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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 (21)호텔 디너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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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 (21)호텔 디너쇼

입력
2002.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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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서울 힐튼호텔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데뷔 후 처음으로 호텔 디너쇼를 가진 곳도 그곳이었고, 내로라 하는 정치 거물과 기업인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처음 만난 곳도 그곳이었다.

1988년 디너쇼 때는 당시 박준규(朴浚圭) 민정당 대표위원, 김대중(金大中) 평민당 총재, 김영삼(金泳三) 민주당 총재가 한 테이블에 앉기도 했다.

그러나 출발부터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힐튼호텔에 디너쇼를 제의한 것은 1984년이 처음이었는데 그 때는 망신만 당했다.

“우리 호텔에서 코미디언이 디너쇼를 하겠다구? 호텔이 무슨 장급 여관인 줄 아나?”라는 것이 담당자의 말이었다.

힐튼호텔은 그 해 외국 유명 오페라가수를 초청해 디너쇼를 열었고 결국 2,000석 중 1,000석만 채우고 말았다.

1985년이 돼서야 연이 닿았다. 그 해 겨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고대 교우회의 밤’ 행사에 내가 게스트로 참석한 것이다.

나는 20분 동안 혼자서 토크쇼를 열심히 진행했고, 점잖은 파티 분위기에 지쳐있던 참석자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고려대 교우 자격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던 정희자(鄭禧子) 힐튼호텔 회장이 “내년에 반드시 우리 호텔에서 디너쇼를 열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을 정도이다.

이렇게 해서 1986년 12월12일 힐튼호텔에서 첫 디너쇼가 열렸다. ‘외로운 노인 돕기 이주일 자선공연’이라는 거창한 제목도 붙었다.

나는 다짐했다. ‘이러한 VIP 앞에서 음담패설을 했다가는 집안 망신 당하겠구나. 수준 있는 코미디를 선보여야겠다.’ 그리고는 목에 힘을 주고 쇼를 시작했다.

“사실 코미디는 저질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외국의 유명한 빌 코스비를 보십시오. 누가 그를 저질 코미디언이라고 하겠습니까….”

결과는 참패였다. “코미디의 황제면 다냐? 웃겨야 황제이지! 빌 코스비? 진짜 웃기고 있네”라는 비아냥대는 소리도 들렸다.

“이거, 완전히 사기 당했군”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품위 있는 사람도 웃을 때는 배꼽 빠지도록 웃고 싶다는 것을 그때만 해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디너쇼가 끝나자마자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정 회장을 찾아가 백배사죄해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다시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다.

다음해 12월13일 같은 장소에서 다시 열린 디너쇼. 그때는 6ㆍ29선언 이후 정치 코미디가 유행하던 때라 나도 꽤 노골적인 정치풍자로 무대를 휘젓고 다녔다.

물론 지난해의 실패를 교훈 삼아 야한 음담패설도 빼놓지 않았다. 관객은 땀을 뻘뻘 흘릴 만큼 웃어댔고 급기야 커튼 콜까지 나왔다.

그날 깨달은 것이 ‘정치와 섹스 이야기처럼 짜릿한 소재는 없다’는 것이었다.

디너쇼를 끝내고 쉬고 있는데 이번에는 김우중(金宇中) 당시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전갈이 왔다.

“디너쇼에 대해 할 말이 있으니 아래층으로 내려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부인인 정 회장과 함께 내 디너쇼를 지켜본 모양이었다. 김 회장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이뤄졌다.

내게 어떤 말을 할까…. 반응이 궁금해 가슴을 졸이고 있는 순간, 김 회장이 큰 소리로 말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쇼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한 줄 몰랐어요. 마치 수소폭탄이 훑고 지나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 평생 이처럼 여한 없이 웃기는 처음이에요.”

그날 밤 김 회장의 웃음소리는 진짜 그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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