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등록 : 2017.03.11 04:40
수정 : 2017.06.30 04:41

[카타르시스, 배철현의 비극읽기] 신적인, 영웅적인 행위를 흉내내 현실에서 뛰어오르라

<2> 그리스 비극의 핵심 ‘뮈쏘스’

등록 : 2017.03.11 04:40
수정 : 2017.06.30 04:41

호메로스의 흉상을 보는 아리스토텔레스. 신화와 비극간의 대화다. 렘브란트 1653년작

인간의 삶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결국, 그 누구도 죽음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생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본능적으로 추구한다.

권력, 명예, 그리고 돈은 순간을 사는 인간에게 영원한 삶을 선물해 줄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인간 욕망의 총체다. 우리는 영원한 명성과 생명을 추구하는 인간들이 운명적으로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인간 자체로서의 한계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무모한 영웅적인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영웅적이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삶, 한계에 도전하여 극복하려 하지만, 다시 그 한계에 머물러 있는 인간,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꿈꾸지만, 미움과 시기, 이기심과 음모로 가득한 인간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비극(悲劇)이다.

비극 정신의 핵심은 ‘뮈쏘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그리스 비극의 정신은 ‘뮈쏘스’에 담겨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말한다. “필연적으로 모든 비극은 여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극의 수준은 이것들에 달려있다. 여섯 부분은, “구성(뮈쏘스ㆍmythos), 인물, 언어, 생각, 장면, 그리고 노래다. 이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뮈쏘스이며, 뮈쏘스는 ‘사건들의 배열’(pragmaton systasis)이다. 비극은 사람에 관한 재현이 아니라 행위(praxeos)와 삶(biou)에 관한 재현(mimesis)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비극이 2,5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회자될 뿐만 아니라, 아테네 르네상스가 상징하는 서양문명의 모체가 된 이유를 ‘뮈쏘스’라고 단언한다. 비극의 여섯 가지 요소들 중 나머지 다섯 가지는 오감으로 확인가능한 것들이다. 그러나 ‘뮈쏘스’는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어떤 것이다. 그는 ‘뮈쏘스’를 두 번이나 다시 부연 설명한다.

‘뮈쏘스’는 ‘사건들의 배열’이다. 여기서 ‘사건’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프라그마톤’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단순한 행위를 지칭할 때 ‘에르곤’(ergon)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프라그마톤’은 어떤 위대한 일, 현재보다 원대할 일을 도모하는 마음의 상태인 동기와 그것을 완벽하게 결과로 산출하기 위한 과정을 포함하는 단어다. 이 단어는 오히려 ‘연습’(practice)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낫다. 뮈쏘스는 그런 연습을 자신의 삶의 여정에 알맞게 적재적소에 배열하는 예술이다. 뮈쏘스는 인류가 진화하면서 다른 동물과는 달리 스스로를 혁신하기 위한 정신적인 요가훈련이다. 우리가 그리스 비극이 주는 심오하고 감동적인 카타르시스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들 중에 하나는 ‘뮈쏘스’의 의미를 되살리지 못하고 믿지 못할 이야기 즉 ‘신화’(神話)로 평가절하했기 때문이다.

‘의미를 찾는 인간’과 뮈쏘스

인간은 의미를 찾는 동물이며 의미를 찾는 과정이 이야기다. 고고학자들은 현생인류가 등장하기 전 유럽에 거주하던 네안데르탈인들의 무덤에서 무기, 도구, 화장품, 희생제사에 사용한 동물의 뼈들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사후세계를 믿었다. 동물들은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들은 자신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죽음을 수용하면서, 그것을 정신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독특한 문화를 창조한다. 그것이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죽은 자들이 생전에 지녔던 소장품들도 함께 매장하였다. 그들이 경험한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세계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일상경험을 초월한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다.

동물들은 자신들이 처한 조건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혹은 다른 곳에 거주하는 동물들의 어려운 상황을 걱정하지도 않는다. 혹은 자신을 다른 동료 동물의 입장에 서서 희노애락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자신이 아닌 가족, 이웃, 혹은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인간의 처지를 생각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자신을 살펴본다. 우리는 혼돈스러운 삶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와 그 가치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삶은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이 위로가 인류에게 문화와 문명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용기를 선사하였다.

