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수
분명 어제와는 다른 날이었다. 개가 짖듯 매미가 울었다. 컹컹, 방 안을 기웃거렸다. 방충망을 뚫고 37층 아파트 안으로 들어올 듯 맹렬하게 울어댔다. 매미가 왔어요, 갑자기 거실에 스피커를 틀어놓은 것 같았다. 방충망에 붙어서 집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러다 매미 소리가 딱 그쳤다. 한 순간 메이는 창턱에 올라선 고양이가 매미와 대적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둘이 눈싸움을 벌이는 듯했다. 고양이가 앞발을 들자 이윽고 매미는 사라져버렸다.
몇 분만 지나면 친구들이 올 것이다. 친구 셋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같이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신다. 2년째 계속되는 그녀들과의 약속이다. 그때그때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히 이야기하며 셋이서 소주 두 병을 소비하는 모임. 평일 저녁에는 보통 친구를 만나지 않는데 오늘은 여느 날과 다른 날이었다. 메이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친구들이 이곳으로 오기로 했다. 며칠 전 그녀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쿠폰까지 미리 챙겼다.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친구들의 선물을 풀고 11시쯤 헤어지면 되겠지.
오늘이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이제껏 제레나폴리스에서 친구들과 만난 적은 없었다. 일하는 장소에서 동료들 외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생일인 사람이 그 달의 모임 장소를 정하는 것이 규칙이었다.
메이는 핸드백을 뒤져 아파트 키를 꺼냈다. 오늘은 화요일이다. 수요일 새벽에 그 사람들이 돌아온다. 3707호 사람들. 메이는 다시 센서 키를 만져보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핸드백에 넣고 다니면서 하루에 한 번은 꺼내어 썼는데, 오늘은 촉감이 다르다.
6시 30분이 지났는데도 초대한 친구 중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메이는 다시 센서 키를 꺼냈다. 센서 키에는 일련번호가 있다. 하우스키핑 팀장에게서 키를 받고 그 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해 두었다. 키를 분실했을 때는 즉시 경비팀에 신고하라고 하우스키핑 팀장은 말했다. 메이는 핸드폰을 꺼내 3707호를 검색했다. 거기 M2Y410931 라고 저장해 놓은 일련번호를 복사해서 자신의 메시지에 임시 저장해 두었다. 무슨 쓸모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밖에 없어서였다.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는 상태가 하루에 한 번은 꼭 찾아왔다. 눈 안이 꺼끌꺼끌했다. 일 년 전 어느 날부터 시작된 증상이었다.
카페에는 빈 좌석이 많았다. 퇴근할 무렵 지나치다가 카페 안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는데, 그것도 다른 날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는 왜 자꾸 사라지는 것일까.
6시 55분, 현주가 나타났다. 짧은 커트 머리에 미니스커트, 보라색 하이힐을 신고 왔다. 현주를 볼 때마다 메이는 언제 보아도 깨끗한 그녀의 피부가 부럽다. 잠도 잘 자고 연애도 잘하는 현주. 대학을 졸업한 후부터 줄곧 칠 년을 백수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민지 아직 안 왔네. 먼저 와 있겠다고 했는데, 미안.”
현주가 의자에 엉덩이를 살짝 걸치며 말했다.
“네가 말한 그 레스토랑 쿠폰은 챙겼는데 입주민 키 있으면 할인되니까, 다른 데서 테이크아웃 해서 먹을까? 그럼 더 쌀 수도 있어.”
현주가 쇼핑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대답했다.
“민지 오면 물어보지 뭐. 근데 그럴 장소가 있어? 여기 제레나폴리스 몰 위층은 아파트잖아. 아무나 못 들어간다는데.”
메이가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들어갈 수 있다면,”
핸드백 안의 센서 키를 만지작거리며 메이가 물었다.
“생각 있어?”
“뭐 것도 나쁘진 않지.”
현주가 고개를 갸우뚱대며 말했다.
메이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카운터로 가서 아이스티 두 잔을 주문했다. 현주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방식대로 결정했다. 현주는 아무 말이 없었다. 현주는 오늘이 메이 생일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을 것이었다. 일 년 전 메이는 생일에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 그 전날 셋이 만나 치킨과 맥주를 먹었다. 그리고 밤늦게 집에 들어갔다. 생일 아침은 따로 먹더라도, 저녁은 당연히 엄마와 둘이서 먹는 거라고 시간을 비워 두었다.
