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종종 분열된 자아를 서슴없이 드러냈다. 그는 스스로를 ‘끈에 매달린 종이인형’이라 비관하며 연가곡집 ‘여섯 개의 로망스’에 다음과 같은 가사를 과감히 붙였다. “권력에 의해 혀가 묶여버린 예술, 돌팔이 의사와 같던 통제, 단순함이라 오해되는 단순한 진실” 암호처럼 숨겨놓은 저항의 음표와 메세지를 통해 그는 스탈린의 공포정치를 비꼬아 힐난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작곡가 협회의 연단에 등장한 쇼스타코비치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자아비판을 무력하게 받아들이는 동시에 동료 작곡가들을 이렇게 선동하는 것이다. “모든 비판에 대해 깊이 감사 드린다. 전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모든 지시는 소련 예술가들에게 부모의 준엄한 훈계와 다름없다. 작업하라. 소비에트 국민의 가슴에 닿게 될 새로운 작품을 위해. 근면하고 창조적이며 기쁘게 작업하라!”
예술가와 독재자의 관계를 살피다 보면 위태로운 줄타기를 관람하듯 초조하고 답답한 심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쇼스타코비치와 스탈린의 관계가 특히 그러하다. 어느 땐 당의 지시에 따라 선전용 작품을 작곡한 ‘체제순응적’ 음악가였고, 다른 한편으론 반(反)스탈린 메시지를 악보에 숨겨놓은 ‘저항’의 작곡가이기도 했던 이 작곡가의 이중적 처세를 갈지(之)자 행보라 덮어놓고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영웅도 배신자도 아니었다. 다만 ‘기울어진 무대에서 활동한 완벽하지 못한 배우’여서 내면의 의지와 외부의 강제 사이의 충돌을 치열히 삼키고 내뱉은 고뇌하는 예술가였다.
독재가 목을 죄여오기 직전, 러시아 음악계는 무자비한 검열의 공포를 차마 예감하지 못했었다. 외려 음악적으로 모든 것이 용인된 너그러운 시기였다. 이렇게 중구난방의 음악적 실험이 만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예술분과의 수장이었던 루나차르스키라는 관료 덕택이었다. 그는 철학자이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망한 비평가였고, 스크랴빈 음악의 신비주의에 매혹되기도 했던 전형적인 지식인으로, 정치적 처세에 일희일비하는 관료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당시 음악계는 나라 밖 음악적 이슈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당대 최첨단의 음악적 실험을 구가했던 범유럽의 음악가들이 앞 다투어 시베리아 대륙을 방문했다. 심지어 ‘초콜릿처럼 달짝지근한’ 재즈 선율에도 소비에트 아방가르드 일파는 뜨겁게 환호했다. 이처럼 음악계에 만연한 활기 넘치는 음악적 사건 덕택에 쇼스타코비치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국외의 다양한 음악적 조류들을 체득할 수 있었다. 반(反)감상주의, 객관주의적 음악어법은 그의 음악에 날카로운 목관, 퉁명스런 금관, 쟁글거리는 실로폰 음색을 덧입히며 윤기있는 현악음색을 관통시켰다.
전위적 아방가르드.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코’는 모든 음악어법이 너그러이 용인되었던 당대의 시대상을 십분 활용했던 당돌한 작품이었다. 타악기는 느닷없이 끼어들어 청중으로 하여금 음악의 몰입을 방해하는 ‘소외효과’를 야기 시킨다. 트럼본은 슬라이드 주법으로 고음과 저음사이를 쉴새 없이 곡예하는가 하면, 고음역의 현악기들은 파편이상의 선율을 연주하지 않는다. 고골리의 동명소설을 극화한 이 그로테스크한 오페라는 곧 ‘형식주의’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서구의 아방가르드나 모더니즘에 지나치게 의존한데다, ‘퇴폐적 부르주아 예술의 낡은 미학적 쓰레기’를 뒤집어 쓰고 있다는 혹평이 쏟아진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작곡가 임무의 선언’을 발표하면서 이 비난에 강단 있게 반항했다. 음악에 선율성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것은 작곡가들에게 파괴적 영향을 끼친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그러나 곧 스탈린이 권좌에 오르면서 소비에트의 음악계를 풍미했던 전위적 아방가르드는 암울하게 퇴장하고 만다. 급진적인 스타일을 혐오했던 스탈린은 일체의 실험주의를 배격하면서 예술이란 그저 ‘민중의 삶을 사실주의적이면서도 영웅적으로 묘사하면서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달성에 일조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히 펼쳤다. 이로써 예술가들을 공포에 떨게 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비극의 시대가 예고되었다.
날이 추워서인가, 시대가 서늘해서인가. 독재자에 맞섰던 한 작곡가의 인생에 자꾸만 마음이 간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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