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인터뷰 후 '황교익 발언 논란' 유감
맥락을 무시하는 일부 언론 선정주의
유명인 맹신하는 팬덤 탓에 빗나간 논쟁
“벼룩도 낯짝이 있다. 어쩔 수 없이 타언론사 기사로 낚시기사를 제작하더라도 왜곡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응? 기레기들아.” 지난 2일 새벽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53)이 자기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입니다. 지난달 30일 출고된 한국일보닷컴 인터뷰 콘텐츠(☞ 기사 보기)를 인용한 몇몇 인터넷판 기사들이 그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나 짐작됩니다.
발췌된 곳은 다음입니다. “백종원씨는 전형적 외식 사업가다. 그가 보여주는 음식은 모두 외식 업소 레시피를 따른 것이다. 먹을 만한 음식 만드는 건 쉽다. 백종원 식당 음식은 다 그 정도다. 맛있는 음식은 아니다. 적당한 단맛과 적당한 짠맛, 이 두 개의 밸런스만 맞으면 인간은 맛있다 착각한다. 싸구려 식재료로 맛낼 수 있는 방법을 외식업체들은 다 안다.”
즉각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백종원(49)을 대상으로 한 황교익의 발언이 타당하냐를 두고서입니다. 정확히 계량해 보진 않았지만 두드러진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프레임은 보였습니다. 먹고 살 만한데도 어떤 사명감으로 집에서 해먹을 만한 음식의 간단 조리법을 전파하고 있는 ‘서민들의 친구’ 백종원이 젠체하는 전문가의 트집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단 겁니다.
미리 결론을 말하면 이런 류의 공방은 의미 없고 소모적이란 게 기자의 생각입니다. 이런 공방이 유감스러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인물 간 승부(勝負)는 흥미로운 소재입니다. 인물에 대한 호감도를 기준 삼으면 편 가르기도 간단합니다. 문제는 초점이 빗나갈 경우 대체 좋은 음식이 뭔가, 음식에서 재료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재료 개성은 살려야 하나 등 정작 토론돼야 할 쟁점이 죽는다는 겁니다.
이성의 작동을 방해하는 요소 중 강력한 건, 이른바 스타를 둘러싸고 형성되는 팬덤입니다. 이번 논쟁을 빗나가게 만든 것도 ‘백주부(백종원 별명) 팬덤’이었습니다. 혜성처럼 등장한 중년 요리 선생에 대한 팬들의 지식이란 게 피상적 이미지 수준일 텐데도, 팬들에게 백주부는 가히 종교라 할만 합니다. 하지만 이미지 뒤엔 정반대 실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 백종원이 그렇단 게 아닙니다. 자기 요리가 맛있거나 건강에 이로운 음식이라고 그는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황교익이 겨냥한 건 그의 퍼포먼스입니다. 가령 저 ‘슈가보이’(역시 백종원 별명)가 대중 구미에 맞춰 해금(解禁)해준 설탕 과용이 그들의 몸을 해치거나 미각을 무디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겁니다. 맹신은 시각의 균형을 깨뜨립니다.
아이돌한텐 너그러운 팬덤이 우상을 공격하는 이에겐 가혹합니다. 비판의 내용보다 비판자의 인신이나 태도를 조준해 반격하기 십상입니다. 1일 미디어스 칼럼(☞ 기사 보기)에 등장하는 표현(“식재료 용도를 완벽히 알고 요리도 할 수 있는 백종원이 황교익보다 못할까”)이 단적입니다. 모든 비판이 열등감이나 오만한 엘리트주의의 발로(發露)는 아닐 터입니다.
팬덤이 과열된 건 맥락을 무시하고 자극적 내용만 골라 쓰는 언론의 선정주의 탓이 큽니다. 황교익을 딜레탕트(취미 삼아 예술ㆍ학문을 하는 사람)로 간주한 2일 이데일리 칼럼(☞ 기사 보기) 같은 오독이 나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미식을 부르주아 취미로 여기는 식도락가를 외려 황교익은 비꼬며 악식도 가리지 말라고 합니다. 인터뷰에 다 나오는 내용입니다.
기자가 만난 황교익은 나름대로 논평 기준이 명확한 평론가였습니다. 선명하게 주장하면서도 최대한 일관된 잣대로 객관성을 담보하려 했습니다. 식재료의 특성이 잘 반영돼 있어야 제대로 된 요리고 맛있는 음식이란 게 그의 소신입니다. 이런 시각에서라면 백종원 레시피가 높은 점수를 얻지 못하는 게 당연합니다. 강한 양념으로 식재료의 개성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미각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요즘 대중의 감각이 예전만 못한 탓이라고 황교익은 백종원 신드롬을 설명합니다. 다분히 계몽주의자 같은 시각입니다. 하지만 사리에 맞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가 드러낸 지식인으로서의 의무감은 인터뷰 전반에 녹아 있습니다. 일견 싸가지 없는 진보 지식인의 태도가 권력 이면을 들추는 비판마저 무가치하게 하는 건 아닙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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