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선사 접대비 6,000만원, 안전교육 54만원
기업 어렵다면서도 접대비 지출은 최고치
김영란법 고칠 생각 말고 그대로 시행해야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청해진해운은 사고 전해인 2013년 접대비로 6,000여만원을 썼다. 반면 안전교육 등 선원들의 교육비로 지출한 돈은 불과 54만원이다. 세월호특조위 청문회에서 접대비 중 일부가 해경 향응에 사용된 사실이 드러났다. 나머지는 인허가와 화물과적 점검 등을 담당하는 감독기관에 쓰였을 개연성이 크다. 만약 접대비를 줄여 선장과 선원들의 안전교육비로 사용했더라면 사고 발생 가능성은 훨씬 낮아졌을 것이다.
기업들이 지출한 접대비 액수를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법인 59만1,694곳이 카드로 결제한 접대비는 10조원이다. 하루에 270억원이 접대비로 나간 셈이다. 접대가 일상화된 국가의 추한 모습이다. 접대비 가운데 룸살롱이나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에서 쓴 비중이 가장 높아 1조원이 넘었다. 매일 수십억 원이 고급 술집에서 물 쓰듯 나간 것이다.
경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을 치면서도 접대비는 지난 8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요즘도 룸살롱과 고급음식점은 사람들로 넘친다. 비즈니스가 부진할수록 기업들이 더욱 로비와 민원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룸살롱은 ‘비싼 술을 마시는 공간’ 이상의 함의가 있다. 비밀 유지가 용이해 청탁과 뒷거래의 온상이 되고 있다. 강준만 교수는 저서 ‘룸살롱공화국’에서 “은밀한 접대는 칸막이를 필요로 하며 룸살롱의 가장 큰 장점은 그런 칸막이를 우아하게 구현했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대기업은 수십 명의 임직원에게 대관 업무를 맡긴다. 국회와 정부부처를 비롯해 검찰과 경찰, 국세청 등 사정기관과 접촉해 로비를 하거나 정보수집을 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말이 좋아 대관 업무지 실은 술과 식사, 골프접대를 한다. 기업체 대관 담당이나 홍보 담당 임원들은 평일에는 저녁, 주말에는 골프 일정으로 꽉 차 있다.
기업들의 접대 대상에는 기자들도 포함된다. 홍보와 취재 목적의 편의 제공 차원이지만 정도를 넘어서는 향응도 적지 않다. 김영란법은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국민의 시각에서 기자는 공직자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한 묶음으로 인식되는 게 사실이다. “언론계에 부정청탁이나 금품 등 수수 관행이 오랫동안 만연해 왔고, 크게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헌재의 일침을 부끄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김영란법 합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소비 위축을 이유로 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여전하다. ‘3만원 이상 식사와 5만원 이상 선물’ 금지로 한우축산업자와 과수농가, 어민들이 어려움을 겪을 거라는 우려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부정부패를 뿌리뽑기 위해 만든 법을 시행도 하기 전에 완화하는 건 명분도 설득력도 없다. 경제단체가 소비 위축의 근거로 내세우는 피해액 추정 산출에 오류가 적지 않은 데다 의도적 과장 흔적마저 있다. 예컨대 3만원이 넘는 음식접대가 금지되면 가격을 낮춰 접대할 수 있는데도 기존 3만원 이상 가격대의 식사매출이 모두 없어진다고 계산한 것은 전형적 부풀리기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접대비 폐해를 없애기 위해 건당 50만원 이상 접대비 지출은 이름과 장소, 목적 등을 밝히는 접대비 실명제를 시행한 적이 있다. 금액을 나눠 결제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었지만 접대비가 줄어들고 접대문화가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 제도가 정착도 하기 전에 이명박정부는 경기활성화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폐지했다. 그 후 제도가 없어져 경기가 좋아지고 기업하는 여건이 나아졌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선물 주고받기를 통해 내수를 살린다는 것은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접대비를 줄인 돈으로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창출하는 것이 경제에 훨씬 도움을 준다. 부정부패를 없앨수록 소득은 올라가고 경제는 더 성장한다는 것이 경제학계의 정설이다. 무엇보다 고가의 선물과 접대를 구경한 적도 받아본 적도 없는 대다수 국민은 김영란법을 왜 고쳐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김영란법이 그대로 시행돼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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