메이는 아이스티를 홀짝이며 현주의 구두를 보았다. 펄이 들어간 보라색이 현주가 입은 아이보리색 미니스커트와 잘 어울렸다. 티를 홀짝이던 메이가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현주도 덩달아 일어섰다.
“우리가 먼저 주문하고 민지를 기다리자.”
이 주상복합아파트의 입주민인 것처럼 메이가 센서 키를 목에 걸며 말했다.
“이거 있으면 할인 돼.”
그들은 바로 옆에 있는 샐러드 가게로 갔다. 연어 샐러드를 사고 치킨집에서 핫 윙과 맥주를 주문했다. 피자 포장을 기다리며 현주는 민지에게 문자를 보냈다. 현주와 민지가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 피자가 나왔다. 메이는 피자 박스를 손바닥에 받쳐 들었다. 따스했다. 아파트 입구에서 둘은 민지를 기다렸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민지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오늘따라 민지의 눈이 더 커 보인다. 마치 고양이의 눈을 보는 것 같다.
민지가 케이크 상자를 흔들며 메이에게 말했다.
“난 아직 서른둘인데, 넌 한 살 더 먹네. 이거 우리 집에서 가장 잘 팔리는 거다. 근데 우리 어디 가?”
메이가 센서 키를 흔들며 말했다.
“꼭대기 층”
민지가 다시 물었다.
“우리도 올라갈 수 있어? 그 집에? 너 일하는 데 가는 거지?”
메이는 대답해신 센서 키를 아파트 출입구창에 갖다 댔다. 문이 열렸다. 경비에게 까딱 고개를 숙이더니 메이는 지하1층 엘리베이터로 그녀들을 데리고 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셋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른 입주민들이 타고 있었다. 커다란 개를 안은 여자가 3층에서 탔다. 반바지를 입고 귀고리에다 머리띠를 두른 남자가 있고, 골프 가방을 멘 여자가 있었다. 셋은 엘리베이터 층수가 변하는 것만 바라보았다. 개의 털이 맨다리에 닿기라도 한 듯 현주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꺼끌꺼끌한 고양이의 혀. 고양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털을 핥았다. 아주 가끔 그 혀가 메이의 손등을 핥을 때면 마치 사포로 살을 문지르는 것 같았다.
센서 키를 현관문에 가져다 대기 전, 메이는 잠시 멈칫했다. 현주와 민지는 그녀의 뒤에 바짝 붙어 있었다.
“여기 끝내주네.”
문을 열자마자 현주가 고함을 지르듯이 말했다.
“와, 백화점 지하에서 케이크 파는 것보다 훨씬 낫네. 한강이 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 같다!”
민지도 따라 말했다.
메이는 냉장고 문을 열고 케이크 상자와 맥주를 넣었다. 그리고 냅킨꽂이에서 냅킨을 꺼내 식탁 위에 세팅을 시작했다. 포크와 나이프를 싱크대 서랍에서 꺼내어 놓고 그 옆에 은젓가락도 놓았다. 냉장고 안에서 블루베리 주스를 꺼내고, 체리와 파파야를 꺼냈다.
“그렇게 꺼내도 돼?”
민지가 물었지만 그 말을 못 들은 듯 메이는 과일을 씻고 잘라서 커다란 흰색 접시 위에 담았다. 현주는 거실을 살금살금 걸어 다녔고, TV 옆 장식장에 있는 오너먼트를 하나하나 들어서 살펴보고 있었다. 민지에게 손님용 화장실을 알려준 후, 메이는 다용도실 선반에서 와인 한 병을 꺼냈다. 몇 달 전 3707호 여자가 와인이 너무 많아 처치 곤란이라면서 그녀에게 준 와인이었다.
