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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해준 집밥처럼”…태릉, 파주의 두 영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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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해준 집밥처럼”…태릉, 파주의 두 영양사

입력
2016.07.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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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전사들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두 주역. 조성숙(오른쪽) 태릉선수촌 영양사와 신현경 파주 NFC 영양사. 파주=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태극전사들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두 주역. 조성숙(오른쪽) 태릉선수촌 영양사와 신현경 파주 NFC 영양사. 파주=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조성숙(56) 태릉선수촌 영양사는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영원한 ‘젊은 엄마’로 불린다. 1984년 태릉선수촌에서 근무를 시작해 30년이 넘은 ‘산 증인’이다. 한국 축구의 요람,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는 신현경(43) 영양사가 있다. 2001년 NFC가 문을 열 때 2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대표팀의 입맛을 책임지게 됐다. 신씨는 2005년 당시 청소년대표팀 주무로 근무하던 조준헌 대한축구협회 홍보팀장과 결혼해 축구협회 사상 첫 부부 직원이 된 ‘축구 가족’이기도 하다. 그가 NFC에서 처음 근무할 때는 스포츠영양사의 개념조차 희박하던 시기라 태릉에 있는 조 영양사를 찾아 도움을 청했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 둘은 가끔 식사를 하고 전화로 자주 정보를 공유한다. 태극전사들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두 영양사를 지난 22일 파주 NFC에서 만났다.

요즘 태릉과 진천선수촌을 오가느라 바쁜 조씨는 NFC가 낯설지 않다. 관련 서적도 여러 권 쓰고 박사학위까지 딴 스포츠영양학의 개척자인 그는 NFC에서도 여러 번 강의를 했다. 조씨는 “파주에 오니 차범근, 조광래 감독님 같은 1986 멕시코월드컵 멤버가 생각난다. 월드컵을 앞두고 태릉에서 훈련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대표팀 감독님이 된 뒤 오셔서 나를 보고 ‘아직도 있느냐’며 놀라며 아주 반가워하셨다”고 웃었다.

태릉은 하루 300~400인분의 식사를 제공한다. 단가는 세 끼 합쳐 3만8,000원. 반면 NFC는 30~150명으로 태릉에 비해 소수고 단가는 국가대표 기준 하루 7만5,000원이다. (올림픽대표는 6만원) 차이가 많이 나 보이지만 태릉이 워낙 많은 분량을 준비하기 때문에 실제 단가는 큰 차이가 없다는 설명이다. 두 영양사는 “다른 곳은 음식 단가에 초점을 맞추지만 우리는 선수들이 최상의 상태로 훈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씨는 “선수들이 엄마가 해주는 집밥 같은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태릉과 달리 인원이 많지 않아 매끼 전골 등을 올리는 일품요리 스타일로 꾸민다”고 설명했다. 식단 개발을 위해 신촌, 홍대 등 젊은이의 거리에 나가 메뉴를 연구하기도 한다.

군사문화의 잔재가 남아있던 1980년대 태릉선수촌 식당은 늘 양식 위주로 식단을 짜야 했다. 선수들이 이곳에서 양식 먹는 습관을 키워야 외국에 가서 힘을 쓸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조씨가 보기에 선수들은 매끼 양식을 너무 힘들어 했다. 외국에서 힘을 쓰기 전 한국에서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조씨는 주 메뉴는 양식으로 하되 매운탕, 어묵국수, 짜장 면 등을 적절히 배치해 선수들에게 높은 점수를 땄다. 시간이 흘러 식단을 짤 권리가 조씨에게 주어진 뒤에는 선수, 지도자와 머리를 맞대고 식단을 고민했다.

조씨는 요즘 시대가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 예전에는 특정 선수가 편식을 하거나 체중 감량이 필요한 선수가 몰래 간식을 챙겨먹어 난감하게 한 적이 종종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눈감아 줄 때도 있지만 지나치다 싶으면 지도자에게 살짝 언질도 줬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일이 별로 없다. 선수들이 알아서 철저히 관리하고 지도자도 과학적인 식단에 큰 관심을 보인다. 축구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박지성(35)이나 기성용(27ㆍ스완지시티) 등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은 대표팀이 소집되면 NFC 주방으로 자주 와서 신씨에게 꼼꼼하게 묻고 메모해 돌아가곤 한다.

리우올림픽에서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며 파이팅 포즈를 취한 두 영양사. 파주=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리우올림픽에서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며 파이팅 포즈를 취한 두 영양사. 파주=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신씨는 아찔했던 기억으로 ‘미역국’을 꼽았다.

영양이 풍부해 선수들이 가장 먹기 좋은 음식이지만 ‘미끄러진다’는 속설이 있다. 이를 간과하고 2002년 한ㆍ일월드컵을 앞두고 중요한 친선경기가 있는 날 아침에 미역국을 냈다가 깜짝 놀란 주무의 긴급 호출을 받았다. 다행스럽게 태릉이든 NFC든 음식 때문에 큰 탈이 난 적은 없었다. 신씨는 “선수들 몸값이 얼마냐”며 “일이 생기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날 대형 사고라는 마음으로 늘 긴장한다”고 했다. 축구 선수들은 한 경기 끝나면 보통 몸무게가 3~4kg씩 빠지는데 2002년 월드컵 때는 대표팀이 모일 때마다 신씨 몸무게가 2~3kg씩 빠졌다고 하니 얼마나 부담이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조씨는 1992년 바르셀로나,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대회 때 현지에가서 선수단을 수발했는데 2004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조씨와 조리원 2명 등 단 3명이 선수단 식사를 도맡았다는 것. 현지 식사가 입에 맞지 않아 계속 조씨만 찾는 지도자와 선수를 외면할 수 없어 하루 2~3시간만 자며 음식을 해 먹였다. 나중에는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메달을 땄다 하면 가장 먼저 조리팀에 전화를 걸어 감사해하는 그들을 보며 버텼다. NFC도 지금까지 수많은 국가대표 감독이 거쳐 갔지만 좋은 성적을 내거나 그만 둘 때 그냥 나간 사람이 없다. 꼭 식당을 찾아 작은 선물이라도 안겼다. 특히 최강희(57), 홍명보(47) 감독은 겉으로 무뚝뚝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살갑게 스태프를 챙겼다. NFC는 유소년부터 국가대표까지 각급 선수들이 모두 들어오기 때문에 신씨는 올림픽, 국가대표까지 되는 선수를 보는 것도 큰 보람이다. 신씨는 “2012년 런던올림픽 멤버는 팀 분위기가 최고였다. 식사 끝나면 감독부터 막내 선수까지 늘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식판 뒷정리 술래를 정하던 게 생각난다”며 “이번 올림픽 팀도 그런 팀워크로 4년 전처럼 기적을 썼으면 좋겠다”고 미소 지었다.

27일 전세기로 선수단과 함께 리우로 출국하는 조씨도 덕담을 건넸다.

“한국 선수단 파이팅!! 우리 축구팀도 꼭 리우에서 봐요.”

축구는 조별리그에서 1위를 차지해 준결승에 진출하거나 2위로 조별리그를통과하면 결승까지 가야만 리우에서 경기를 할 수 있다.

파주=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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