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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에 돌아 온 양수경 “추억팔이는 싫어요"

입력
2016.08.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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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에 돌아 온 가수 양수경은 "음악이 정말 그리웠다"고 했다. 신곡 '사랑 바보'를 내고 무대에 서기 위해 체중을 14㎏이나 뺐다. 세 아이의 '억척 엄마'로 살던 그는 "이제 나를 찾은 기분"이라고 했다. 서원기 사진작가 제공
17년 만에 돌아 온 가수 양수경은 "음악이 정말 그리웠다"고 했다. 신곡 '사랑 바보'를 내고 무대에 서기 위해 체중을 14㎏이나 뺐다. 세 아이의 '억척 엄마'로 살던 그는 "이제 나를 찾은 기분"이라고 했다. 서원기 사진작가 제공

“그 누구나 세월가면 잊혀지지만~”. 지난달 KBS2 음악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사랑은 차가운 유혹’·‘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등 숱한 히트곡을 내고 1990년대 인기를 누린 가수 양수경(49)은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1998년 결혼해 이듬해 연예계를 떠난 뒤 17년 만에 다시 마이크를 잡아 감정이 벅차 오른 탓이다.

“그 동안 마치 산소가 없는 곳에서 살았던 것처럼 답답했어요. 막상 노래를 시작했더니 ‘아, 이게 나였지’ 싶더라고요. 눈물 참으려고 무지 노력했는데, 결국 울컥했죠.” 23일 오후 서울 삼성동 한 카페에서 만난 양수경은 아직도 자신이 복귀한 게 믿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양수경은 신곡 ‘사랑 바보’ 등이 실린 새 앨범이 처음 나온 날 앨범을 자신의 머리맡에 두고 잤다.

애잔한 발라드를 주로 불렀던 양수경의 성격은 시원시원했다. 자신과 성(姓)이 같은 기자를 보자 "서태지와 아이들 중에서도 (양)현석이만 챙겼다"며 악수를 건넸다. 김보하 사진작가 제공
애잔한 발라드를 주로 불렀던 양수경의 성격은 시원시원했다. 자신과 성(姓)이 같은 기자를 보자 "서태지와 아이들 중에서도 (양)현석이만 챙겼다"며 악수를 건넸다. 김보하 사진작가 제공

여동생에 남편 잃고 산전수전… 세 아이 둔 엄마의 용기

다시 가수로 세상 밖으로 나서기까지 마음 먹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양수경은 2013년 연예기획사 예당의 대표이자 남편인 변대윤씨를 먼저 떠나 보냈다. 홀로 남겨진 뒤 남편의 채무와 회사 경영 문제 등에 얽히면서 속앓이를 했다. 자신을 향한 독(毒)을 품은 세상의 시선에 2년 여 동안은 TV도 켜지 않고 살았다. 2009년 갑작스럽게 여동생을 잃고 난 뒤라 상처는 더했다. 양수경은 “7년 가까이 공황장애를 앓았다”며 “여러 일에 휩싸이며 더 숨게 되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양수경은 컴백을 준비하면서도 “겁이 났다”고 했다. 용기를 낸 이유를 묻자 그의 입에선 “엄마니까”란 말이 먼저 나왔다. 남편을 떠나 보낸 후 양수경은 세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다. 남편과 결혼해 낳은 아들 한 명과 마음으로 품은, 여동생이 남기고 간 두 조카다. 양수경은 “언제까지 슬퍼할 순 없지 않나”며 “내가 열심히, 밝게 살아야지 아이들에게 힘이 되니까…”라고 어렵게 말문을 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처럼 살고 싶었다”고 말하는 양수경의 말엔, 그간 그가 겪은 시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노래 욕심이 많았어요." 양수경의 1집 데뷔 곡 '바라볼 수 없는 그대'(1988)는 당초 박강성의 앨범에 수록될 예정이었지만, 양수경이 박강성에 부탁해 자신의 앨범에 넣었다. 다른 히트곡 '당신은 어디 있나요'(1990)도 주현미가 부를 뻔 했던 곡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래 욕심이 많았어요." 양수경의 1집 데뷔 곡 '바라볼 수 없는 그대'(1988)는 당초 박강성의 앨범에 수록될 예정이었지만, 양수경이 박강성에 부탁해 자신의 앨범에 넣었다. 다른 히트곡 '당신은 어디 있나요'(1990)도 주현미가 부를 뻔 했던 곡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래하지 마세요” 말에 8개월 동안 신인처럼 이 악물며 연습

