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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문학사적 충격 준 표절사건, 대충 넘길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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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문학사적 충격 준 표절사건, 대충 넘길 일 아니다

입력
2015.06.1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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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이 더는 덮어두고 넘어가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문제로 비화했다. 제기된 의혹에 대한 신씨 본인과 문제작품 출판사인 창비의 안이한 대응이 오히려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신씨는 자신의 단편 ‘전설’(1996년) 중의 한 단락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1960년)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가볍게 외면했다. 그제 창비에 보낸 세 줄짜리 입장문에서 “해당 작품(‘우국’)을 알지 못한다. 진실 여부와 상관 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고만 밝혔다.

신씨의 무책임한 태도에 더해, 문단과 독자들의 반감을 증폭시킨 건 우리 문단에서 리얼리즘문학의 본산으로 꼽혀온 창비의 수긍하기 어려운 신씨 감싸기다. 창비는 표절 의혹 부분이 “선남선녀가 신혼 때 성애에 눈뜨는 장면 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데다,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며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애써 표절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대다수 문인과 독자들은 최고 작가로 꼽혀온 신씨가 어떻게 ‘진실 여부와 상관 없이 대응 않겠다’는 식으로 독자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고, 전통의 창비가 어떻게 이런 두서 없는 입장을 낼 수 있느냐며 분개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 할복 자살한 극우 작가지만 강렬하고 감각적인 묘사는 가히 전범이 될 만한 수준이다. 이번에 표절 대목으로 꼽힌 부분 중에서도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워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같은 부분은 ‘흙먼지’와 ‘애타는 성애에의 갈망’을 독창적 연상으로 대조시킨 매우 개성적인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신씨의 표절 의혹 대목엔 그런 이미지가 마치 복제된 듯 나타나는데다, ‘젊은 육체’ ‘밤은 격렬했다’ ‘기쁨을 아는 몸’ 같은 표현까지 동일해 매우 신중한 문인들조차도 표절 가능성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단편소설이라고 해도 보통 200자 원고지 100장을 넘나드는 수많은 문장과 표현들의 유기물이다. 그 중 한 대목을 문제 삼아 전체를 표절로 몰아붙이는 건 지나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신씨가 이번 일 외에 이미 1999년부터 적잖은 표절시비에 휘말려왔다고 해도, 그의 작가성 전반을 섣불리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신씨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려온 순수문학 작가로서 자신의 창작 본령에 대한 시비가 불거진 이상 수많은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보다 진지한 설명에 나서는 게 옳다. 창비 역시 겸허한 반성을 토대로 사태수습에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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