메이는 3707호 여자에게서 무엇을 받았든 그날 즉시 집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월수금은 오전, 화목은 오후시간에 3707호에서 일했다. 수요일 오전에만 3707호 여자는 집에 있었다. 메이가 오면 커피를 같이 마시고 곧바로 사라졌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메이는 묻고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잠시 서로 얼굴을 볼 뿐이었다. 여자는 커피를 마시며 메이에게 줄 물건이나 그 주에 해야 할 일들을 이야기했다. 드레스 룸에 있는 상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냥 풀지 말고 있던 자리에 그대로 두라고 했다. 그러는 중에 와인도 받았고, 사놓고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핸드백도 받았다. 수요일 오후에 다른 집에 약속이 돼있으면 더욱이나 받은 물건이나 음식물을 가지고 나올 수 없었다. 다른 집 일이 끝난 후에 자기가 받은 것들을 챙기러 3707호에 들른 적도 없다. 일하는 시간 이외에 이 집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지난 목요일 오후 5시쯤이었다. 고양이 사료와 물의 양이 그대로인 걸 발견했다. 방 4개를 살펴보았지만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좀 있으면 퇴근할 시간인데, 옷장 속에 숨어있는 걸 찾아냈던 기억이 나서 선반 위 옷들 사이를 뒤적여 보았지만 없었다. 퇴근시간 직전에야 메이는 고양이를 찾아냈다. 고양이는 메이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엉뚱한 곳에 있었다.
3707호 고양이는 언제나 우아했다. 정해진 사료 이외에 다른 걸 탐하지도 않았다. 고양이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그녀는 매일 똑같은 걸 먹는 고양이가 신기했다. 메이가 비스킷을 먹을 때면 2909호 개는 언제 어디서든 쏜살같이 달려와 그녀를 핥으며 무릎에 몸을 비벼댄다.
“그거 먹어도 되는 거야?”
민지가 다시 물었다. 대답 대신 메이는 체리와 한입 크기로 자른 파파야를 커다란 접시에 담아 식탁 위에 놓고 와인 잔을 그 옆에 두었다. 블루베리주스, 연어샐러드, 핫 윙, 생맥주, 와인, 그리고 피자와 생일 케이크. 식탁이 화려했다. 연어샐러드를 시키지 않고 시저샐러드를 시킬 걸. 핫 윙을 씹으며 현주가 말했다. 피자는 아직 따스했다.
“노래도 안 부르고 먹기부터 했네. 좀 천천히 먹자.”
민지가 말했다.
“따스한 게, 고양이를 만지는 것 같네.”
메이가 피자를 입에 넣다가 중얼거렸다.
“고양이가 어쨌다고?”
민지가 물었다.
“아니, 고양이가 숨은 것 같다고.”
“아까 화장실 갈 때 보니까 방 안에 캣타워만 있던데, 어떤 고양이?”
다시 민지가 물었다.
“집에 그게 있다고!”
“어떡해. 이쪽으로 못 나오게 해!”
고양이란 소리를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것처럼 현주가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핫 윙과 생일 케이크, 조합이 이상해.”
민지가 젓가락으로 샐러드를 먹으며 중얼거렸다.
“TV 좀 켜 봐.”
현주가 85인치 스마트 TV를 가리키며 말했다. TV를 켜자 요리채널이 나왔다.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파스타를 만드는 중이었다.
“저거 만들어 먹자. 좋은 오븐도 있는데.”
식탁 의자에서 일어나며 현주가 말했다.
“만들어먹긴, 귀찮게. 이거 싫으면 다른 거 시켜 먹자.”
금방이라도 ‘요기요’에 연결하려는 듯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민지가 말했다.
고양이는 원래 음식을 싫어하는 종족인가. 메이는 여전히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새 와인 한 병이 사라지고 맥주 세 캔이 비어가는 중이었다. 메이가 일어나 가스레인지 앞으로 가더니 오븐을 켰다.
“예열시간 7분 정도! 까짓것 파스타 해보자.”
현주가 대꾸했다.
“뭐, 피자보다는 파스타가 낫더라.”
셋은 아일랜드 조리대 앞에 섰다. 싱크대 서랍 안에서 앞치마를 꺼냈다. 색상과 패턴이 다른 앞치마 다섯 개가 있었다.
메이는 수납장을 열어 홀 토마토 통조림, 스파게티, 마른 표고버섯 등을 줄줄이 꺼내 조리대 위에 놓았다. 민지가 파스타 만드는 법을 검색했다. 민지는 면을 삶고 현주는 소스를 만들고 메이는 토핑을 준비했다.