날벼락 같은 ‘사고’가 겹쳐 복귀가 미뤄졌지만, 양수경은 “항상 복귀를 꿈꿔”왔다. 욕심은 컸지만, 목소리가 발목을 잡았다. 20년 가까이 마이크를 내려놔 호흡은 짧아졌고, 목소리 톤은 둔탁해졌다. 양수경은 “‘사랑 바보’를 만든 하광석 작곡가랑 노래방을 갔는데, 내 노랠 듣곤 ‘노래하지 마라’고 하더라”는 얘기도 들려줬다.

양수경이 누구인가. KBS와 MBC 연말 ‘10대 가수상’을 휩쓸고, 해외에선 일본 NHK TV ‘아시아 5대 스타상’(1992)과 ‘동유럽 가요제 백야축제 대상’(1994)을 받은 가요계 원조 한류스타다. 1988년 ‘바라 볼 수 없는 그대’로 데뷔하자 마자 줄곧 청초한 목소리로 사랑을 받아왔던 그에게 “이 상태론 곡을 못 주겠다”는 작곡가의 말은 충격이었다. 양수경은 이를 악물었다. 성악가인 임준식씨의 지도를 받아 8개월 동안 신인처럼 노래 연습을 한 뒤에야, 올해 초 겨우 녹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양수경은 “속상해서 몇 번을 집에서 울었는지 모른다”며 “절실했기 때문에 버텼다”며 웃었다.

양수경의 복귀는 선·후배 가수들이 먼저 반겼다. 양수경이 새 앨범에 평소 좋아했던 ‘갈무리’를 다시 불러 싣고 싶다고 하자, 나훈아는 흔쾌히 수락했다. 양수경의 현 소속사 오스카이엔티의 전홍준 대표는 “나훈아씨가 자신의 곡 리메이크를 허락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같이 활동했던 이선희와 주현미를 비롯해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를 써 준 전영록도 양수경에게 힘을 실어줬다.

양수경(가운데)은 1994년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선수였던 이종범(왼쪽), 선동열 선수와 '투 앤 원'으로 잠시 활동했다. 양수경은 "서로 원하지 않았던 프로젝트"라고 웃으며 "하지만 그 활동으로 좋은 동생과 오빠가 생겼다"고 추억을 떠올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양수경(가운데)은 1994년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선수였던 이종범(왼쪽), 선동열 선수와 '투 앤 원'으로 잠시 활동했다. 양수경은 "서로 원하지 않았던 프로젝트"라고 웃으며 "하지만 그 활동으로 좋은 동생과 오빠가 생겼다"고 추억을 떠올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행사가 지겨웠어” ‘악바리’가 마이크 내려 놓은 이유

전남 순천에서 서울 태릉으로 올라 와 손수레를 끌고 생선을 팔던 부모님 밑에서 어렵게 자란 양수경은 중학생 때부터 가수를 꿈꿨다. “집을 일으켜야겠다”는 신념으로 한 번도 한 눈 팔지 않고 노래만 불렀다. 국악고 재학 시절, 판소리를 하자는 명창의 제안도 고사하고 가수 데뷔만 준비했다. 그렇게 음악에 열정적이었던 양수경은 결혼 후 갑자기 연예계를 떠났다. 양수경은 “1984년에 발표한 노래 ‘친구생각’까지 따지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10년 넘게 하루도 안 쉬고 노래를 불렀다”며 “업소(행사)다니는 것도 지겨웠고, 너무 지쳐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고 옛 고충을 들려줬다.

양수경이 현재 제일 경계하는 건 “‘추억팔이’ 가수로 남는 일”이다. 래퍼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를 좋아한다는 양수경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음악”을 한다는 소신은 지켜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적 변화를 준비할 계획이다. 내달 말에 베스트 앨범을 내고 일본 활동도 준비 중이다.

“이제 날 찾은 기분이에요. 여자 나이 쉰이 되면 자신을 잃어버리기 마련이죠. 누구 아내, 누구 엄마, 어느 집 며느리로 불리면서… 그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많은 걸 포기하고요. 이제 ‘가수 양수경’이란 이름을 되찾았으니 스쳐지나 가는 가수가 아닌, 내 나이 또래 분들에 공감을 줄 수 있는 노래를 하며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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