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장그래' 눈물 닦을 수 있을까… 처우 개선보다 고용 확대 중점
알림

'장그래' 눈물 닦을 수 있을까… 처우 개선보다 고용 확대 중점

입력
2014.12.29 18:55
0 0

계약기한 늘려 숙련도 향상 땐 정규직 전환 용이 구체근거 없어

이직장려금·쪼개기 계약 제한, 실제 고용률 높일지도 미지수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등으로 구성된 '박근혜 비정규직 양산법안 저지 긴급행동 준비위원회'가 29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은 '장그래죽이기법'"이라며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등으로 구성된 '박근혜 비정규직 양산법안 저지 긴급행동 준비위원회'가 29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은 '장그래죽이기법'"이라며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29일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노동시장 활력제고 방안’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처우 개선 보다는 비정규직 사용 규제를 푸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대책의 목표는 고용률 상승을 위한 비정규직 사용 확대에 맞춰졌다”고 설명했다. 고용 유연화와 일자리 쪼개기를 통해 고용률을 높인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염두에 둔 정책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등 규제 완화로 실제 고용률이 높아질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엇갈렸다.

기간제 사용연장, 비정규직만 늘리는 효과

35세 이상 기간제ㆍ파견 노동자가 원할 경우 기존 2년에 2년을 연장해 최장 4년까지 같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개정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정부는 근무기간이 길어질수록 업무 숙련도가 높아져 정규직 전환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논리지만 명확한 근거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률은 근무 기간에 따라 1년6개월 미만이 7.4%, 2년 미만이 19.9%, 2년 이상이 42.4%이지만 높아지는 업무숙련도 때문인지 2년으로 제한된 비정규직 사용기간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권순원 교수는 “기간제 일자리가 많은 기업은 간접고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은 점에 비추어보면, 이번 대책으로 간접고용에 의존했던 기업들이 직접고용 기간제를 적극 활용하려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반면 기존에 정규직으로 뽑았던 일자리도 기간제로 채용하는 역효과 또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 기간만 늘린 것이라며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논평을 통해 “본인 신청이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고용 불안과 희망 고문으로 노동자를 종속시킨 후 4년 동안 부려먹은 뒤 결국 이직 수당 몇 푼 집어주고 해고시킬 것이 뻔하다”며 “정규직으로 진입할 기회를 영구히 박탈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령자 파견 확대…질 낮은 일자리 증가 우려

정부는 55세 이상 고령노동자의 파견 전면 허용에 대해 국내 1차 노동시장 평균 은퇴시점인 53세 이후 재취업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처우가 더 열악한 도급보다는 그나마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파견을 확대하는 게 낫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한국노총이 이달 비정규직 조합원 4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고령자 파견업종 확대에 찬성한 비율은 27.9%(119명)에 불과했고, 61.7%(263명)가 반대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미 현행법에 따라 55세 이상 고령자는 ‘2년 사용기간 제한’을 적용받지 않는데 파견까지 전면 허용된다면 기업이 원할 때까지 업종에 상관없이 고령자를 비정규직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고령 노동자의 고용의 질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전체 노동시장의 하향평준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효성 적은 정규직 전환 유인 대책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유인책으로 ▦3개월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에 퇴직금 적용 ▦2년 이후 계약 연장한 비정규직에 이직장려금 지급(연장 이후 총 임금의 10%) ▦쪼개기 계약 2년 중 3회 이하로 제한 등을 내놓았다.

권순원 교수는 “국내 비정규직 일자리는 정규직으로 가는 가교라기보다는 비정규직 자체에 머무는 경향이 최근 더 심해지고 있는데, 기업이 이정도 비용 부담을 이유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 하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는 편의점 판매 종사원, 주유원 등 단순노무 종사자에 대해 3개월의 수습기간 중 최저임금 이하의 보수를 지급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간당 법정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전체 임금노동자 8명 중 1명꼴인 227만명에 달하는 현실에서 이런 대책이 제대로 시행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정리해고는 어려워질 듯

논란이 된 정규직 해고 요건과 관련해서는 “근로계약 해지의 기준을 명확화”하겠다고 밝혀 요건 완화를 시사했다. 현행법상 정규직 일반해고는 사고나 질병 등으로 근로 제공이 어렵거나 직무 수행 능력이 현격히 떨어질 때만 가능하다. 때문에 “가이드라인을 통해 기준을 명확하게 만들겠다”는 정부 방침은 곧 정규직 해고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민주노총은 “저성과자 개별해고 요건 완화 가이드라인은 사측이 자의적으로 퇴출 규모와 대상을 미리 정해 놓고 다양한 압력을 행사해 그만 두게 하는 불법행위를 정당화시켜주는 대책”이라고 반발했다.

정부는 다만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가능했던 정리해고 역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회사의 해고회피노력의 구체화 ▦근로자대표 합의사항 확대 ▦서면 통보 의무화 등 요건을 명확화하기로 했다.

고용률 상승 효과 엇갈린 기대

이상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파견 허용 등 규제를 풀면 고용률 상승 효과는 일시적으로 나타나겠지만 이렇게 만든 저임금 일자리를 질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용률 상승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며 “비정규직 사용기한을 2년으로 제한한 것은 2년 이상 업무는 상용직인만큼 무기계약직, 정규직 등으로 전환해 보호하라는 취지인데 정부 대책은 이런 취지에서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