모든 준비된 재료들을 직사각형 유리그릇에 담아 오븐에 넣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밤 아홉 시가 넘은 시각, 그녀들은 연어샐러드에서 연어, 양상추, 건조 블루베리를 각자 취향대로 골라먹으며 맥주를 마셨다. 한 가지만 빼면 그럭저럭 괜찮은 밤이다.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민지가 놀라서 메이에게 말했다.
“너가 받어.”
메이가 인터폰 앞으로 가서 화면을 터치하며 말했다. 네, 누구세요? 경비실인데요. 오늘 방문객 예정 있습니까? 아니요. 여기 누가 오셨는데 바꿔 드립니다. 이윽고 여자 목소리가 났다. 나다. 누구신데요. 엄마다. 저는… 안 계시는데요. 메이가 속삭이듯 말했다. 얼른 열어. 나 화장실 급하다. 몇 호 찾아오셨어요? 메이가 또렷한 목소리로 물었다. 3701호 아닌가… 방문객 여자가 말했다. 아닌데요. 여긴 3707호입니다. 방문객 여자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
“놀라지도 않고 그렇게 침착하게 말하니? 꼭 너네 집 같아.”
현주가 말했다. 약간 붉어진 눈동자가 메이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입 꼬리가 기울어졌다.
“찾아올 사람 별로 없다고. 이 집 주인이 말했어. 다들 어디 외국에서 산다고, 낮에 연락 없이 오는 사람은 자기 집에 오는 사람이 아닐 거라고도 했어.”
“그래도 어찌 그리 당당해. 뭐, 집주인인 줄 알겠다.”
“내 집 같단 생각도 들어. 이 집에서 움직이는 시간이 내 원룸에 있는 시간보다 더 많아. 내 방에선 아무것도 못하겠어. 하도 작아서 수면캡슐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 10개월이나 살았는데 집이 집 같지가 않다. 쉬는 날이면 적응이 안 돼 죽겠어.”
일 년 전 그날도 메이는 3707호에 있었다. 일하는 중에는 전화를 받지 않는 게 하우스키핑 팀 규칙이었다. 메이는 전철 안에서 폴더를 열었다. 부재중 전화가 9번, 그리고 문자 메시지가 있었다. 메이는 잠이 많아서 출근할 때마다 힘들어했다. 엄마는 잠을 달게 곤히 자는 것이 소원이었다. 잠이 왜 안 와, 엄마가 불면증을 하소연할 때마다 메이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되물어보곤 했다. 생일 아침, 엄마의 방문이 닫혀 있었다. 어차피 아침은 안 먹고 출근하니까 굳이 새벽녘에 잠들었을 엄마를 깨울 이유가 없었다. 소리 나지 않게 조심조심 움직였다. 자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자살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평소에 마시지도 않던 양주에 수면제를 섞어 마신 게 원인이었다.
메이가 다용도실에서 다시 와인 한 병을 꺼내 왔다. 파스타가 구워지길 기다리는 동안, 셋은 따로 떨어져 있었다. 한 사람은 소파에서, 아슬아슬할 정도로 가득 채운 잔을 들고 한 사람은 식탁에서, 한 사람은 아일랜드 조리대에 서서, 각자 와인을 마셨다.
메이가 한 번 구운 파스타 위에 치즈를 뿌리며 말했다.
“두 번째 와인이 더 나은 것 같아.”
현주가 말했다.
“뭐, 좋아.”
“비싼 와인은 아닐 거야, 그러니까 내게 줬겠지.”
메이가 말했다.
“안 좋아하는 거라 준 게 아닐까. 맛이 좋은 걸 보면 가격은 비쌀 수도 있어. 뭐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선물 받은 것일 수도 있고.”
현주가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다른 사람 진심을 그런 식으로 오해하지 말자.”
민지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네가 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뭐, 진심? 서로 돈을 주고받는 사이인데. 어쩌면 갑을 관계잖아.”
현주가 소리 나게 양상추를 우적거리며 민지에게 말했다.
