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 보고받고도 보강조치 안 해
조응천 경질과정서도 소극적 역할
막후 권력 암투 구도서 배제된 양상
배경 둘러싸고 구구한 억측만
정윤회씨와 박지만 EG회장의 충돌 내지는 갈등 구도가 분명한 ‘정윤회 문건 파문’에서 유독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존재감이 미미하다. 김 실장은 ‘비선실세’와 대통령의 친동생이라는 막후 권력의 대결 구도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특히 김 실장은 본인 사퇴설이 담긴 ‘정윤회 동향보고서’를 보고받고도 특별한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배경을 둘러싼 구구한 억측만 낳고 있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올해 1월 박모 경정이 작성한 동향보고서를 김 실장에게 구두 보고 한 것은 문건의 내용 중 상당 부분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 전 비서관은 실제 보고 과정에서 김 실장에게 문건에 담긴 내용의 심각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상적인 감찰 수순이라면 김 실장이 문건에 대한 보다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해 보강 감찰을 지시하거나 이를 확인하는 추가 작업이 이어지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후 취해진 조치는 전혀 딴판이다. 조 전 비서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김 실장이) 질책하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정도로 말씀하신 것 같다”고 보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김 실장이 이재만ㆍ정호성ㆍ안봉근 등 청와대 비서관 3인방에게 “최근 정윤회씨를 만난 적이 있느냐”고 따로 물어보며 확인 작업을 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이 과정에서도 3인방에게 문건의 존재 자체는 알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실장의 조치는 거기서 한발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
박 경정이 보고 직후 좌천성 인사조치를 당하고 조 전 비서관이 4월 경질되는 과정에서도 김 실장의 역할은 상당히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내 밑에 있던 4, 5급 직원들이 각 기관으로 원대복귀 조치를 당하는데 김 실장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해당 기관장들이 말했다고 한다”면서도 “김 실장이 대통령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말을 듣고 실천에 옮긴 것으로 본다”고 증언하고 있다. 조 전 비서관에 따르면 김 실장은 경찰 인사조차도 다른 누군가의 지침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였다는 이야기다.
김 실장은 지난해 12월 정씨 측의 박 회장에 대한 미행 의혹으로 정씨와 박 회장 간 갈등이 표면화 했을 때도 정권 실력자의 모습보다는 ‘고래싸움에 낀 새우’모양새로 그려지고 있다. 당시 박 회장은 미행 건과 관련해 김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거망동 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냈고, 이에 대해 김 실장은 “그럴 리가 없다”는 취지로 해명할 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당시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박 회장은 미행 사실을 조 전 비서관에게 알려 감찰을 지시한 것으로 나타나 있지만 김 실장이 어떻게 개입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청와대는 ‘미행 파동’이나 ‘문건 파동’ 모두 “사실과 동떨어진 풍문 수준이어서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정씨와 박 회장이라는 정권의 막후 실세들이 벌이는 ‘권력투쟁’에 김 실장 스스로 몸을 낮춘 결과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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