‘상상하는 인간’과 의례

인간의 또 다른 특징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생각과 경험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는 오감으로 감지할 수 없는 것을 떠올릴 수 있는 능력, 즉 상상력을 지녔다. 우리가 상상한 그것은, 지금 당장엔 실물이 없다. 상상력은 종교, 신화,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모체다. 오늘날 신화적인 상상력은 비이성적이거나 자기만족적이라 현대문명을 저해하는 비과학적인 퇴물로 취급 받는다. 그러나 상상력은 과학자들이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고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기술을 구체화하는 유일한 도구다. 그들의 상상력이 인류를 달로 여행하게 만들었다. 신화와 종교는 이 세상을 외면하거나 도피하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짧은 인생을 사는 인간에게 심오하게 사는 다양한 길을 제시한다.

네안데르탈인들의 무덤은 인류 문화의 근간이 되는 신화에 대한 중요한 점들을 시사한다. 그들은 죽음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신화를 만들어냈다. 특히 무덤은 동물의 뼈들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그들은 실제 매장을 제사의식을 통해 진행했다. 신화는 의례와 불가분의 관계다. 신화는 의례에서 사용되던 노래들이다. 우리는 신화를 의례-드라마를 떠나서 이해할 수 없다. 의례는 신화를 부활시키는 도구다. 의례를 통해 신화를 몸으로 체득한 네안데르탈인들은 빙하기에 들소와 같은 큰 동물을 사냥하면서 목숨을 위태롭게 만드는 위험한 상황에 빠질 때, 신화를 기억한다.

가장 강력한 신화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 관한 이야기며, 일상적인 삶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끔찍한 내용이다. 예를 들어, 천재지변, 반신반인과 같은 괴물과의 대결, 부모살해와 형제살해, 그리고 근친상간과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신화를 통해 우리가 가본 적이 없는 곳으로 진입하여 이전에 감히 경험할 수 없는, 인간 경험의 한계인 타부를 감행한다. 신화는 알 수 없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신화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로 거대한 침묵의 내면을 훔쳐보는 작업이다.

하늘에 있는 원형을 향한 ‘영원의 철학’

모든 신화는 실재하는 현실과 함께 별도로 존재하며, 현실의 삶에 의미와 방향을 제시해준다.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현실보다 더 확실한 세계로 ‘신들의 세계’ 혹은 ‘반인반신인 영웅들의 세계’라고 불린다. 우리는 이런 신화를 ‘영원의 철학’(perennial philosophy)이라 명명하였다. 영원의 철학은 세상의 모든 종교전통들을 하나의 형이상학적 근원을 공유하는 각 문화권 아래 자생한 자주적인 표현으로 정의한다. 이 용어를 만들어낸 학자는 15세기 이탈리아 고전 히브리어 학자 아고스티노 스테우코(Agostino Steucoㆍ1497~1548)이다. 스테우코는 모든 민족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유일하면서도 동일한 지식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면서 둘이며, 둘이면서 셋이다. 그리고 다시 셋은 하나의 신비한 원칙이다. 영국의 소설가이면서 비평가인 올더스 헉슬리(1894~1963)는 힌두교 사상 신-베단타의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의 영향을 받아 ‘영원의 철학’이라는 책을 썼다.

‘영원의 철학’은 18세기 근대과학이 도래하기 전까지 서양사회의 신화, 의례, 그리고 사회기관들의 근간이 된 사상이다. 이 철학에 의하면 지상에서 있어나는 모든 현상보다 더 강력하고 원초적인 원형이 천상에 존재한다. 모든 지상의 현실은 하늘에 존재하는 원형의 불완전한 복사일 뿐이다. 인간은 하늘에 존재하는 신적인 삶에 참여함으로, 죽을 수밖에 없고 연약한 인간은 신적인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신화는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천상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형태와 성격을 제시한다. 신화는 신들이나 영웅들의 행위를 노래한다. 그 노래는 한가한 호기심에서 또는 재미가 있어서 회자되는 것이 아니다.

‘신화’는 삶을 위해 정교한 포석이다.

신화는 인간으로 하여금 신적인 존재들의 행위를 ‘흉내 내고’ 시공간에 제약된 자신으로부터 탈출하여 엑스타시를 경험하라는 격려다. 인간은 신화를 통해 그들 자신이 신이 되는 것을 상상한다. 자신이 신으로 완벽하게 상상한 또 다른 자신이 지상에서 아옹다옹 사소한 것에 목숨 바쳐 사는 자신을 애절하고 사랑스럽게 관찰한다. 기원전 5세기 비극작가들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재창조하여 그리스 비극을 창조하였다. 신화는 자신의 고귀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자신의 숭고한 삶을 위해 이 순간 최적의 행위를 두는 포석(布石)이다. 여러분은 자신의 신화를 만들기 위해 오늘 어떤 포석을 하겠는가?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오늘의 사진

전국지자체평가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