“여기서 갑을이 왜 나와? 넌 직장에 다녀본 적도 없잖아. 돈 때문에 연결된 고리지만 그런 게 아주 없을 수는 없지. 다른 사람을 부를 수도 있는데 메이를 부른 것만 봐도 그렇잖아.”
민지가 말했다.
“뭐, 메이가 어때서?”
현주가 말했다.
“메이가 어떻다는 게 아니고 많은 사람 중에서 하필이면 왜 메이를 불렀겠어?”
다시 민지가 반박했다.
“하필이면이라니? 메이 정도면 괜찮잖아. 전문대학도 나오고 뭐, 이런 일 하게는 안 생겼지.”
현주가 말했다.
“뭔 소리냐. 메이 생긴 게 이런 일 하게 안 생겼다니. 이런 일 하게 생긴 사람은 어떻게 생긴 사람인데!”
민지가 싸울 듯 현주에게 대들었다. 돌연한 일이다. 현주가 하는 말이 어쩌면 민지가 하는 말 같고, 민지가 하는 말이 현주가 하는 말 같았다. 메이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왜 그래들, 오늘 내 생일이다!”
잠깐 있다가 현주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뭐, 집 구경 좀 하자. 어디가 안방이야?”
드레스 룸 보여줄까? 메이가 물었다. 안방도 보여줘. 민지가 대꾸했다. 거기 고양이가 있을 텐데. 뭐, 드레스 룸이나 보여주든지. 메이가 일어나 드레스 룸으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 현주가 문을 열었다. 와, 완전 드라마에서 본 거와 똑 같네. 옷도 많다. 이게 다 한 여자 꺼야? 이 옷 잡지에서 봤는데, 입고 싶다. 그런데 이 상자들은 뭐야? 참 고급스러워 보이는데 뜯지도 않고 아무 표시가 없다.
현주는 메이가 대답할 틈도 없이 말했다.
오븐에서 소리가 났다. 메이는 다시 부엌으로 갔다. 오븐용 장갑을 끼고 파스타를 꺼내 식탁 위에 놓았다. 빨리 먹자! 파스타 그릇을 식탁에 놓으며 메이가 불렀지만 친구들은 드레스 룸에서 사진을 찍고 구두를 신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메이는 안방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 옷장을 살며시 열었다. 옷장 안 깊숙이 들어가서 왼쪽 행거 아래 상자를 보았다. 상자는 닫힌 듯 열려 있었다. 고양이가 안으로 들어간 후, 뚜껑이 스르르 닫힌 것 같았다. 상자는 손잡이 부분이 원래 뚫려 있던 것이다. 공기가 안 통하는 상자는 아니었다. 3707호 고양이는 끊임없이 사라지는 연습을 했다. 완벽한 실종은 고양이가 죽을 때만 이루어지겠지. 모든 고양이가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화장실에서 손을 박박 씻고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눈에 핏발이 섰다.
그날 이후 메이는 하루에 3시간쯤, 자다가 뚝뚝 끊어지는 토막잠을 자고 있다. 어젯밤 엄마 제사를 지냈다. 퇴근길에 마트에서 막걸리 한 병, 인절미, 황태, 사과, 바나나, 양초를 샀다. 향을 살까, 망설이다가 향 냄새가 퍼지면 옆방에서 또 뭐라 할까 봐 사지 않았다. 밤과 대추와 곶감도 사고 싶었지만 동네 마트에는 그게 없었다. ‘월요일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갔을 텐데, 미안하다. 계좌번호 보내주라.’ 이모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제사를 끝내고 메이는 인절미, 사과, 바나나를 저녁으로 먹었다.
메이는 친구들이 오늘을 기억하고 있을 줄 알았다. 단지 자신을 위해서 모르는 척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작년 생일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장례식장에도 왔으니까, 둘 중 하나는 그에 대한 언급이 있을 줄 알았다.
현주가 부엌 쪽에서 메이를 불렀다. 방금 전 말싸움도 잊은 듯, 현주와 민지는 맥주를 마시며 스파게티를 먹었다. 현주는 미니스커트 대신 목둘레가 좁은 롱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민지는 마놀로 블라닉을 신은 채 다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사이즈가 완전 똑같아.”
“빨리 벗어! 너네, 거기 뭐라도 묻으면 귀찮아.”
