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아, 내 친구가 10년 전에 폐암에 걸렸는데 이번에 대만에서 만났어. 이미 죽은 줄 알았는데 멀쩡하게 살아서 사업까지 하고 있더라. 열심히 살다 보니 암도 이길 수 있었대. 중요한 건 정신력이야. 알았지?”지난해 12월 친구 박종환(朴鍾煥) 감독이 전화로 내게 한 말이다. 그때 그는 한국여자축구대표팀을 이끌고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여자축구선수권 대회에 참가 중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전화로, 가까이 있으면 직접 찾아와 이런 저런 힘이 나는 말을 해주는 그가 정말 고맙다.
지난달에도 강원 홍천에서 몸에 좋다는 약수를 구해 찾아왔다.
“산소가 풍부한 물이니 마셔봐라. 확실히 다를 거다. 다음에 올 때는 몇 박스 가져올게”는 그의 말에 그 약수를 몇 잔이나 마셨는지 모르겠다.
아내가 “하루에 물 한두 잔 마시는 사람이 웬 일이냐”고 놀랄 정도로 맛이 참 좋은 물이었던 것 같다.
고맙기로는 분당 우리 집을 담당하는 우체국 집배원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보도된 후 정말 많은 편지가 왔다.
정확한 주소도 없이 ‘투병중인 이주일 귀하’ ‘대한민국 이주일 귀하’ ‘암에 걸린 이주일 귀하’ 이렇게만 써도 다 배달이 됐다.
이런 편지가 아마 수십 통은 될 것이다. 이 자리를 통해 그 편지들을 일일이 전해준 집배원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이밖에 박 감독 말고도 몸에 좋은 생약이나 특산물을 보내준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다. 몇몇 사람들은 아예 직접 소포로 보내주기까지 했다.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무료로 주겠다는 의료기 회사도 있었고, 암 특효약 제조법을 편지로 보내준 팬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성의만 고맙게 받아들이고 있다. 워낙 식욕이 없어 약조차 먹기 싫은 탓도 있지만 지난해 12월 초 내게 벌어진 한 사건의 후유증 때문이기도 하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계룡산 기 치료’ 사건 정도 되겠다. 지난해 11월 말 충남 계룡산 자락의 한 암자에서 수도 중이라는 한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열성 팬이라는 그는 “한 달만 우리 절에서 지내십시오. 그러면 효과가 있을 겁니다”라고 일종의 기 치료를 제안했다.
며칠 고민하다 결국 12월 초 가족들과 함께 계룡산으로 떠났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스님의 강력한 권유때문이기도 했지만 5분을 집안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내 성격때문이기도 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지내면 몸도 좋아지겠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안 가는 것만 못했다. 오히려 몸이 더 안 좋아졌다.
스님은 “나쁜 기운을 빼내고 새 기운을 넣어주겠다”며 나를 눕혀놓고 지압을 했다. 자신이 개발한 기 치료법이라고 했다.
2, 3일이 지나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온 몸이 쑤셔왔다. 암자에 들어간 지 정확히 1주일 후. “이제부터 새 기운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스님 말을 뒤로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일산 국립암센터를 찾아갔다.
주치의인 이진수(李振洙) 병원장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며칠 사이에 이렇게 몸이 망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 박사의 권유에 따라 곧바로 입원을 하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코미디도 그렇지만 암 치료도 한 우물만 파야 한다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쁜 기운이 빠져나가면서 좋은 기운까지 같이 빠져나간 것 같다. 현대 의학이든 한방이든 몸이 나으려면 어느 하나만 밀고 나가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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