상하자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집권 피데스 당이 위기감을 느꼈다는 지적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르반 총리가 지지율 반등을 위해 난민 위기를 이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 국가들이 난민 위기에 자구책을 모색하며 EU차원의 공동 대응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난민 위기의 짐을 모든 EU 회원국들이 나눠 지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협상에도 합의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난민 개방 정책을 펼쳐온 독일도 발칸 국가들을 직접 비판으로 하지 않았지만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크리스티아네 비르츠 독일 정부 부대변인은 “범유럽적 해법이 독일 정부가 고려하는 최우선 사항”이라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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