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과신하여 제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에 함부로 덤벼드는 사람을 보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한다. 이 속담에 쓰인 ‘하룻강아지’를 난 지 하루밖에 안 된 강아지로 아는 사람이 많다. 아무리 속담일지라도 갓 태어나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강아지가 범한테 대드는 상황은 너무 비현실적이다. 어미 젖은 떼고 나와야 범은 아니더라도 옆집 개한테라도 대들 엄두를 낼 것이 아닌가. “동쪽으로 울바자가 쳐져 있긴 했지만 그 허술한 울바자는 하룻강아지도 넘나들 수 있는 높이였다.”(김주영,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이 용례를 보면, ‘하룻강아지’는 갓 태어난 강아지를 나타내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 살 정도는 돼야 나지막한 울타리라도 넘나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룻강아지’는 본래 한 살짜리 강아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짐승의 나이를 세는 말은 따로 있는데, 한 살을 가리키는 말은 ‘하릅’이다. 그러니까 본래는 ‘하릅강아지’였던 것이 ‘하룻강아지’로 변한 것이다. ‘하릅송아지, 하릅망아지, 하릅비둘기’ 같은 말도 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짐승의 나이를 세는 말은 다음과 같다. 한 살은 ‘하릅/한습’, 두 살은 ‘이듭/두습’, 세 살은 ‘사릅/세습’, 네 살은 ‘나릅’, 다섯 살은 ‘다습’, 여섯 살은 ‘여습’, 일곱 살은 ‘이롭’, 여덟 살은 ‘여듭’, 아홉 살은 ‘구릅/아습’, 열 살은 ‘열릅/담불’이라고 한다. “송아지는 이듭가량 되어 보이는데 목이며, 허리며, 머리며를 오색 천으로 단장하고 왈랑절랑 방울 소리를 울리며 걸어왔다.”(허해룡, 황소 영감)
본래 우리말은 사물의 종류에 따라 세는 말이 다양한 것이 특징인데 점차 그런 말들이 사라져 가는 듯하여 못내 아쉽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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