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자택서 압수 복원 성공
檢 수사 개입 의혹 뒷받침 물증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직권남용 혐의 등을 수사하고 있는 박영수(65) 특별검사팀이 김 전 실장의 휴대폰에서 현직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간부의 연락처를 다수 확인했다. 김 전 실장이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검찰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다. 특검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탄압했다는 혐의와 함께, 김 전 실장이 검찰 수사에 개입하며 직권을 남용했는지 여부도 조사할 방침이다.
3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특검팀은 최근 김 전 실장 휴대폰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현직 검찰 고위간부 K씨 등 다수의 검사장급 이상 검사들의 연락처가 저장돼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검팀은 지난달 27일 김 전 실장의 자택 압수수색을 통해 휴대폰을 압수했다. 압수 당시 휴대폰 연락처는 모두 삭제된 상태였지만, 특검팀은 연락처를 포함해 삭제된 내용을 일부 복원했다. 압수수색 당시 이규철 특검보는 압수한 휴대폰이 실제 업무에 사용된 것이냐는 질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휴대폰에 연락처가 저장된 검사들이 김 전 실장과 개인적 친분관계가 아닌 ‘현직’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김 전 실장이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지낸 검사 출신이기는 하지만, 이들의 연수원 기수가 주로 17기에서 20기 사이로 30년 정도 차이가 나는 만큼 함께 근무하면서 교분을 쌓은 관계라고 보기는 어렵다. 김 전 실장이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지냈을 때 이들은 사법연수원을 막 수료해 검사로서 첫 발을 뗄 시점이었다. 업무상으로도 봐도, 대통령 비서실장이 현직 검사장들과 직접 연락할 일은 없다.
특검팀은 김 전 실장이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검찰 수사내용을 파악하거나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확보한 연락처라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2014년 말 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건’ 당시에도 김 전 실장이 김진태 당시 검찰총장과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했다는 증언이 있다.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김영한 비망록)에도 검찰의 압수수색 이틀 전인 2014년 12월 1일 ‘령(대통령) 뜻 총장 전달-속전속결, 투트랙’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등 김 전 실장이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영한 비망록에 ‘검찰’과 ‘지도’라는 표현이 수 차례 등장하는 점에 비춰, 김 전 실장이 이 외에도 여러 수사에 검찰 고위간부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이어지고 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검찰 조직은 옷을 벗고서도 기수에 따르는 상명하복 문화가 있다”며 “김 전 실장이 검찰 간부들의 연락처를 확보해 놓고 검찰을 관리하거나 통제를 해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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