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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관료의 기술

입력
2018.08.1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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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티기

이런 더위는 처음이다. 매년 겪는 찜통 더위가 아니다. 114년 초유의 재난이다. 이러다 보니 언론들도 매일 온도 관련 뉴스를 쏟아 낸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적응한 환경에 익숙해 다른 환경이 오면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 시민들이 35~40℃에 육박하는 더위에 할 수 있는 것은 선풍기와 에어컨을 아껴 쓰는 것 밖에 없다. 하지만 시원하게 여름을 보내려 해도 전기누진세 걱정에 엄두도 나지 않는다.

온열 사망자가 30명을 넘겨도 관료들의 입에서는 전기세 인하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한 신문사 도쿄특파원이 국민 감정에 불을 질렀다. 지난달 24일 일본 경제산업상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의 폭염 관련 기자회견 내용에 관한 보도를 한 것이다. 세코 장관은 “지금은 국민들에게 절전을 요청할 상황이 아니다. 에어컨을 충분히 틀어 열사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중요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뜩이나 국민들은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속상한데 일본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급기야 8월 1일에는 홍천 기온이 41℃, 서울이 39.6℃까지 올랐는데도 관계당국은 계속 버티기로 일관했다. 휴가에서 돌아온 대통령이 진화에 나섰다. 7, 8월 전기요금 누진율을 낮추라는 지시를 내렸고 다음날 관료들은 일사천리로 전기요금 인하를 발표했다.

2. 조르기

최저임금 인상이 원인인가. 확실히 규명된 것은 없다. 거리엔 활력이 없다. 중산층의 아랫부분을 담당하는 자영업자들이 하나 둘 가게를 폐업한다. 한 경제지가 ‘월 1,500만원 손실, 버티기 힘들어··· 가게 팔리기만 기다려요’라는 제목의 아픈 기사를 6일 올렸다. 경기 불황에 2년 연속 큰 폭으로 오른 최저임금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폐업으로 내몰린다. 3명의 기자가 종로ㆍ신촌ㆍ숙대입구역 상권에 가 보니 저녁시간에 불 꺼진 매장이 수두룩하고 임대딱지를 붙인 상점도 증가한다고 전했다.

최저임금 인상, 저녁이 있는 삶, 근로시간 단축, 대기업 투자촉진, 청년 일자리 창출 모두 좋은 정책이다. 하지만 한국경제는 규모가 너무 커 정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속도와 타이밍에 취약한 정책에 자영업 폐업이 속출하고 이제는 공실률 문제가 떠올랐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2분기 서울 종로의 공실률이 21.4%, 광주 금남로ㆍ충장로 34.7%, 대전 원도심 26.6%로 영남 일부 지역을 빼고는 심각하다. 지나치게 조르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이제 조르기를 멈추고 “부가가치세 한시 인하”같은 중산층 살리기 정책도 검토하기 바란다.

3. 빼앗기

예전 도시에 많았던 서예, 꽃꽂이, 에어로빅, 각종 댄스, 컴퓨터 학원들이 하나 둘 사라져 이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공공이란 이름으로 주민자치센터, 문화센터에서 싸고 쉽게 교육을 하니 영세 학원부터 하나 둘 문을 닫는다. 원장이 터를 잡고 가르치고 소통하고 문화공간 역할도 했다. 수강생 입장에서도 배우고 익히고 연습하고 훈련해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는 싸고 건조한 교육만 존재한다. 한번 사라진 학원은 돌아오지 않았다.

귀농산촌 부분에서 최고봉은 수목원이나 정원이다. 수목원은 100억 원 이상 투자되는 사회사업이고 정원도 몇십억 원 투자된다. 하지만 유명 수목원이나 정원도 문을 닫거나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정부가 수천억 원 들여 백두대간 수목원을 건설하고 주요 거점에 공공정원, 산림복지 시설을 건설하니 입장료 수입이 전부인 영세 수목원부터 문을 닫는다.

관료는 물이 아니라 물고기다. 물고기는 물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민간이 잘 되게 돕고 국민을 위해 헌신과 희생을 하는 것이 관료의 덕목이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은 정치인만으로 충분하다. 서민과 같이 울고, 내리는 비에 함께 젖는 관료가 그립다.

유상오 한국귀농귀촌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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