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사 통해 대리납부 방식
文정부 공약에 국세청도 건의
與도 찬성…기재부 반대 힘들 듯
국세 징수 부담 카드업계는 반발
자영업자 자금난 우려 목소리도
부가가치세 징수 방식이 40년만에 바뀔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부 업종부터 신용카드사를 통해 ‘대리납부’하는 원천징수 방식이 유력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부가세 징수방식을 개선해 복지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대리납부가 도입되면 1977년 부가세 제도가 도입된 후 처음으로 납부 체계가 바뀌는 것이다.
부가세 대리납부란
30일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등에 따르면 정부는 부가세 징수방식을 개편하는 방안을 두고 다각적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부가세 대리납부는 신용카드 결제 단계에서 카드사가 직접 부가세를 원천징수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소비자가 가격의 10%를 사업자에게 내면 사업자가 매출액 10%를 자진 신고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신용카드 회사를 통해 부가세를 징수하게 되면 중단 단계에서 부가세 누수가 사라지게 된다. 마치 회사가 직장인 소득세를 원천징수해 국가에 대신 납부하는 것과 같다. 봉급생활자의 월급이 유리지갑(세금탈루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소득원)이 되는 것처럼 사업자의 소득원도 더 투명해지는 것이다.
사실 부가세는 탈루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세목이다. 지난해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추정한 불성실 납세 규모(택스갭)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의 택스갭 총 26조8,000억원 가운데 부가세가 11조7,0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사업자가 국세청에 매출 신고를 하지 않고 부가세를 내지 않는 사례가 여전히 비일비재하다는 뜻이다. 아예 폭탄업체(부가세 탈루를 목적으로 설치된 회사로 매입세액을 환급받은 다음 폐업하는 회사)를 만들어 부가세를 내지 않는 사업자도 없지 않다.
팽팽한 찬반
이렇게 보면 세금을 거두는 입장에서 대리납부는 꼭 필요한 제도다. 실제로 국세청은 부가세 대리납부를 시작하자고 꾸준히 주장해 왔다. 반면 세제의 칼자루를 쥔 기재부는 계속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 왔다. 기재부가 대리납부를 사실상 반대해 온 가장 큰 이유는 부가세를 원천징수할 경우 사업자 자금 운용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부가세에 해당하는 부분이 먼저 빠져나가면 중소 사업자들은 일시에 자금난에 빠질 수 있다. 단계적으로 대리납부를 도입할 수도 있지만 기재부는 “같은 세목에 다른 징수체계를 운용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세청은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최근 기재부에 다시 부가세 대리납부 도입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대통령 공약에 들어간 내용이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지난해 카드사 대리납부를 주장한 만큼 기재부가 예전처럼 강하게 반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대리납부를 실시하게 되면 세율을 올리지 않고도 세수를 더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각종 복지정책을 강화하고자 하는 새 정부도 재원 마련용으로 이 제도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부가세를 대리징수해야 할 의무를 지닌 카드사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간 회사인 카드사가 국세 징수 비용과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는 것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카드사가 부가세 관련 민원을 뒤집어 쓰게 될 우려도 적잖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민간 인프라를 국세징수용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매우 행정편의적 발상”이라며 “이미 카드 거래는 내역이 공개되는데 대리납부로 탈루율을 낮출 수 있을 지 의문인데다가 결국 카드 결제를 거부하는 사례만 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카드대금 중 부가세를 뺀 금액만 지급되면 자금 운영 상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며 “세수가 더 걷힌다면 부가세율은 낮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권재희 기자 luden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