메이는 그 말만 하고, 파스타는 먹지 않았다.
메이가 거실 화장실을 이용할 때면 어느새 고양이는 그녀를 따라 화장실로 들어왔다. 어느 날 메이는 고양이가 욕조 안에 들어가 있는 줄 모르고 화장실 문을 닫았다. 두 시간은 지났을 것이다. 일이 끝나는 시간에 옷을 갈아입으며 메이는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 걸 발견했다. 그날 이후 고양이는 메이를 따라서 화장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양이는 아무렇게나 행동하지도 않았고 뭔가 생각이 있는 듯 움직였다.
3707호에는 아이가 없었다. 처음 여기 온 날이었다. 안방 침대 끄트머리에 붙어서, 거의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던 작은 머리통. 180도쯤 고개를 획 돌려서 메이를 쳐다보던 고양이의 눈. 애가 아파서, 안 일어나네. 보통 때 같았으면 이렇게 가만있지 않는데. 3707호 여자가 변명하듯이 말했다.
방 네 개 화장실 두 개 다용도실과 베란다를 청소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녀가 일하는 시간에는 집에 사람이 없으니 일하기도 편했다. 하지만 항상 고양이를 의식해야 했다. 자신을 부른 이유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고양이를 돌보는 일인 것만 같았다. 고양이가 없으면 하는 일이 반으로 줄어들겠지만 아예 자신이 여기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질 것이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털을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다 털 뭉치가 먼지처럼 방구석에 뭉쳐있는 것을 보면 그게 꼭 자신의 입을 틀어막을 것 같았다. 배변을 처리하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고 일회용장갑을 끼고 5분 정도만 투자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녀가 일하는 네 시간 동안에 딱 한 번만 그 일을 하면 되었다.
“양주는 없어?”
현주가 물었다.
“응.”
메이가 냉장고에서 캔 세 개를 꺼내며 말했다.
“아까 그 상자 두 개는 뭐야, 상자를 열어보지도 않고 왜 그대로 두냐?”
현주가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거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른 채 그냥 샀다고 하던데, 인테리어 소품처럼 거기 놔둔 거 같아. 언젠가 열겠지.”
메이가 질문인지 대답인지 모를 어투로 말했다.
“하긴 뭐 상자만 봐도 작품 같긴 하다.”
현주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민지는 퉁퉁 부은 다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 소파에서 졸고 있다. 베이커리에서 일하는 것도 만만한 게 아니다.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하다 보면 잘 붓는다고 했다.
고양이는 오븐에서 발견되었다.
마치 뼈가 삭은 듯 말랑말랑하던 고양이. 처음부터 상자 속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메이가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을 때 그러니까 고양이의 배변을 처리할 때, 고양이는 오븐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 전날 오후에 오븐을 열어놓은 채로 3707호 사람들이 여행을 갔다. 다음 날 오후 메이가 집에 들어왔고,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다가 오븐이 열린 게 눈에 걸리적거렸다. 세제를 투입하고 버튼을 누른 후 식기세척기 바로 옆에 있는 문을 닫았다. 오븐 위에 있는 가스레인지는 매일 닦지만, 오븐은 매일 닦을 필요가 없었다. 자동세척기능이 있는 인공지능 오븐이라고 설명서에 쓰여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점검과 세척을 했다.
오븐을 닫을 때 그 안을 들여다보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 털 색깔이 오븐 안의 색깔과 비슷하다는 점이 문제였을 것이다. 그 후 메이는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중이었으므로 고양이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니 들었을지도 모른다. 비좁은 그 속에 너도 잠깐 처박혀 있어. 언제나 우아하기만 한 고양이를 변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상태가 너무 오래되었고 그 생각마저 깜박 잊어버렸다. 모든 일은 잠을 못 잔 데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고양이는 꼬리 부분과 얼굴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돌돌 만 채 오븐 벽에 붙어 있었다. 털 뭉치를 뱉어놓은 듯 오븐 바닥에 토사물이 약간 있었다.
“오늘 니 생일 맞아? 뭐 좀 이상해. 말도 없고, 초도 안 켜고 케이크만 먹고 우리 노래도 안 불렀잖아.”
