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자살 조연출 사건대책위
“비정규직에 갑질 강요 등 비판”
CJ에 공식 사과ㆍ재발방지 촉구
“하루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 세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 내고…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유서내용 일부)
CJ E&M의 신입 조연출 PD가 자신의 과도한 노동, 그리고 이를 비정규직 스태프에게도 강요해야 하는 상황을 비관해 지난해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년유니온 등 2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는 18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한빛(당시 27세) 조연출 PD의 죽음에 대한 CJ E&M의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지난해 4월 드라마 ‘혼술남녀’ 팀에 배치된 이 PD는 평소 집에 거의 들어오지 못하며 새벽 2~3시까지 일하기 일쑤였다. 정규직인 그는 자신이 관리하던 비정규직 조연출들에게도 이 같은 노동을 촉구해야 했다. 결국 마지막 촬영일이었던 지난해 10월 21일 이 PD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유서를 남긴 채 목을 매 목숨을 끊었고 5일 뒤 발견됐다. 대책위가 이 PD의 업무 메신저와 통화 발신기록 등을 종합한 결과, 8월 27일~10월 20일 55일간 이 PD가 쉰 날은 단 2일,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4.5시간에 불과했다.
어머니 김혜영(58)씨는 “아들은 입사 이래 월급을 세월호 유가족, KTX 해고 승무원, 기륭전자 비정규직 등에 기부할 정도로 평소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며 “촬영 중간 교체된 비정규직 스태프들의 계약금을 환수할 때 특히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대책위가 이날 공개한 회식 당시 녹취록과 메신저 단체방에서는 업무 부담을 토로하는 그에게 선임 PD들이 남긴 “이한빛 개XX야” “진짜 한 대 후려갈길 뻔 했다” 등의 과격한 문자도 다수 있었다.
대책위는 지난 6개월간 진상 규명을 위해 사측에 공동 조사를 요구했으나, 사측은 내부 조사를 고집하며 마찰을 빚었다. CJ 측은 대책위에 보낸 답변서를 통해 “제작 환경이 타 프로그램 대비 나쁘지 않았으며 이 PD의 상급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PD의 근무태도가 불량해 오히려 사측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사측은 실종 4일째에야 이 PD가 소지하던 법인카드를 회수하기 위해 집에 연락을 취해, 그때야 유가족들이 실종 사실을 알았다. 어머니 김씨는 “실종 사실을 접하고 담당 PD를 면담했으나 1시간 동안 평소 근무태도가 불량했다며 아들을 비난하기 바빴다”고 주장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과도한 노동과 책임을 막내 조연출 PD에게 지우면서 이를 수행하지 못하자 근무태도가 불량하다고 규정한 것”이라며 “향후 1인 시위와 온라인 서명 운동 등을 전개하고, 필요할 경우 사측에 법적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CJ E&M측은 “수사기관이 조사에 나선다면 그 결과를 수용하고, 지적된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등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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