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제대혈 채취할 때 산모 방치 위험”

알림

“제대혈 채취할 때 산모 방치 위험”

입력
2017.02.07 05:00
0 0
제대혈 사용가능 여부, 이식가능 범위, 보관자 관리 등 제대혈 관리에 문제가 심각하다. 메디플라워산부인과 제공
제대혈 사용가능 여부, 이식가능 범위, 보관자 관리 등 제대혈 관리에 문제가 심각하다. 메디플라워산부인과 제공

제대혈은 임신부가 아이를 낳을 때 분리된 탯줄과 태반에 있는 혈액으로,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 혈액과 면역체계를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다량 들어 있다. 백혈병 소아암 선천성면역결핍증 등 난치병 치료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중한 질환에 걸릴 때 치료에 도움 받으려고 분만 직후 자녀의 제대혈을 제대혈은행(제대혈보관업체)에 맡기는 이가 적지 않다. 하지만 제대혈은행에 보관 중인 제대혈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제대혈은행에 보관 중인 제대혈은 세포 수가 8억 개 이상이고, 세포생존율도 80%가 돼야 한다. 하지만 의학연구 등을 위해 기증한 ‘기증제대혈’과 달리 가족 건강을 위해 제대혈은행에 맡겨진 ‘가족제대혈’은 세포 수가 적어 질환치료에 효용성이 별로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영경 한림대성심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사람에 따라 채취되는 제대혈 세포 수가 차이 날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3억 개 이상은 돼야 질환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대혈 세포 부족하고, 폐기도 제대로 안돼

하지만 제대혈은행을 이용하는 사람 가운데 현재 자신이 보관한 제대혈 세포 수가 얼마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이가 드물다. 10년 전 출산할 때 제대혈은행에 제대혈을 보관한 B(48)씨는 “아이 건강을 위해 제대혈은행에 가입했지만 제대혈 세포 수가 얼마인지 설명을 들은 적 없다”며 “제대혈만 보관하면 병을 치료할 것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세포 수가 많지 않은 제대혈을 보관하다 보니 제대혈은행이 학문적으로 기증을 받은 제대혈을 가족제대혈에 섞어 병 치료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 제대혈은행 관계자는 “제대혈 세포 수가 법적 요건인 8억 개가 되지 않는 것이 많아 기증제대혈을 섞어 병 치료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특히 어른이나 청소년의 경우 제대혈 세포수가 부족하면 병 치료 성공률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제대혈은행에 맡긴 제대혈의 세포 수, 세포생존율 등 정보를 가입자가 정확히 알아야 하는 이유다.

제대혈을 사용할 수 있는 범위도 구분돼야 한다. 확률적으로 제대혈 보관자의 형제자매, 부모까지는 제대혈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조부모, 외조부모 등 친인척은 조직적합성 항원이 허용범위 내에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지만 가입자들은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제대혈 폐기 관리도 보완한 점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제대혈 보관기간은 15~100년이다. 제대혈 보관기관이 길다 보니 보관자 신상 변화, 연락처 변경 등으로 계약기간이 끝나 폐기해야 할 제대혈이 방치되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계약기간이 끝나 제대혈을 폐기하려면 보관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한 제대혈은행 관계자는 “처음 1, 2년 정도는 고객에게 연락하지만 5년 정도 지나면 거의 연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산모 방치한 채 제대혈 채취”

제대혈 채취 관리도 보완이 시급하다. 제대혈 채취는 분만 직후 이뤄진다. 제대혈 채취는 의사나 의사 감독 하에 간호사 등이 채취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제대혈은 산모와 신생아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방법으로 채취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자연분만보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을 때 출혈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제대혈 채취에 나서다 산모의 안전을 방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신생아 10명 중 4명 가까이 제왕절개하는 우리 분만시스템으로 인해 제대혈 보관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환욱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학술이사(메디플라워산부인과 원장)는 “탯줄을 자르지 않고 기다리면 자연히 탯줄로 아이에게 필요한 혈액이 전달된다”며 “하지만 제왕절개로 분만하면 탯줄을 빨리 잘라내 아이와 엄마를 분리하고, 탯줄과 태반에 남은 혈액을 채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제대혈을 채취하면 의사가 채취 비용을 받을 수 있기에 제대혈 채취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지적도 있다. 대형 분만전문병원에서 일했던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제대혈을 채취하면 제대혈은행에서 채취비용으로 10만~20만원을 받기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 제대혈은행 관계자는 “제대혈 채취의 95%가 분만전문병원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이들 병원에서 제대혈 채취 비용을 더 올려달라고 하고 있다”고 했다.

정 이사는 “제대혈은 제왕절개 분만 문화의 부산물”이라며 “아이의 미래 건강을 위해 산모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제대혈을 채취해야 하는지, 제대혈을 통한 치료효과 검증 등 제대혈 보관문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