현주가 동의를 구하는 듯 민지를 보며 메이를 향해 말했다.
“여기까지 데리고 왔으면 뭐 신나게 놀던가. 저 오디오…….”
현주가 다시 말했다.
“그만 끝내자.”
메이가 접시들을 싱크대로 옮기며 말했다.
“뭐, 아직 열 시인데, 저것 좀 듣고 더 있다 가자.”
“어쩌면 여기 사람들이 밤늦게라도 올지 모르고.”
현주가 재빠르게 핸드백과 쇼핑백을 챙겼다.
“민지야 우리 다른 데로 가자. 요 아래 갈 데 많던데.”
현주가 든 쇼핑백 안에 뭔가 들어있는 것 같은데, 그걸 풀지도 않은 채로 다시 가져가려 했다. 좀 취한 듯했다.
“오늘 너 좀 이상해.”
민지가 잠이 덜 깬 듯 부스스한 눈으로 기우뚱거리며 말했다.
“화장실 가려면 이쪽 화장실을 써.”
메이가 거실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들이 화장실을 가는 동안 메이는 안방으로 향했다.
옷장 안이 서늘했다. 환풍기가 돌아가고 온도계는 25도를 나타내고 있다. 메이는 고양이를 살펴보았다. 몸의 온기와 물기가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 같았다. 언제나 고개를 바닥으로 내리깔고 가만 누워 있는 때가 많은 고양이였다. 턱 밑에 손을 대보았다. 옷장 문을 닫고 거실로 갔다.
“이제 갈래?”
“넌 안 가?”
“나는 정리 좀 하고.”
“뭐, 우리끼리 갈게. 내려갈 땐 경비가 체크 안 하겠지?”
“응. 문자할게.”
둘이 밖으로 나간 후 메이는 옷장으로 들어갔다. 상자를 들었다. 옮겨놓을까, 하다 있던 자리에 두었다. 그러다 다시 일회용장갑을 끼고 상자 속에서 고양이를 꺼냈다. 작은 방에 있는 캣타워 아래 칸으로 고양이를 옮겼다. 벨벳깔판 위에서 턱을 바닥에 붙이고 자신이 일할 때 말똥말똥 아래를 바라보곤 하던 고양이였다. 좀 가벼워진 것 같았지만 오븐 속에서 꺼내 상자 속으로 옮길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실 화장실로 가서 메이는 오래 손을 씻었다. 거의 자신만이 사용하던 손님용 변기에 앉아 한강을 바라보았다. 집에서 쉬는 날, 메이는 락스와 세제를 넣고 변기 속을 박박 문질러보았다. 아무리 박박 문질러 닦아도 변기 속에 박힌 얼룩은 흐려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다. 얼핏 보면 그 안에 하수구로 내려가다 만 똥이 걸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자신의 원룸에서는 가능하지 않던 배변이 깨끗하고 냄새 좋은 여기 앉아있으면 해결이 되었다.
어제와 같은 날인 줄 알았는데 오늘은 달랐다. 일 년 반을 일하는 동안 매미가 37층까지 올라와서 땅을 갈아엎을 듯 소리 낸 적은 없었다. 3707호 사람들을 보는 것보다는 고양이를 본 시간이 더 많았다. 고양이 보모라고 동료들이 놀려도 개의치 않았다. 지하1층 할인매장에서 손님들과 부대끼면서 포스를 찍어대는 일보다는 조용하고 갑갑하지 않은 공간에서 혼자서 하는 일이 더 나았다. 대우도 좋은 편이었다.
엄마가 죽었어도 살았어, 그런데 설마 고양이가 죽었다고…….
메이는 마음을 다잡았다. 오븐 안을 다시 살펴보았다. 스파게티 냄새와 치즈 냄새만 가득할 뿐 토사물이 있었던 자리는 말끔히 지워진 듯하다. 옷장을 열었다. 온도계는 25도를 가리키고 있다. 상자는 입구에 있었다. 메이는 상자를 원래 있던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옷장 문을 닫았다. 센서 불이 꺼졌다. 옷장 문을 열었다. 불이 켜진다. 문을 닫아야 불이 꺼지니까, 옷장 문을 꼭 닫았다. 거실로 나왔다. 캣타워 앞에 있는 창문을 닫았다. 실내 온도는 28도를 가리키고 있다.
