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대지진으로 세계적인 문화 유산들이 처참하게 파괴된 가운데, 잔해에서 유물을 훔쳐가는 도굴꾼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스와얌부나트 사원’ 역시 지진으로 훼손된 후 도굴꾼들에 시달려 승려들이 밤을 새워가며 이곳을 지키고 있다고 AFP통신이 4일 보도했다. ‘원숭이 사원’으로 친숙하게 알려진 이 곳은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역사가 긴 만큼 보유한 문화재도 상당하다.
지진 직후부터 스와얌부나트를 지키고 있는 승려 패나카지(61)는 사원 내부에 서 있는 불상 두 개의 틈에 매트리스를 깔고 앉아 밤낮 없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패나카지는 AFP통신에 “카트만두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이 사원에서 우리는 지난 1,600년 동안 기도를 올려왔다”며 “쉽게 잠들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사원 내부의 유물을 훔쳐가지 못하게 계속 지켜보고,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스와얌부나트에서 11년을 살았다는 승려 타시 펀트소크 역시 추가 붕괴 가능성이 있는데도 이곳을 지키고 있다. 그는 카트만두 시내와 인근 산의 절경이 한 눈에 보이는 사원 내부에 텐트를 펼쳐 놓고 도굴꾼들을 감시하는 중이다. 펀트소크는 “내가 여기에 남아 있는 것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유네스코도 스와얌부나트에 최근 전문가 집단을 파견해 피해 정도를 측정하고 도굴꾼들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파견 전문가 가운데 한 명인 데이비드 안돌패토는 “사람들이 많이 몰릴 것으로 보이는 석가탄신일이 걱정”이라며 “많은 유물들이 손상되지 않은 채로 여전히 잔해 속에 있는데, 북적대는 사람들 틈에서 유물을 훔쳐 달아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천연두의 여신인 ‘아지마 조각상’ 등 수호신을 형상화한 유물들이 많아, 이를 탐내는 일반인들도 절도에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이에 봉사자와 전문가들을 최대한 동원해 사원 내외부에 남아있는 유물을 확인하고 있다. 이들은 유물 목록을 작성하고 일일이 사진을 찍어두는 등 적극적인 보존 작업을 펼치고 있다. 또 절도된 문화재가 국제 시장에서 거래되지 못하도록 네팔 정부가 나서 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번 지진으로 네팔에서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7곳 가운데 4곳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카트만두 68개 문화재 중 70%가 무너졌을 정도다. 유네스코를 비롯한 각국 복구단이 현지로 파견돼 구슬땀을 흘리고 있지만, 피해 규모가 상당하다 보니 작업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신지후기자 h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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