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치 주장한 정치인 입국 거부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 보복 예상
미사일 조준 등 군사대응도 언급
사드는 경제와 무관, 제재 근거 없고
한국 역공 땐 국제사회 역풍 우려
중국 정부 ‘정면 공격’ 가능성은 낮아
한미 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한반도 배치 결정에 대해 중국이 9일자 환구시보(環球時報)를 통해 5개 항의 대응방안을 적시하며 노골적으로 반발했다. 제재의 법적 근거가 없어 일단 심리적 압박을 가하려는 엄포로 보이지만, 대신 중국이 우리 국민과 기업을 상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보복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환구시보가 지목한 제재대상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사드를 배치할 행정군(行政郡)과 관련 기업, 배치를 주장한 정계인사들을 제재하고, 이들의 중국 진입은 물론 모든 교류관계를 단절한다는 내용이다. 가령, 사드 배치 유력지인 경북 칠곡의 경우 지난해 중국 하남성 제원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중국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지만, 군내 400여개 업체의 수출길이 막힐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유승민 원유철 의원 등 주로 새누리당에서 사드 배치를 주장해왔는데, 이들이 중국 공항에 입국할 때 공안에서 외교적 이유로 다시 한국에 돌려보내는 시나리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국내 95개 방산업체와 수천여 개 협력업체가 사드를 빌미로 중국과의 협력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정부 소식통은 10일 “한국에 대한 전면적인 보복이 아니라 특정 지역이나 인사로 타깃이 국한돼 있어 전혀 허황된 주장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사드 배치 후보지를 놓고 지역갈등이 번지듯, 한국 내에서 중국에 대한 공포감을 고조시켜 내분을 조장하려는 의도까지 엿보인다는 분석이다.
환구시보는 사드 시스템을 자신들의 전략미사일로 조준한다는 군사적 대응도 밝혔다. 한반도와 미국의 해외 주둔기지를 겨냥해 동중국해나 서해에서 미사일 발사를 포함한 무력시위가 강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군 당국은 중국이 지난 2013년 이어도와 제주도 상공에 일방적으로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에서 위협비행에 나설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이외에 환구시보는 사드 배치로 인한 지역 불균형 문제와 대북제재를 연계하고, 러시아와 연합해 구체적 행동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비핵화 해법은 물론이고 북한이 향후 무력도발을 감행하더라도 한미 양국과 궤를 달리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더 나아가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를 무력화하는 극단으로 치달을 우려도 있다.
다만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국인 중국이 규정에도 없는 ‘국가 제재’에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사드 배치와 경제 제재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중국 제재에 대해 역공을 펴면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궁지에 몰릴 수도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중국은 사드 배치로 전략적 이익이 훼손됐지만, 그렇다고 한국과 등을 돌릴 경우 더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구시보의 주장은 한낱 수사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공식입장을 대변하는 인민일보와 달리, 환구시보는 중국인들의 불만과 민족감정을 대외적으로 표출하는 배출구로 기능해왔다.
환구시보의 주장처럼 중국이 대놓고 무리수를 취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마냥 팔짱을 끼고 있을 리도 만무한 상황이다.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중 정상회담을 비롯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드 배치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만큼, 중국은 자국 내 반발여론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을 향해 확실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에 중국에서 우리 기업의 인ㆍ허가를 늦추고 통관절차를 엄격하게 적용하거나, 유커(중국관광객)들의 한국관광을 제한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중국이 서비스 분야와 문화 공연 등 통상 이외의 분야에서 물밑으로 우리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방안은 부지기수다. 한미 양국의 사드 배치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중국이 일부 분야에서는 이미 보복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현재 중국 수출품의 5%를 세관에서 검사하는데 샘플링 규모를 30%로 늘린다면 그만큼 우리 업체들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한중관계의 틀을 깨지 않는 범위 안에서 중국이 다양한 카드를 꺼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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