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기획사는 얼굴 알릴 기회지만
연습생들 치열한 열정 담보로
과도한 무한경쟁… 헬조선 현실인 듯
몰카 설정 등 접근 방식도 문제
노래를 듣기만 해도 이렇게 숨이 가쁜데 101명의 소녀들은 그럴수록 목소리를 높인다. 그것도 격렬한 춤을 동반한 채 소녀다운 상큼한 미소를 잃지 않고서. ‘Pick me Pick me Pick me up(나를 뽑아줘)’. 고작 3분 47초짜리 한 곡에 Pick me란 가사가 무려 50차례나 등장한다. 간절함의 극치다.
지난 1월 첫 방송된 음악 전문 케이블채널 Mnet의 ‘프로듀스101’은 40여 개 연예기획사 소속 및 개인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한 걸그룹 서바이벌이다. 이 프로그램의 주제가 격인 ‘Pick me’의 의미처럼 10대에서 20대 초반의 소녀들은 최종 11인의 걸그룹 멤버로 선택되기 위해 A(최상)부터 F(낙제)란 노골적인 등급을 감수한다. 걸그룹의 마스코트나 다름 없는 ‘센터’가 되기 위해 살벌한 생존경쟁을 치른다.
3%대 후반의 비교적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까지 잡은 이 프로그램에서 무한경쟁과 가혹한 줄 세우기로 얼룩진 ‘헬조선’ 현실을 발견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프로듀스101’을 집중해부했다.
라제기 기자(라)= 욕하면서 보게 되는 막장드라마의 오디션 버전이랄까. 서바이벌이란 특성상 비인간적이고 자극적인 측면이 드러날 수밖에 없지만 정말 심하더라.
양승준 기자(양)=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다. 인성을 평가한다면서 제작진이 바닥에 콜라를 엎질러 놓고 참가자들의 행동을 몰래카메라로 시험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보는 내내 불쾌했다.
강은영 기자(강)= MC 장근석이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란 말을 할 때마다 불편하다. 특히 ‘당신의 소녀’란 부분은 참가자들을 마치 소유물처럼 대하는 듯해 선정적으로 다가온다.
조아름 기자(조)= 프로그램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참가자들의 열정에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연예인 지망생 하면 겉멋만 들었다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은데 실력과 노력이 대단하더라. 그럼에도 몇몇 자극적인 설정은 문제가 있다.
라= 처음부터 우열을 나누고 줄 세우기를 한다. ‘헬조선’의 축소판을 보는 기분이다. 한 트레이너가 연습생들에게 ‘목숨 걸고 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우리가 학창시절 들었던 ‘죽어라고 해야 좋은 대학 가고 취업한다’는 말처럼 들려 씁쓸하더라.
조= 물론 실력에 따른 서열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A부터 F까지 등급이 다소 노골적이긴 하지만 모든 교육 과정에서 등급별 차등 수업은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등급 그 자체가 아닌 더 높은 등급으로 가기 위한 연습생들의 노력을 더 보여줬어야 했다.
강= 평가의 기준이 아예 없다는 게 문제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도 1등부터 줄 세운다. 하지만 다수의 심사위원들이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해 참가자들에게 문제점과 보완점을 설명해 준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 평가를 맡은 트레이너들은 ‘좋네’ ‘왜 이렇게 못해’가 끝이다.
양= 다분히 주관적인 인상비평만 늘어놓는 건 사실이다.
강= 대형 기획사와 소규모 기획사 출신이란 애초부터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 이미 대형 기획사 연습생들은 팬덤이 있을 정도다. 이들은 표정부터 자신감에 차 있고 발언권도 많다. 화면에 많이 잡히는 건 당연하다.
라= 이미 출신성분에 따라 계급화된 셈이다. 대형 기획사 출신은 이미 100m 앞에서 출발하는 느낌이다. 오디션 형식을 갖췄지만 공정 경쟁이라고 보긴 힘들다.
강= 실력 경쟁을 하기도 전에 힘 없는 기획사 연습생들은 주눅들고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양= 사실 소규모 기획사들로서는 연습생들의 얼굴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오히려 SM이나 YG엔터테인먼트 같은 회사 이름이 곧 브랜드인 기획사는 연습생을 안 내보냈다. 방송이 절박한 기획사들과 이 절박함을 이용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 Mnet의 이해관계가 교묘하게 맞아떨어진 거다.
라= 이 이해관계의 피해가 연습생에게 간다는 게 문제다. 이들이 무보수라는 게 말이 되나? 방송 출연 자체가 감지덕지니 출연료를 안 줘도 된다는 이상한 논리다.
조= 기획사 연습생들은 갑을 관계에서 을도 아닌 병, 정이나 마찬가지다. 출연료도 0이지만 ‘열정페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발언권도 0이다. 방송국 방침에 토를 달 수도 없을 거다.
양= 국내 스타 양성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획사가 마치 부모처럼 연습생을 키우니 이들이 가진 권리를 대신 행사할 수 있다고 여긴다.
조= 어릴 때부터 숙식을 제공받으며 연습생 시절을 보낸다. 기획사가 개인의 인생에 너무 깊숙하게 관여하는 문화 탓이 크다.
라= 전통적인 군사부일체 영향이다. 외국처럼 기획사와의 관계를 단순한 계약관계로 보지 않고 나를 뽑아준 은혜로 여기다 보니 오히려 나중에는 분쟁의 소지도 많아질 수 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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