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공개한 ‘파나마 페이퍼’로 인해 지구촌이 흔들리고 있다. 전ㆍ현직 국가지도자만 12명이 조세회피처를 이용한 정황이 드러났고 각국 정치 지도자의 가족 및 측근들도 페이퍼컴퍼니를 보유했거나 관여한 사실이 공개돼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돈세탁과 탈세 등을 목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국가에는 당장 세무조사 불똥이 번졌고 일부 국가에서는 지도부 사임 요구까지 불거졌다.
국제사회는 이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루 의혹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정치인들의 ‘사금고’로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 로시야은행을 통해 다수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그 중 최소 3개 이상의 기업 수장직을 절친한 친구인 첼리스트 세르게이 롤두긴에게 맡겼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모색 폰세카의 지원으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된 ‘샌들우드 콘티넨털’은 러시아 대외무역은행 키프로스지부로부터 6억5,000만달러를 빌린 것을 비롯해 총 10억달러의 현금을 1%대의 낮은 이자율로 빌렸다. 샌들우드가 모은 현금은 다시 로시야은행을 통해 푸틴 대통령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흘러 들어갔다. 롤두긴은 ICIJ 소속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나는 아직 질문에 답변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아이슬란드는 현직 총리가 과거 페이퍼컴퍼니를 보유했던 것으로 드러나 정치적 혼란에 빠졌다. 시그뮌뒤르 다비드 귄뢰이그손 총리는 2009년까지 부인과 공동으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 ‘윈트리스’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아이슬란드 은행 3곳의 채권 400만달러를 보유하고 있었다. 채권단과 협상해야 할 정부 대표가 채권단의 일원이었던 셈이다.
귄뢰이그손 총리는 “아이슬란드 세금을 피한 적이 없고 해당 기업에 유리한 협상을 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지만,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역외법인의 목적이 탈세일 가능성이 높다며 불신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야권은 이미 조기총선을 진행할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전 총리는 “귄뢰이그손 총리가 모든 의혹을 해명하고 공공의 신뢰를 신속히 회복하지 못한다면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라 말했다.
이밖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아버지인 투자전문가 이언 캐머런은 파나마에서 영국 세금으로부터 자유로운 펀드회사를 운영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매형인 덩자구이(鄧家貴)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서 ‘베스트 이펙트’등 2개 회사를 보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축구연맹(FIFA)에도 불똥이 튀었다. 에우헤니오 피게레도 전 FIFA 부회장이 소유한 페이퍼컴퍼니가 후안 페드로 다미아니 FIFA 윤리위원이 운영하는 로펌과 협력 관계였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FIFA 윤리위원회는 다미아니 위원에 대한 예비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 출신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는 2013년 스페인에서 조세회피를 이유로 수사를 받은 직후 파나마에 ‘메가스타 엔터프라이즈’를 설립하고 또다시 조세회피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배우 청룽(成龍)도 페이퍼컴퍼니 6개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세피난처로 불리는 파나마와 키프로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등에는 조세회피나 돈세탁 목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해외법인의 설립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ICIJ는 “모색 폰세카의 고객들 가운데는 피라미드 사기꾼, 마약 거상, 조세회피범 등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강조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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