식탁과 싱크대는 음식찌꺼기와 와인병과 맥주캔과 구겨진 냅킨 등으로 지저분했다. 재활용할 것을 분류하고 음식물쓰레기는 비닐에 담아 같은 층에 있는 쓰레기박스에 던져 넣었다.
냉장고를 열었다. 파파야와 체리를 조금 꺼낸 것 말고는 다른 변화는 없어 보였다. 그것들을 꺼내기 전 핸드폰으로 냉장고 안을 찍어둔 것을 비교해보았다. 3707호 여자가 그 차이를 알아차릴 수는 없을 것이다. 매주 수요일 오전 커피를 마시며 3707호 여자는 말했다. 냉장고에서 과일과 생수는 꺼내 먹어도 된다고 했다. 매주 똑같은 말을 하니까 오히려 그걸 꺼내 먹을 수가 없었다. 생수만 마시곤 했을 뿐이다.
케이크와 케이크 상자도 버렸다. 원래 고양이가 있었던 데가 오븐 속이 아니라, 냉장고 속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리는 없지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냉장고에도 고양이의 흔적은 없었다.
검은 쓰레기봉투를 들고 메이는 거실을 살폈다. 친구들의 흔적이라고 보일 만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구두 때문에 벗어놓은 건지, 민지의 레이스 양말이 소파와 소파 사이 틈에 있었고, 식탁의자 아래에 현주의 머리끈이 떨어져 있었다.
메이가 퇴근한 후에 고양이가 죽은 것이다. 3707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경비사무실에 가서 37층 복도 CCTV를 확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범죄 현장도 아니고 없어진 물건도 없고, 설마 그런 절차를 거치진 않을 것이다.
하루에 4시간씩 1주일에 5일 일하고 자신이 받았던 금액을 생각하며, 메이는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2년 전까지 직장 상사나 동료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느꼈던 감정을 3707호 여자에게서도 느꼈던 적이 있다.
고양이가 심심할까 봐 자신을 부른 건 아닐까.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강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고양이도 강 쪽을 향해 꼬리를 움직이며 누워 있었다. 냉장고에 있는 플라스틱 케이스를 본 후, 자신이 오로지 고양이를 위해서 관리사로 취직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가 그 디저트를 먹었다면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이 사다 냉장고에 넣어둔 가격표가 붙어있던 디저트를 고양이는 냄새만 맡았을 뿐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집에 딱 한 병 있던 양주. 3707호 여자가 가져가든 버리든 하라고 부엌 바닥에 둔 것이었다. 메이는 뚜껑도 따지 않은 것을 버리기 아까웠다. 집에 이모가 오면 셋이 한번 맛을 보거나 이모부에게 선물해도 좋을 것이었다.
캣타워 속 고양이는 한낮에 그랬던 것처럼 낮잠을 자는 듯 널브러져 있다.
아침이면 깨어날지도 모른다. 그녀는 고양이를 맨 위 칸으로 옮겼다. 창문을 닫았으니 고양이가 뛰어내릴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겠지. 다른 날과 같이 에어컨을 켜놓고 가야겠다.
마른 행주로 접시를 닦으며 메이는 생각했다. 집안 곳곳에 숨어있던 고양이의 털. 그 털이 목구멍에 걸린 듯 자꾸 기침이 나려고 했다.
내일 아침 3707호 사람들이 돌아온다.
자신이 출근할 때쯤 그들은 이미 고양이의 상태를 발견한 후일 것이다. 동물병원 오픈 시간은 10시에서 20시까지이다. 정말 에어컨은 켜놓고 가야 할까, 끄고 가야 할까. 처음 오븐 속에서 꺼냈을 때 그 즉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면 만약 그랬다면 살아났을까, 괜찮았을까.
메이는 와인 잔을 닦으면서 끝내 그 생각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매미 소리가 들렸다. 얼기설기 불빛이 비치는 방충망에 매미는 죽은 듯 붙어있다. 한낮의 고양이처럼 메이가 방충망 가까이 다가간다. 공중에 은가루를 뿌리듯 매미가 찍, 오줌을 싸고 날아간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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