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유일의 안보협의체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의장성명을 채택하지 못한 채 26일 폐막했다. 그만큼 국가 간 쟁점에 대한 이견조율이 어려웠다는 얘기다. 중국과 필리핀 등이 얽혀 있는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중국ㆍ러시아가 강력 반발하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문제 등이 의장성명 채택의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폐막 후에도 회원국 간의 사후 조율이 계속되고 있지만, 의장성명 채택은 쉽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역내 안보외교 무대에서 우리 외교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4차 핵실험과 숫자를 헤아리기도 어려운 미사일 발사 시험 등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도 불구하고 대북 제재 등 북핵ㆍ미사일 억제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마땅한 외교 성과를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이 “미국의 끝이 없는 핵 위협에는 부득불 핵 억제력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우리의 핵 억제력은 자기 사명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하는 등 핵 개발을 정당화하고 핵 능력을 과시하는 무대로 삼으려는 모습이 부각됐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을 둘러싼 주변국과의 갈등으로 우리의 최우선 현안인 북핵 문제가 뒷전으로 밀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왕이 외교부장이 한중 외교장관회담 모두 발언에서 핵심 의제인 북핵 문제는 거론하지도 않은 채 한중 관계의 신뢰 손상을 거론하며 노골적 불만을 표시했다.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6자 당사국 간 균열을 치고 들어온 북한은 중국과 밀착해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려는 상황이었으니, 우리 정부의 외교 역량과 대외 리스크 관리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핵심 관련국인 중국의 완고한 자국 중심적 자세가 커다란 원인이기는 했다. 중국의 안보 이익을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한미 정부의 거듭된 다짐과 설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불신을 드러내며 공공연하게 힘의 외교를 펼쳤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이 부장이 보여 준 불만 섞인 태도는 외교와 거리가 먼 것은 물론이고 오만하기까지 해서, 적잖은 우리 국민에게 불쾌감을 안겼다.
북한의 도발에 따른 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은 본질적으로 북핵ㆍ미사일 문제의 진전 없이 해결될 성격이 아니다. 따라서 중국과의 지속적 대화를 통해 상호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수밖에 없다. 한중 갈등은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ARF는 대중 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상황 관리에 한치의 빈틈도 생기지 않도록, 외교전략을 재점검해야 함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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