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이번 선거 결과는 국민의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모두 발언에서 이같이 말하고 “앞으로 국민의 민의를 겸허하게 받들어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에 두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모두 발언은 평소보다 크게 짧은 6분에 그쳤고, 총선 결과와 20대 국회와의 협력 방안 등에 대한 언급은 겨우 44초에 그쳤다고 한다.
발언 내용과 길이 양면에서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이 얼마나 안이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4ㆍ13 총선에 대한 사실상의 첫 공식 언급인 만큼 제법 밀도 있는 반성과 사과로써 ‘국민의 심판’에 응답할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그 동안 총선 결과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은 지난 14일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 국민의 이런 요구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짤막한 논평이 전부였다. 이 때문에 총선 결과에 대한 본격적이고 진지한 인식은 박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드러나리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 무성했다. 심지어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나 별도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과의 소통을 시도할지 모른다는 관측까지 있었다. 이런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대통령의 발언에 적잖이 어안이 벙벙하다.
평소 같으면 청와대는 총선의 직접 당사자이거나 국민이 표로 보여준 심판의 1차적 대상이기 어렵다. 그에 대한 언급이 총선 민의에 관심을 표하고 20대 국회와의 협력 자세를 표하는 상징적 수준에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달랐다. 우선은 집권 3년이 지난 현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띠게 마련이었다. 또한 집권 여당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 공천 파동, 특히 박심(朴心)을 앞세워 비박(非朴)ㆍ반박(反朴) 세력을 억지로 배제하려는 친박(親朴)ㆍ진박(眞朴)의 부조리한 정치 행태에 집중됐다는 점에서 결코 박 대통령과 무관하지 않다. 더욱이 박 대통령은 우회적 공천ㆍ선거개입 의심을 살 만한 언행을 멈추지 않았다. 총선 결과를 박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동시 심판ㆍ경고로 보는 해석이 지배적인 것이 다 그 때문이다. 따라서 애초에 청와대는 도의적 책임은 물론이고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를 무시한 박 대통령의 소극적 언급은 그저 한 마디 걸치고 넘어가려는, 마지못한 것처럼 비친다. 말로는 민의에 따르겠다면서도 그에 저항하는 듯한 권력의 행태에서, 본격적 권력누수가 시작되고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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